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박근혜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지난 1월 1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새해를 맞아 열린 '세월호 엄마들의 따뜻한 밥상 및 신년 기자회견'에서 단원고 고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이동호
2014년 봄, 잔인하고도 매서운 바람과 함께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갔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주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주현이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낸 것 같다.
주현이는 철이 일찍 든 아이였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아빠를, 엄마를, 그리고 가족을 이해하는 따뜻하고 착한 아이였다. 우리 주현이 같은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주현이는 동생에게도 든든한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동생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꼭 동생편이 돼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시샘 하지 않았으며, 혹여 동생이 철없는 행동을 할 때는 더 귀여워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주현이 동생은 세월호 참사 때 '형아 괜찮다'는 엄마의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믿었다가 나중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장례식장에서 형의 영정 사진을 보고 벽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주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컵스카우트(보이스카우트 가운데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기자주)를 하며 좀 더 늠름해진 모습에 '다 컸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중학교 때 주현이는 혼자 기타 연습을 하며 유튜브 영상도 찍고, <슈퍼스타K>에 나가는 꿈도 꾸었다. 명절 때 친척집에 가면 "할머니 내가 기타 쳐 줄게요", "이모 내가 연습한 곡 들어봐"라며 살가운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온화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면서 목표 대학에 진학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거기서 좋은 결과를 얻어 가족에게 이야기하며 크게 기뻐했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렇게 꿈을 가지고 한 발짝씩 천천히 내딛었던 아이다.
주현이와 단원고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준비하며 세월호를 탔다. 즐거운 제주도 여행을 꿈꾸며 발걸음 가볍게 떠난 길이다. 즐거운 여행 뒤에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수다를 떨며 멋쩍게 선물도 내놓을 착한 아이들이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떠나보내게 한 걸까?
"네가 살아있었다면 일 년 사이 얼마만큼 컸을까..." 2014년 봄이 지나간 뒤 나는 계절 변화에 둔감해졌다. 어느 나무에 잎이 피고 지는지, 눈이 쌓이고 녹는지, 싹이 돋고 꽃이 피는지, 이제는 그 모든 게 무의미해졌다. 그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간다.
누가 주현이와 친구들의 일상과 꿈을 짓밟았을까. 또 그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주현이 또래의 아이들이 내 옆을 지날 때면, 세상이 정말 야속하게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우리 주현이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만큼 컸을까, 주현이 모습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크나큰 아픔이다. 부모님의 죽음은 추억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은 그렇지 않다. 자식을 잃는 것은 가슴을 도려낸 것과 같다. 더 이상 생이 남아있지 않은 시한부와 같다.
자식이란 그런 거다. 항상 마음속 어딘가에 두고, 예쁜 꽃으로 여기며 돌보는 것. 해가 뜨거우면 그늘이 되어주고,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옮겨 심어주고, 아낌없이 예뻐해 주는 것. 우리 주현이의 일상을 빼앗은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을까? 내 자식이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시 봄이다. 이렇게 힘든 일년을 앞으로도 몇 번이나 보내야할지 너무나도 두렵다. 주현이 없이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이다.
주현이를 잠시 만난 뒤 이렇게 헤어져야만 하는 삶이라면,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 주현이와 같이 보던 드라마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도,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이젠 모든 것이 점점 무의미해졌다. 차가운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다.
"적어도 아이들에겐 그러지 말아야 했다"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부모는 어디든 달려간다. 하지만 그런 부모들의 앞길을 막아 더 힘들게 하는 정부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다.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내 아이의 사진을 한 번 만져본다. 이렇게라도 아이가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손으로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오늘은 어제보다 예뻐 보이네', '오늘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구나'하며 몇 번이고 쓸어내려본다.
밤에는 잠을 청해본다. 눈을 감으면 잠이 오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주현이를 잃은 뒤로는 잠도 쉽게 청할 수 없다. 그 소중하고 예쁜 아이를 왜 잃어야만 했는가. 억울한 마음에 폭풍우가 일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아이 방에 들어가 주현이의 생전 모습을 한참 본다. 주현이가 커다란 눈물방울이 되어 내 눈에 맺힌다.
누군가는 살아있어 행복한 것이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한다. 하지만 주현이가 없는 지금은 살아있어 미안할 뿐이다.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 크게 주현이를 불러보지만, 메아리로 되돌아와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누가 주현이의 꿈을 짓밟으라고 했나?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인가? 아이들이 돈의 희생양이 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어느 나라가 한 사람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고, 아이들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살려달라고 손짓을 하는데 외면하고, 뒷짐을 질 수 있는가. 그 모습에 저절로 절규가 나온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정부, 무엇이 두려워 자꾸 도망가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