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속 리퍼트를 찾아라!'지난단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규탄 집회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 사이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그림이 보이고 있다.
이희훈
농담이 아니다. 땅만 파면 해골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곳, 그곳이 한국이다. 지난 한 해만 해도 경남 진주, 전북 익산, 충북 보은, 충남 대전에서 수십에서 수백 구의 민간인 유골이 새로이, 혹은 추가로 발견되었다. 매장지 다수에서 당시 한국 경찰과 군인이 사용한 소총과 탄피도 발견되었다. 가해세력이 정부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군경뿐 아니라, 정부의 사주를 받은 우익단체들도 민간인 학살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식의 유해 발굴은 너무 흔히 듣는 이야기여서, 우리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우리들 다수는 정부가 그 유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지 못하며, 또 어떻게 처리해야 옳은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진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토록 가혹하고 잔인해진 것일까.
이런 사회에서 '애국'이란 무엇일까. 이 비통한 죽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가리고 감추는 것인가? 이 학살이 서슬 퍼런 권력의 실세와 핏줄로, 연줄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을 때, 이를 비판하는 것이 애국일까, 아니면 감싸면서 비판자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애국일까?
만일 두 번째가 애국이라면, '애국'은 '비겁'이나 '공모'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살해당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충격을 받았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 당했을 때는 온 사회가 경악했다. 만일 이 가해자들을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그를 돕기 위해 모금까지 벌인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이런 일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애국자'로 칭한다는 사실이고,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지켜보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발밑의 백골에 무감각하듯 말이다.
폭력과 살인을 조장하는 세력주한 미대사에 흉기를 휘두른 가해자는 범행 동기로 "전쟁반대"를 말했다. '평화'를 말하면서 흉기를 휘두르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정부와 보수 정치인들은 비난의 칼을 진보세력에 돌렸다. 하지만 '평화'를 말하며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의 모순적 행동은 오히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보수세력의 논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피습사건 후, 박근혜 대통령은 "배후가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살인과 폭력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면 준엄하게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 사람 목숨은 소중하며, 이 사실은 국적,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종북세력', 즉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국민들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범인을 감싸거나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칭찬은커녕,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자신이 '배후'가 아닌데도 '사과'를 하는 게 기이해 보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범인을 치켜세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배후세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오마이뉴스>의 신은미 시민기자는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남북을 오가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좋은 이야기꾼이자, 귀한 '민간외교관'이었다. 그의 '민간외교'는 남북 관계가 파탄난 이래로 '정부외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욱 특별했다. 나는 신은미씨가 기고한 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그리고 즐겁게 읽었다.
그의 여행기를 읽는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북한 체제를 옹호한다거나, '지상낙원'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온건하다 못해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외한도 아니다. 미국대학에서 2년간 남북문제를 연구하고 강의했으며, 방북 경험이 많은 공무원이나 연구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눴다.
신은미씨가 북한에 대해 밝힌 견해는 보수적인 미국 관리들에게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더 섬세하고,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나는 그가 비난은커녕,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PD 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시상하는 영예로운 상이었다. 신은미씨 글의 가치를 먼저 깨달은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책을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하면서 "북한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호평했다. 나와 정확히 같은 견해였다. 통일부도 나서서 그를 홍보 영상에 출연시켰다.
그런 그를 ('조선'이라는 북한식 표기를 고집하는) 종편 방송이 '종북'이라고 부르자, (1998년 김정일에게 '보천보전투' 호외 순금판을 선물한) 신문사의 다른 종편 방송이 함께 '종북'을 노래했다. 곧 '일베'나 '수컷닷컴' 등의 극우 사이트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되었고, 그곳에 드나들던 한 고등학생은 강연장에 찾아와 사제폭탄을 던졌다.
"빨갱이는 다 죽여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