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뒤가 더 걱정"... 팽목항은 아직 추웠습니다

절망과 희망의 양날에 선 곳, 시민의 관심과 참여 꼭 필요해

등록 2015.04.13 12:03수정 2015.04.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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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 저 멀리 섬 건너편에 세월호 침몰 현장이 있다고 한다. 유가족이 얼마나 이곳에서 피맺힌 절규를 했을지... 가슴이 아프다. ⓒ 이종락


모처럼 따사로웠던 지난 11일 토요일 이른 아침, 버스 한 대가 경북 상주에서 진도 팽목항을 향해 떠났습니다. 가보지 않으면 안 될 곳, 가기에는 너무 가슴 아픈 곳, 늘 마음 한 구석에 무거운 빚으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 서남단 진도 팽목항.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과 일반 시민 304명이 수장된 바다, 그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들. 통한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살아남은 이들과 국민은 혹독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시절입니다.

이날 시민 가족 30여 명이 봄나들이 아닌 먼 길을 떠났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었지만, 팽목항 가는 버스는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간략한 자기 소개와 세월호에 대한 짧은 입장 표명, 옆 사람과의 이런저런 대화,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만 싣고 근 5시간을 달려 팽목항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들의 영정 사진 앞, 울지 않는 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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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적을 노란띠 팽목항 가는 버스 안에서 노란띠에 무엇을 적을까 고심하는 시민의 손 ⓒ 이종락


팽목항. 저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배처럼 지난 1년 동안 이 세 글자 역시 국민의 가슴깊이 내려앉아 아직도 저 바닷속 배처럼 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대형사고와 참사를 목격한 국민이지만, 아직 사고의 진상조차 밝히지 못한 세월호 참사. 그 현장인 팽목항이라는 글자가 표지판에 보이고, 굽이굽이 길을 돌아 버스가 들어서자 버스 안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한 시민이 "세월호 관련 동영상을 편집할 때 아이들이 유리창에 매달려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라고 하다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사람들은 가서 차라리 펑펑 울고 와야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풀린다고 했지만, 나 역시 울음이 터질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미리 준비한 노란 띠에 마음을 담은 글을 적은 후 팽목항에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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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영정사진 팽목항 분향소에 안치된 단원고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서 시민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이종락


기다림의 버스를 담당하는 봉사자의 안내로 작은 분향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북받쳐 오르는 울음 앞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꽃다운 얼굴이 못난 어른들을 향해 웃고 있었습니다. 회한과 미안함, 부끄러움, 자책감이 뒤엉킨 눈물은 쉽게 그치질 않았습니다. 팽목항 행사를 주관한 경북 상주시 민단협 유희순 위원장의 진행으로 조사와 시 낭송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조금씩 격한 감정을 추슬렀습니다.


분향소에서의 의식을 마친 후 일행은 춘천 등지에서 온 시민과 함께 유가족과의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겨우 아픔을 추스른 시민들은 실종자 어머니의 다 쓰러져 가는 모습과 도와달라는 눈물의 호소에 또 한 번 애타는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중병을 선고 받고 한쪽 귀도 안들리는 상태에서 이미 수술 시기마저 놓친 어머니는 실종된
딸 곁에 조금이라도 있고 싶어 팽목항에 있다고 했습니다. 가누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청와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단장(斷腸)의 모성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실종자 가족 앞에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유가족 어머니를 보면서 어쩌다 이런 기막힌 현실 앞에 우리가 서 있는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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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를 찾은 시민들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래 공연이 열리고 있는 방파제를 시민들이 아픈 마음으로 오가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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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김성훈 총무 지난 1년 동안 팽목항을 지켜온 김성훈 가족대책위 팽목항 총무가 팽목항을 방문한 시민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종락


이어 지난 1년 동안 팽목항을 지켜온 김성훈 가족대책위 팽목항 담당 총무로부터 그동안의 경과와 현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4월 16일이 다가오면서 팽목항에 있기가 두려워 안산으로 올라가신 일부 가족들, 시커멓게 썩어버린 속을 술, 담배로 풀다 못해 중독이 된 아버님들, 비 오는 밤이면 사지가 뒤틀리는 분 등... 가족들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단식에 험난한 도보 행진, 그리고 삭발까지... 해결될 기미가 없는 세월호의 현실 앞에 남은 가족의 선택이 무엇일지 두렵다고 합니다. "지금 이 자리도 팽목항 개발 프로젝트 때문에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난 다음이 더 걱정"이라는 김성훈 총무는 "언론은 세월호를 잊도록 끈질기게 세뇌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팽목항을 찾아오는 시민이 있기에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라고 끝까지 함께 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추모가 아니라 결의' 유가족의 의지 앞에 선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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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분향소 팽목항 분향소에서 희생자를 위한 조사를 낭독하고 있는 상주시민 ⓒ 이종락


시민들은 배를 타고 1시간은 가야 한다는 세월호 침몰 현장을 마주한 방파제에서 그곳을 응시하며 1년 동안 피눈물을 흘렸을 가족들 생각에 조심스럽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아픔을 나눴습니다. 방파제는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띠만이 세월호의 상징이 돼버린 팽목항. 애타는 시민의 발걸음으로 가득찬 팽목항을 뒤로 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시각 서울 광화문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이 분사한 캡사이신을 맞고 연행 당하는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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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 팽목항 방파제를 찾은 시민들이 노란 띠를 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이종락


이제는 추모가 아니라 결의를 해야 한다는 유가족의 처절한 의지 앞에 또 다른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책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참사 1년이 되는 날 외국으로 날아간다고 합니다. 유가족은 생떼 같은 자식이 죽은 이유라도 정확히 알고 싶다고 차디찬 거리에서 투쟁합니다.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잊고 자기만의 일상에 전념할 때 유가족은 고립된 한 점의 섬이 되어 사그라질 것입니다. 다음 차례는 자기만의 일상으로 도피한 우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을 향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세월호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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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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