▲금골산 정상 산아래 정상에 서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둔전마을과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정윤섭
금골산은 산 정상에 이르면 앞 쪽이 천길 낭떨어지 절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짜릿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다. 정상인도 다리가 찌릿찌릿할 정도여서 고소공포증인 사람은 오르기가 어렵다.
이주가 기록한 <금골산록>이곳 금골산에 대해서는 이주(李冑)의 <금골산록>에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1498년(연산군 4) 정언(正言) 벼슬을 지내던 이주는 세조를 공격하고 풍자적인 조의제문을 만들어 이조사화의 원인이 되었는데,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진도에 유배되어 금골산에 머무르면서 금골산록(金骨山錄)을 썼다.
이주는 <금골산록>에서 금골산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는데 이 기록이 서거정이 지은 동문선(東文選)에 나온다.
이주는 진도의 유배객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들어온 사람으로 진도에서 6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고 금골산에 만 들어가 살았다. 그는 금골산에서 수도승처럼 지냈다고 한다. 금골산에는 3개의 굴이 있었는데 굴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상굴에 살았다.
그는 세상을 멀리하고 이곳에 거처하면서 아침과 저녁은 차 한사발로, 낮에는 밥 한 그릇으로 때우며 마치 신선같이 살았던 것 같다.
이주가 금골산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시 한 편이 <밤에 앉아서(夜坐)>(망헌집)이라는 시이다. 유배지에서의 가슴 시린 쓸쓸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이다.
음산한 바람 불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바다 기운이 산속의 깊은 석굴까지 이르네이 밤, 덧없는 인생은 흰머리만 남아등불 켜고 때때로 초년의 마음을 돌아본다.이주는 상굴에 살면서 오게(五偈)를 지어 승려 지순(智純)에게 주었다고 한다. 오게는 푸른솔(靑松), 지는 잎(落葉), 조수(潮), 흰구름(白雲), 대나무(竹)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고산 윤선도가 금쇄동에서 지은 '오우가'를 연상케 한다.
금골산록은 고산이 금쇄동기를 쓰면서 산의 형세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한 것처럼 금골산의 형세를 아주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를 보면 옛 사람들의 묘사력과 자연에 대한 감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골산은 진도읍에서 서쪽으로 20리 지점에 있는데 중봉이 가장 높고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바라보면 옥부용과 같다. 서북은 바다에 닿고 지맥이 물구거리며 남으로 달려 2마장쯤 가서 간검이 되고 또 동으로 2마장쯤 가서 용장산이 벽파도에 이르러 그쳤다.산의 주위는 모두 30여리인데 아래는 큰 절터가 있어 이름은 해원사(海院寺)다. 9층의 석탑이 있고 탑의 서쪽에 황폐한 우물이 있으며 그 위에 삼굴(三窟)이 있는데 그 맨 밑에 있는 것은 서굴이다.(…)그 맨 위의 것이 상굴인데 굴이 중봉 절정의 동쪽에 있어 기울어진 비탈과 동떨어진 벼랑이 몇 천길인지 알 수 없으니 원숭이 같이 빠른 동물도 오히려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동쪽에서는 무엇을 더 쉬잡아 발붙일 땅이 없고 서굴을 경유하여 동으로 올라가자면 길이 극히 위험하다." ""

▲금골산 정상 돌계단 깎아지른 절벽에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정윤섭
산을 오르다 보면 금골산록의 기록이 마치 얼마 전에 쓴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상굴의 마애여래좌상이주가 머물렀다는 상굴은 마애여래좌상이 동굴 벽에 조성되어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동굴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할 만큼 까까 지른 절벽의 경사진 곳이다. 바위에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천천히 내려가야 하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이다.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금골산의 상굴에 조성되어 있다.
정윤섭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약 50여 미터를 내려가면 동굴처럼 안쪽으로 넓게 패인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면의 가운데에 마애여래 좌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앞쪽에는 신기하게도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훵한 앞을 가려주기 때문에 아찔한 공포감도 느껴지지 않고 아늑하기까지 하다. 도인의 거처지로는 최고의 은신처 같다.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정윤섭
마애불은 면벽의 수도승이 수년에 걸쳐 불사의 심정으로 조성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마애불은 대체적으로 고려시대 때에 주로 조성된 것으로 볼 때 이주가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스님들이 수도처로 사용되고 있었던 셈이다.
금골산 융기현상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마애석굴 바위 표면은 마치 벌집구멍처럼 되어 있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타포니 현상'이라고 한다. 지구 대변동으로 자갈, 모래, 흙 등이 호수를 메우고 있다가 내부 표면에 진행된 풍화작용의 융기현상으로 암벽을 이룬 퇴적암이다.
주로 수성암에서 나타나며 이는 중생대 후기(약 7천만 년 전)에 나타나 금골산이 융기된 산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금골산의 이런 지질을 통해 육지가 융기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금골산 타포니 현상 금골산이 오래전 융기했음을 말해주는 지질학의 타포니 현상이 마애불이 있는 상굴에 나타나있다.
정윤섭
금골산은 나무 한그루 제대로 자라기 힘든 석산이지만 유배자와 수도승들이 기거하기 위해 들어온 것을 보면 신선이 머무는 명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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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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