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빠진 스님들 구제한 김명국, 그가 쓴 방법

[서평] 조선 중인 다큐멘터리 <조선의 중인들>

등록 2015.05.01 16:17수정 2015.05.0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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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명국이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마셔야만 그림을 그리는 기인기질이 있는 화가였습니다. 일본에서는 김명국을 통신사행 일원으로 콕 찍어 지명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유명했습니다. 

언젠가 영남에 사는 스님이 김명국에게 명부전에 걸 명사도(지옥그림)를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그림 값으로 비단 수십 필을 가져왔습니다. 그 후, 스님은 그림을 찾으러 몇 번 찾아갔지만 김명국은 그때마다 "맘이 내켜야 그린다"며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잔뜩 마신 김명국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김명국이 그린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거나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이 깜짝 놀라 말했다.
"아이고 참! 당신은 어쩌려고 내 큰일을 그르쳐 놓으셨소?"
김명국이 두 발을 앞으로 쭉 내뻗고 웃으며 말했다.
"스님들이 일생 동안 저지른 악업이 바로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이는 짓이니, 지옥에 들어갈 자는 스님들이 아니고 누구겠소?"
스님이 화가 나 말했다.
"그림은 태워 버리고 비단이나 돌려주시오." -<조선의 중인들> 113쪽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어지는 상황이야 말로 능력 있는 자만이 연출할 수 있는 반전입니다. 김명국은 노발대발하는 스님에게 그림을 완성하고 싶으면 술을 더 사오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스님이 술을 더 사다주자 김명국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는, 머리를 깎은 사람에겐 머리털을 그리고, 수염을 깎은 자에게는 수염을 그리고, 잿빛 승복에는 채색을 함으로 스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멋진 그림을 그려내, 이를 보고 있던 스님이 "당신은 참으로 천하의 신필神筆입니다"하고 감탄하더니 절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중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조선의 중인들>


a  <조선의 중인들> (지은이 허경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3월 25일 / 값 1만 8000원)

<조선의 중인들> (지은이 허경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3월 25일 / 값 1만 8000원) ⓒ (주)알에이치코리아

위 내용은 <조선의 중인들>(지은이 허경진,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에서 조서시대 화가 김명국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조선시대 신분 계층은 양반과 평민·천민으로 나눠지지만, 실제로는 양반과 평민 사이에 있는 중인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조선시대 중인이었던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더듬다 보면 이런 저런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명성을 얻고 있는 홍세태, 장혼, 김명국, 최북, 변박, 조희룡, 오경석, 오세창, 박효관, 허임, 백광현, 피재길, 유상, 김영, 장지완, 임준원, 김범우, 이언진, 홍순언, 이상적, 오경석 등이 중인이었습니다.


김명국과 최북은 화가로 내로라하는 인물이고, 백광현과 피길재 등은 의술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굳이 정조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중인의 직업은 요즘으로 치면 장교, 공인회계사, 의사, 외교관, 통역사, 천문학자, 변호사, 법관, 서예가, 화가, 공무원 등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역시 나라살림과 운명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건 중인신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며 역할이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외교문제를 해결한 홍순언은 중인

조선 시대, 외교적 현안 중 가장 문제가 됐던 건 아무래도 종계변무(宗系辨誣)였을 겁니다. 종계변무란 '조선 왕실의 계보가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사後嗣로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바로 잡는 문제였습니다. 이인임을 유배를 보냈던 이성계가 졸지에 이인임의 대를 있는 후계자로 기록돼 있으니 이는 역사 왜곡이자 모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문제니 우리가 해결하면 될 문제 같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명나라에서 바로잡아야 할 외교적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사절들이 명나라를 수차례나 찾아갔지만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중인 신분의 역관 홍순언이었습니다.

세종 시대에 남긴 수많은 업적들은 물론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것 또한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습니다. 때로는 신분 때문에 좌절하고, 때로는 신분 때문에 울분을 토해야 했던 중인들 이야기는 오늘날 서민들이 감내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의 애환이자 시대적 전주곡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조선의 중인들은 신분에 따른 박탈감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삶의 애착을 과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조선이 머물러 있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인들의 삶과 애환까지도 담고 있는 이 책, <조선의 중인들>이야 말로 조선 역사에 드리운 뒤안길을 실감나게 더듬어 볼 수 있는 시대적 더듬이가 돼 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조선의 중인들> (지은이 허경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3월 25일 / 값 1만 8000원)

조선의 중인들 -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건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다

허경진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


#조선의 중인들 #허경진 #(주)알에이치코리아 #김명국 #홍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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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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