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는 할머니를 얼마만큼 사랑하니?"

[말없는 약속 20년 17] 앞일을 모르니 머리가 복잡하네

등록 2015.05.08 15:32수정 2015.05.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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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년~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평소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 홀로 산을 오르내린다. 하루에 한 번이든 하루에 한 번씩 며칠 동안이든 결정을 내릴 때까지 산에 간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 여겨지더라도 선택의 중요도에 따라서 몇 번이고 산에 오른다.

만 4세부터 오늘날 직장생활을 하는 덕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덕이에 대한 가족들의 서로 다른 견해와 덕이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 자녀는 끔찍이 챙기는 내 형제들에 관련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 있어서 신중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며칠동안 하루에 한 번씩 오전 6시에 인근 광덕산에 다녀왔다.

덕이가 자라면서 발생하는 일들과 문제들, 거기에 따르는 덕이 지도에 관한 내 모친과 나 그리고 다른 형제들의 교육관은 달랐다.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고민들이 앞으로 종종 언급될 것이다.

특히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학교만 다니면 된다'고 주장하시는 모친과 '사람은 계속 다양한 교육을 필요로 하고 특히 덕이가 성인이 돼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게 돕기 위해서는 지금 다양한 체험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나의 갈등이 그렇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확신 그리고 불안감


나는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나와 우리 형제들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우리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 이마에 흰띠를 두르시고 누워계셨을 때가 많을 정도로 몸이 약하셨다. 그러니 건강하지도 않은 덕이를 내가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덕이가 사람들에 치이게 되면 무척 걱정을 하셨다. 또 내가 정신없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제때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봐 염려하셨다. 어머니께서 그러시는 게 이해가 됐다.

그러나 나는 덕이가 성인이 돼 사회인으로 생활하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과 적응력을 키워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덕이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비는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충당했다. 다른 내 형제들 역시 덕이를 지도한다고 해서 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어느날 부모가 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모습이 TV에 나왔다. 그들은 방송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부가, 그것도 본인의 아이임에도 이런 저런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나는 덕이를 돌보면서 우리 집안의 배경을 아는 지인들에게 조차 덕이에 대한 어려움은 말하길 원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내 표정을 살피는 나의 모친께서는 만약에 내가 힘들다거나 한숨을 쉬면 이미 쓰러지실 것이다. 나는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더욱 덕이에 대한 고민과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나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덕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막연히 불안했다. 내가 어렵다고 느끼기보다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지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정신과 몸이 몇 년 사이에 지쳐가고 있음을 알게됐다. 어머니, 덕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생각만 하다 보니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몸과 마음, 정신이 뭔가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몰랐다.

사라졌던 덕이를 찾아 집으로 온 그날 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과연 내가 끝까지 덕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더 나아가 이쯤에서 덕이를 키우는 나에 대한 1차적인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덕이를 찾아온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목부터 통증이 심해 일어나기 어려웠다. 목디스크로 통증이 심한 상태에서 덕이를 찾아 헤맸던 것이 원인이였을까 생각했지만, 일어나서 일과를 변함없이 유지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정형외과와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다고 해서 다른 형제들에게 덕이를 봐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 내가 덕이를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그대로 쭉 가야 할 텐데…. 걱정이다.

"버스에서 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주일이 지났다. 덕이는 내일이면 또 종이접기에 가야 할 텐데 아직도 덕이 할머니께서는 반대하셨다. 나 또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덕이가 종이접기를 좋아하고 또 다양한 체험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계속 종이접기를 보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덕이에 대한 다른 형제들의 관심은 점점 약해지고, 앞으로 덕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등이 정리되지 않을 때였다. 덕이와 마주앉자 내 입에서 이런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고모 : "덕아, 덕이는 할머니를 얼마만큼 사랑하니? 덕이방 만큼 아니면 우리집 만큼 또는 하늘만큼?"
덕이 : "하늘만큼"

쉽게 대답한다.

고모 : "그러면 덕이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

대답이 없다.

고모 : "덕이방만큼 아니면 우리집만큼 또는 하늘만큼?"
덕이 : "하늘만큼."
고모 : "나도 그런데…. 그러면 덕아 덕이는 누구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니, 할머니랑, 아니면 고모랑, 또는 작은아빠랑, 아니면 목련반 선생님이랑?"
덕이 : "할머니."
고모 : "할머니께서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덕이 바로 너야, 알지?"
덕이 :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생각했다. 우울한 심정을 바꿔야겠다. 보다 실질적인 대화를 해야겠다.

고모 : "덕이는 종이접기가 좋니? 아니면 그만둘까?"
덕이 : "좋아."
고모 : "그러면 종이접기하러 계속 버스 타고 복지관에 갈 거야?"
덕이 : "응."
고모 : "덕아, 종이접기하려고 복지관에 갈 때 버스에서 또 잠들면 어떻게 하지?"
덕이 : "몰라."

고모 : "덕아, 덕이가 만약에 할머니나 고모가 모르는 곳에 가면 할머니와 고모는 많이 많이 슬퍼. 그러니까 버스 안에서 덕이가 잠들지 않아야 덕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덕이가 버스 안에서 잠들지 않을까?"
덕이 : "몰라."
고모 : "그래, 덕이 너도 모를 수 있어. 나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거든…. 생각 중이야."

덕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는지 나를 이리 저리 살핀다. 나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고모 : "덕아, 버스를 타고 덕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가면 어떨까?"
덕이 : "응."

그래, 너의 대답은 간단해서 좋다.

과자 들고 버스타기... 성공이다

종이접기 가는 날. 덕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산 뒤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복지관에 가기로 했다. 덕이가 처음 복지관에 다니기 위해 했던 그대로 말이다. 덕이 손을 잡고 음료 등을 준비해 버스 종점에 갔다. 그렇지 않아도 덕이가 없어졌던 일을 기억하는 아저씨가 먼저 반갑게 우리를 알아본다.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찾아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당신 차를 타게 되면 각별히 신경써서 복지관 앞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다른 기사분들께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혹시 덕이가 버스 안에서 잠들면 그대로 종점까지 태우고 와서 내릴 수 있도록 해주시길 당부했다.

버스에 올랐다. 덕이는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나는 그 뒤에 앉았다. 출발과 동시에 덕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갔다. 과자 부스러기는 덕이의 옷과 버스 안 바닥에 떨어졌지만 심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복지관에 도착할 때까지 졸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방법을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덕이가 돈을 가지고 혼자서 슈퍼마켓에서 직접 과자를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나쁜 행위를 하는 아이들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덕이 혼자서 사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교육과 보살핌 #할머니와 나 #현실과 미래 #몸과 마음 #책임과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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