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에 새겨진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세 분류, 동물·인간·신의 세계로 나눠 놓고 있다
송성영
왕실 사원인 난다데비 사원에는 그 시대의 유물인 석탑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문이 달려 있다는 이 석탑에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석탑에 새겨진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세 부류, 동물·인간·신의 세계로 나눠 놓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맨 아래 부분에는 탑을 떠받들고 있는 듯 보이는 코끼리를 비롯해 말·호랑이·뱀·물고기 등의 동물의 세계가 차례로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인간 세계, 그리고 힌두 신상이 서 있는 신들의 세계가 맨 위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신상은 시바 신,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신상이 바로 난다데비로 보인다.
이 탑에 새긴 조각 중에 특이한 것은 인간 세계를 상징하는 부분에 남녀의 노골적인 성교 모습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적인 쾌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과 양은 천지만물을 운행하는 힘이다. 인간에게 기쁨과 복을 선사한다는 자비의 신, 난다데비는 힌두어로 '삭티',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힌두교에서는 '삭티'의 개념을 무엇보다 중요시 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하나이며 그 힘은 여성과 남성의 에너지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난다데비 사원의 기단에 새겨진 남녀의 성교 장면은 바로 생명을 잉태하는 힘, 천지만물을 운행하는 음과 양의 조화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단에 새겨진 남녀 교합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성적 쾌락 혹은 생명사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관점 중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택은 내게 달려 있다.
다음날 우리는 동이 터 오르기도 전인 이른 새벽부터 배낭을 꾸렸다. 다행히 델리로 가는 첫 차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알모라에서 부터 장장 12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델리에 도착해 다시 카주라호나 다람살라로 떠나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의 어깨가 축 쳐져 보인다. 그녀는 '달려라 하니'처럼 패기 발랄했지만, 안으로는 이혼을 앞두고 있는 나만큼이나 말 못할 아픔이 많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아픔과 함께 하고자 했다. 자비의 어원이 '함께 상처를 나눈다'에 있듯이 누군가와 상처를 나누는 것은 동시에 내 상처를 보듬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 나 자신은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상처를 나눌 만큼 자비심이 없었다. 자비심은커녕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로부터 입은 상처와 분노로 가득했었다.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오히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뿐이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옹을 했다. 그녀의 아픔이었는지 내 아픔이었는지 그녀를 끌어안는 순간, 아픔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건강한 몸으로 남은 일정 잘 보내세요.""건강 잘 챙기세요…."짧은 포옹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버스에 올랐다. 나 또한 곧바로 출발하는 코사니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헤어졌다. 만남은 길어도 헤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알고 있었다. 열흘 동안 함께 다니면서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함께 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인도(네팔 포함) 체류기간이 5개월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보름 정도에 불과했다. 그녀는 짧은 여행기간 동안 좀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길을 나섰다. 애초에 내가 원하던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열흘 동안의 동행을 한 순간에 지워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콜까타 마더 테레사 '죽음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바라나시 화장터, 그 땡볕에서 넋을 놓고 살타는 냄새를 맡아가며 한 없이 앉아 있던 그녀, 인도 아이들과 티 없는 웃음으로 놀아주던 '달려라 하니'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와 헤어져 일주일쯤 지날 무렵 손전화기로 문자가 날아왔다. 자신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하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함께 한 시간들이 고마웠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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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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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노골적 성교 장면... 이걸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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