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성완종은 기업꾼"
'3000만원 수수설'의 진실은?

[여의도본색] 2014년 11월 5일의 전화 통화를 떠올리다

등록 2015.04.16 11:22수정 2015.04.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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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1월 5일 오후 9~10시께 이완구 총리(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가 쓴 '권노갑에게 반기문 대선출마 타진한 인사는 누구?'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통화는 40분 넘게 이어졌다.

당시 권노갑, 박지원 등 과거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다는 '인사'가 누구인지에 언론의 관심이 쏠릴 때였다. 기자는 전날(11월 4일) 저녁 늦게 '그 인사'가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일 것으로 추정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특히 안산상공회의 회장 시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민련 안산시장 후보로 거론됐고,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이 자민련 원내총무를 지낼 때 그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후원회장 맡았다"는 대목에 민감하게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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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야당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있다. ⓒ 권우성


"그의 후원회장을 맡았다"라는 대목이 이완구 총리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이 총리는 유독 그 대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사람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같이 다녔고, 내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후원회장 할 사람이 없어서 명목상 후원회장을 1~2년 했지. 하지만 2001년 이후에는 만난 적도 없다고."

이어 이 총리는 기자가 묻지도 않은 '후원금' 얘기까지 꺼냈다.


"후원회장이면 돈을 좀 내는 거 아냐? 그런데 돈도 안 냈다고. 내가 돈 받은 것도 없고..."

이 총리는 "임도수 회장에게 물어보라고,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지"라며 "나는 반기문 총장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데 왜 반기문 얘기에 나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대망론' 정국에 자신이 입길에 오르는 것이 꽤나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 총리는 "<오마이뉴스>도 기사를 내려 달라"라며 "큰 대미지(손해)를 입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개 의원도 아니고 원내대표라서 민감하다"라고 부탁했다.

"허허 성완종이 그놈 나쁜 놈이네"

그런데 이날 기자와 전화 통화하던 중 이 총리는 "임도수 회장이 권노갑 고문을 만난 거야?"라고 물었다. 이날 기자는 '전 새누리당 의원이 권노갑에 반기문 출마 타진?'이라는 기사를 출고한 터였다. 이 기사에서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한 '인사'로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특정했다.

상황이 그랬던 터라 기자는 이 총리의 질문에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권노갑 고문을 만났다고 하네요"라고 전했다. 그랬더니 이 총리로부터 뜻밖의 발언이 터져 나왔다.  

"허허 성완종이 그놈 나쁜 놈이네. 3일 전엔가 예산 관련해서 만났는데 아무 얘기를 안 하더라고."

같은 당 소속이었던 전직 의원이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다는 사실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 총리가 "나쁜 놈이네"라고 반응할 만했다. 기자도 "왜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분이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맞장구쳤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성완종은 기업꾼이야 기업꾼!"

이 총리가 기업가를 "기업꾼"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경멸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성완종 전 회장을 자신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치도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분히 이쪽저쪽 기웃거릴 만한 사람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성 전 회장과는 친분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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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 15일 <경향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이 지난 2013년 재선거를 앞두고 이완구 현 국무총리에게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한 구체적 정황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그랬던 이 총리가 최근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 재·보궐선거를 치르던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증언이 나왔다. 측근 인사의 증언은 성 전 회장보다 훨씬 구체적이다(관련기사 : "성완종-이완구 배석자 없이 대화 선거사무소에 비타500 박스 전달").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 30분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3000만 원이 든 비타500박스를 전달했다."(<경향신문> 4월 15일자)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총리는 "성완종은 기업꾼이야"라고 경멸하기 1년 반 전에 그 "기업꾼"으로부터 3000만 원의 선거자금을 건네받은 셈이다. 물론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4일 JTBC가 보도한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20개월 동안 23차례나 성 전 회장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난 꼴이다. 이는 두 사람이 "별다른 친분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 전 회장은 지난 2012년 4월 총선 전인 1월 6일 충남 홍성에서 열린 이 총리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그날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성 전 회장을 보며 이 총리가 활짝 웃는 사진까지 나왔다. 지난 2014년 11월 5일 기자와 40분 넘게 통화했을 때도 그는 "3일 전엔가 예산 관련해서 만났다"라고도 했다.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거나 "소원하지도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는 이 총리 해명과는 거리가 먼 '사실들'이다. 

20개월 동안 23차례 만난 성완종에 등 돌린 이완구

이용희 태안군의회 부의장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내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관련기사 : "성완종, 죽기 전 이완구 총리에 수차례 전화했다").

20개월 동안 23차례나 만나고, 선거자금도 주고,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하고, 예산과 관련해 상의하기도 한 사이였지만, 검찰 수사 앞에서 이 총리는 등을 돌렸다. 이 총리가 전화를 끊은 뒤 성 전 회장은 "도대체 왜 내 말을 누구도 믿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는지 모르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이용희 부의장은 전했다. 

5개월 전에 이 총리와 전화 통화한 내용을 떠올린 것은 성완종 리스트 정국에서 느꼈던 정치의 냉혹함이나 비정함, 무상함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런 냉혹함이나 비정함, 무상함에서 오는 환멸이 성 전 회장을 자살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 편집|손병관 기자
#이완구 #성완종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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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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