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거의 한 시간만에 다시 출발했다.
송성영
달릴 때는 그나마 차창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는데 멈춰 서 있는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부른다.
"헤이!"
나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인도 청년이었다. 인도 안내서에는 시골버스에서 내리고 탈 때 분실한 사례가 많으니 소지품 잘 챙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버스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환한 미소로 나를 부르고 있는 그 청년 손에는 내가 깜빡하고 좌석에 놓고 온 모자와 사진기 보호집이 들려있었다.
식당을 찾는 버스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버스 승객들 대부분 한 푼 두 푼이 아쉬운 시골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싶다. 파리 떼가 들끓는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펩시콜라 간판만큼은 번듯했다.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버스길에서 만난 시골 곳곳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간판이 화려하게 점령해 있었다.
나와 좌석을 따로 잡고 앉아 있던 여행 동행자인 그녀는 버스 안에 내내 앉아 있었다. 시설이 형편없는 다 낡은 버스, 쉬다가다를 반복하는 장거리 여행길이 고단한 모양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서 바나나와 어제 저녁 먹다 남은 빵으로 대충 허기를 때우고 앉아 있는데 열 살 쯤 돼 보이는 아이가 내 주변에서 머뭇거리며 히죽히죽 거린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손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식사 메뉴를 큰 소리로 외쳐댔던 식당 아이였다. 그 큰 눈망울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나마스테.""나마스테…." 내가 공손히 합장을 하며 인사말을 건네자 녀석이 해맑게 웃는다. 웃음은 어느 장소에서건 기분 좋게 만드는 묘약이다. 도무지 출발할 생각조차 하지 않던 버스가 요란하게 시동을 건다. 식당 앞에 멈춰 선 지 1시간쯤 지나서였다.
"종점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노 프라블럼."영어를 할 줄 모르는 젊은 차장이 '문제없다'며 배시시 웃는다. 동문서답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맞다. 비록 폐차 일보직전의 버스지만 도착지점을 향해 아무런 문제없이 잘 달리고 있는데 걱정할 게 무엇인가. 5시간이 걸리든 10시간이 걸리든 사고가 없는 한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버스 도착 시간을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알모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하지만 우리가 탄 시골 버스는 알모라가 최종 종착점이 아니라 내니딸(Nainital)이라는 곳이었다. 거기서 다시 알모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내가 버스 안에서 조급한 마음을 내든, 여유로운 마음을 내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내니딸에 도착한다 해도, 딱히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둘러 볼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조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다. 조급한 마음은 내 자신만 불편하게 할 따름이다. 버스 도착 시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이 버스가 알아서 갈 것이다.
시간은 존재가 없다.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유 없이 시간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 시간의 공간속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시골 버스는 두 가락의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와 또 다르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서고 가기를 반복한다. 장거리 시골버스를 내리고 타는 다양한 인도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쳐 가며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다. 열차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인도를 읽을 수 있다. 인도를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게 해주는 수단이 흔히 말하는 로컬버스, 바로 이 시골버스인 것이다.
물 뿌리니까 바로 올라오는 수증기, '열 받은'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