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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주(가명)씨는 지난 2005년부터 알코올 중독치료를 받아왔을 정도로 술에 빠져서 살아왔다. 술에 취하면 문씨는 수시로 아내 서희선(가명)씨를 폭행해 왔다.
사건 당일도 문씨는 술에 취해 서씨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서씨는 남편을 애써 무시하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문씨는 뒤에서 갑자기 손으로 서씨의 뒷머리채를 세게 잡아당겼다. 순간 서씨는 문씨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돌아서서 오른발로 문씨의 배를 걷어찼다. 문씨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문씨는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눈이 잘 안 보인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걱정이 된 서씨는 문씨를 데리고 인근 A 병원을 찾았다. 당시 문씨는 열흘 정도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도 문씨의 증상이 단순한 숙취인지 아니면 뇌에 이상이 있는 상태인지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의사는 일단 급성위염으로 진단하고 영양제 수액주사를 맞도록 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있던 문씨가 바닥으로 떨어져 또 머리를 부딪쳤다.
그 후 문씨의 호흡이 곤란해지고 동공이 풀렸다. A병원 측은 즉시 B종합병원 응급실로 문씨를 후송했다. 문씨는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뇌 CT를 찍었는데 급성경막하출혈이 발견됐다. B병원은 뇌수술을 시행했지만 문씨는 깨어나지 못했다.
문씨가 뇌사 상태가 된 건 서씨의 폭행 때문일까, 병원침대 낙상사고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검찰은 서씨의 폭행이 직접 원인이라고 보고 서씨를 폭행치상죄로 기소됐다.
1심 "남편 폭행에 저항... 충분히 그럴 만하다" 무죄 판결 서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술을 마신 남편이 강하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상황에서 발로 찬 것은 '소극적인 저항'에 불과했고, 남편의 의식불명도 자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술취한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으로 인정했을까?
법원의 판단은 1심과 2심이 엇갈렸다. 먼저 1심(서울중앙지법 제29형사부 재판장 천대엽)이다. 1심은 손을 뿌리치는 행위와 발로 차는 행위를 하나의 연결동작으로 보았다. 1심 법원의 해석이다.
"서씨는 머리카락이 일부 빠질 정도로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상식 밖의 폭행을 당하자 화가 났다. 그래서 문씨가 움켜쥔 손을 뿌리치는 한편, 계속 덤벼들 것으로 예상되는 문씨로부터 벗어나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기 위한 목적으로 저항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재판부는 서씨의 행위가 '일반인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인정되는 수준'이므로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또 "당시 상황이나 이후 사정으로 볼 때 경막하출혈이 서씨의 폭행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침대낙상사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따라서 서씨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2심 "팔을 뿌리친 것 넘어서 발로 찬 행위는 정당방위 아냐"하지만 항소심(서울고법 제10형사부 재판장 권기훈)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우선 문씨의 의식불명 원인을 서씨의 폭행 때문이라고 보았다. 법원은 ▲ 병원 침대 높이가 낮아 큰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낮고 ▲ 문씨가 계속 술을 마셔 신체기능이 감소된 상태에서 폭행으로 충격을 받은 점 ▲ 낙상사고 이전에 이미 고통을 호소한 점 등으로 볼 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해결과를 서씨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른바 '예견가능성'도 1, 2심은 달랐다. 1심은 "설사 경막하혈종이 서씨 때문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중한 상해 결과를 예상할 수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계속 술을 마셔 반사신경이 둔해진 문씨의 배를 걷어 찬 점으로 볼 때 "자신의 폭행으로 문씨가 경막하혈종 등의 상해를 입게 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결정적으로 항소심은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1심이 문씨의 팔을 뿌리치고 걷어찬 행위를 하나의 연결동작으로 이해하고 정당방위로 본 것과 달리, 2심은 머리채를 잡은 문씨의 손을 뿌리친 시점에서 이미 침해행위는 종료됐다고 보았다. 따라서 여기서 서씨가 멈췄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걸 넘어서 발로 찬 행위는 방어가 아닌 공격이라는 취지다.
서씨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했지만 2심은 "그와 같은 주관적 평가만으로 미리 공격함으로써 침해행위의 발생을 차단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로서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은 서씨의 죄질이 가볍지 않고 문씨가 의식불명에 이르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됐다면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다. 다만 ▲ 서씨가 전과가 없고 폭행이 우발적인 점 ▲ 문씨가 상황을 악화 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두 자녀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사정 등을 감안,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정당방위, 문이 너무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