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 탐정록>겉표지
르네상스
'규방'은 일반적으로 전통가옥에서 여성들이 생활하는 공간, 여성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때 여인들은 이 규방에서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하기도 했고, 손님을 맞아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 규방에서 탐정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규방에서 손님들을 맞아서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무래도 바깥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사건 수사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보'라면, 규방은 정보를 수집하기에 적당한 장소인 셈이다. 동시에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면서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찾아온 손님과 함께,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은밀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거리를 뛰어다니는 대신에 응접실에 앉아서 추리하는 탐정,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의 사무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러 살인사건들작가 유영소의 <규방 탐정록>은 제목처럼 규방을 중심으로 탐정활동을 하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의 배경은 조선 시대의 한 지방 관아. '설이'라는 열여섯 살 소녀는 그 관아 한쪽의 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소녀지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언니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사고로 자신도 한쪽 다리가 불편해졌다. 그래서인지 주로 규방에서 바느질하거나 책을 읽으며 생활한다.
이런 설이에게도 믿을 만한 지인들이 있다. 그녀의 이종사촌 오빠인 채운과 그의 '절친'인 단우가 그들이다. 이 세 명은 함께 모여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지만, 동시에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주로 채운과 단우가 밖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가져다주면 설이가 그것을 바탕으로 추리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한다. 설이의 영특함을 소문으로 듣고 사건을 의뢰하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면 이 규방을 '탐정 사무소'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16세 소녀의 인생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조선 시대에도 여러 가지 흉흉한 사건들이 있었다.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도주했다고 의심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인 잔치가 끝나고 나자 뒤바뀌어버린 신부도 있다. 한 처녀를 동네우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누명을 쓰는 남자도 있다. 설이는 규방에 앉아서 채운과 단우가 가져다주는 정보를 듣고 이런 사건들을 하나하나 추리해본다. 취미인 바느질을 하면서.
사실 사건 수사는 어찌 보면 바느질과 비슷한 면이 있다. 바느질을 통해서 떨어진 부분을 붙이듯이, 수사를 위해서는 서로 분리된 듯한 정보를 모아서 한곳에 붙여야 한다. 하지만 바느질을 잘하더라도 완벽하지 못할 수가 있다. 한쪽은 잘 붙었는데 뒷면은 그렇지 못한 것처럼.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보를 모아도 그 뒤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모를 수가 있다. <규방 탐정록>의 설이는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보려고 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면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건 대부분 인물에 관한 호기심이다.
그 인물이 뒤에 어떻게 되었을지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규방 탐정록>도 그런 작품이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16세의 소녀 설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보다는 설이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게 될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규방 탐정록
유영소 지음,
르네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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