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홍 시인.
서정홍
시 "외할머니"에서, 백화점에서 30만원 짜리 옷을 본 할머니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그냥 왔다 아이가"라며 "30만원이모/감자가 서른 상자/들깨가 사십되"나 된다고 했다.
시 "산골 아이 정욱이"에서, "초등학교 3학년 정욱이가/아버지한테 달 보러 가자고 조르는데요/아버지는 바쁘다고만 하네요"라며 "시를 좋아하고 시를 잘 쓰는/정욱이 가슴에/달이 찾아온 게 아니라/시가 찾아온 줄도 모르고/아버지는 바쁘다고만 하네요"라 했다.
또 시 "미안해요"에서, 설거지하던 시인이 아내한테 "-여보, 밥 푸고 나서/밥주걱을 설거지통에 바로 넣지 않았으면 좋겠소"라 하며 "밥주억에 붙은 밥알이/설거지통에서 자꾸 나를 쳐다보며 막을 걸어요/쌀농사 지은 농부들한테 미안하지 않느냐고"라 했다. 쌀 한 톨도 귀하게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한 며칠, 도회지 다녀왔더니/잡초란 놈도/산밭 주인인 나를 깔보고/쑥쑥 자랐습니다/까치란 놈도/비웃으며 나를 내려다봅니다//내가 화려한 도회지에/정신이 팔려/잠시 마음이 떠나 있었다는 걸/잡초란 놈도 까치한 놈도/모를 리가 없습니다/다 압니다 알고 말고요"(시 "스승" 전문).
사람은 누구나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스승 '
농촌에 사는 서정홍 시인은 '잡초'도, '까치'도 스승이란다. '잡초'와 '까치'를 '스승'으로 여기고 사는 그가 시를 읽는 사람들한테는 '스승' 같은 느낌을 준다.
시인은 감자 주문을 받고 고맙다고 하는 아내를 보고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그는 사람은 누구나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스승 역할'을 한다.
"감자 주문 전화를 받으면서/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머리를 꾸벅거리는 아내//눈앞에 사람도 없는데/왜 머리를 꾸벅거리느냐고/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도/그 버릇, 아직도 못 고치는 아내//사람은 모두/남의 덕으로 사는 건데,/머리 꾸벅거리는 게/무어 이상하냐고/오히려 나를 바라보는 아내//머리 숙일 줄 모르고/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는 나를/다 안다는 듯이…"(시 "산다는 것은" 전문).
"땅에 무릎을/수백 번 꿇지 않고서야/어찌 밥상 차릴 수 있으랴//땅에 허리를/수천 번 숙이지 않고서야/어찌 먹고살 수 있으랴//끝없이 무릎 꿇고/끝없이 허리 숙이지 않고서야/어찌 목숨 하나 살릴 수 있으랴"(시 "먹고 사는 일" 전문).
쌀 한 톨이 생산되고 밥이 되어 사람 입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만 정성이 그만큼 들어간다. 흔히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시인은 농사처럼 사람이 사는 일 또한 '끝없이 무릎 꿇고 허리 숙이는 일'이라는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