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찬성-반대할 수 있나? 성소수자도 마찬가지"

[인터뷰] 법인 설립 불허 받은 비온뒤무지개재단 윤다림 간사

등록 2015.05.16 13:46수정 2015.05.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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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 윤다림 간사 답변을 하고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윤다림 간사
비온뒤무지개재단 윤다림 간사답변을 하고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윤다림 간사김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재단 등록 서류를 내고 왔어요. 재단 등록 허가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 10월 29일,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법인 설립 허가 신청서를 서울시 행정과에 내고 온 날 이신영 이사장·류홀릭 이사와 인터뷰를 했다. 이미 서울시 복지정책과와 국가인권위에 법인 설립 문의를 했지만 부정적인 답변을 받고 난 뒤였다. "미풍양속에 저해된다"거나 "소용없으니 하지 말라"는 말이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돌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성 소수자를 위한 공익재단'이라는 설명이 국가기관 앞에선 무색했다. 다른 곳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신영 이사장은 법인 설립 허가 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반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서울시 행정과는 여성정책과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설립 허가 신청 업무를 넘겼다. 여성정책과는 또다시 인권과로 보냈다. 인권과에서는 국가인권위로 가라고 했다. 작년 3월, 법인 설립에 관해 문의하자 "법인 설립을 신청해 봐야 상임위원회에서 통과가 안 된다"고 말하던 곳이다.

국가인권위 대신 법무부를 찾아갔다. 담당 공무원은 법무부가 '보편적 인권'을 다룬다고 했다. 그런데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활동이 '한쪽으로 치우친 주제'라고 했다. 한동안 공식적인 허가·불허가 통보가 없었다. 지난 3월에 행정심판을 제기하고 나서야 법인 설립 불허 공문이 도착했다.

법무부는 국가 인권 전반을 관할한다면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단체는 법무부의 법인 설립 허가 대상 단체와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보편적 인권을 다루지만 성소수자를 위한 재단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법무부의 공문 맨 밑, '안전한 나라, 행복한 사회'라는 문구가 공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결과를 어떻게 끌어내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1일 다시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윤다림 간사는 이신영 이사장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꺼냈다. 법인 설립 허가를 수차례 거절당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이슈를 말하고,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걸리는 시간은 중요치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소수자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나 '찬성,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윤다림 간사는 법인 설립 허가 과정을 통해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인지되고 있다'는 것을 다 같이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생각보다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다음은 윤다림 간사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 국가인권위, 서울시, 법무부에 법인 설립을 문의하고, 허가 신청서를 냈지만 결국 불허됐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허탈하겠습니다. 재단 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사실 작년 내내 계속 끌어온 일이기 때문에 '안 될 거다', '안 되고 있다'는 분위기는 다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법무부 측에) 빨리 답변을 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서면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법무부가) '(법인 설립 허가가) 안 될 거다', '왜 (설립 신청을) 냈냐'는 식의 이야기는 계속 해왔잖아요. 그래서 (서면으로 답변을 받기 위해) 행정심판을 냈고, 답변이 왔습니다.


(법인 설립 허가가) 안 날 것이라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 답변을 과연 어떤 내용으로 보낼 것인가가 궁금했던 거죠. 그런데 답변 내용을 보니 너무 어이가 없는 거예요. 핑계를 대도 말이 되는 문장이었으면, 빈말이라도 '그래, 이거 생각하느라 고생했다'고 하겠는데 문장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죠. '법무부는 모든 인권 관련 사항을 다루는데, 소수자 인권은 전체 인권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다룰 수 없다'는 거잖아요. 너무 어이가 없죠. '어이없다'는 표현이 제일 맞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너무 성의가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국가인권위나 서울시의 여러 과들을 거치면서 법무부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된 건가요?
"큰 기대를 안 했다기보다, 법인 설립은 허가돼야 하는 게 맞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여러 기관에 (설립 신청을) 계속 넣어보면서 이 과정이 힘들고 오래 걸린다는 것은 계속 확인하고 있었죠. 하지만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 등록된다는 것이 어떤 상징적인,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결과를 어떻게 끌어내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인 설립 허가가 빨리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정말 사람들에게 (성소수자 이슈가) 제대로 회자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공유되고, 한국 사회의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 알리고. 재단에서는 이런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어요. 법인 설립 허가가 당장 내일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서류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 본인들도 잘 알 거예요"

- 법무부의 불허 결정이 명시된 공문도 행정심판의 과정을 통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답답함도 많이 느꼈겠어요. 허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불허 결정을 받는 것조차 험난했습니다.
"답답하죠. 불허 결정 받는 것도,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독촉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 상황 자체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법무부에 쪼지 않으면 낼 수 없는, 본인들도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저는 서류나 답변이 늦어지는 과정 자체가 법무부에서 이걸(법인 설립 허가 신청)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요. 허가를 거절한 것은 누군가의 압박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본인들끼리 '압박을 받겠다'며 불안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떤 이유에서건 서류상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본인들도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답변서에) 이런 이상한 문장이 나오게 된 것이고요."

- 국가인권위, 서울시, 법무부와 같은 국가기관이 어떤 압박이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나요? 예를 들어 지난해 서울시 인권헌장을 제정할 당시와 같이, 보수 기독교 세력들의 반발을 예상해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든지.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죠.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런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부터,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때부터 보수 기독교 세력이나 보수 세력이 성소수자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게 굴고 크게 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계속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작년부터 이게 더 많이 조직됐고, 더 많은 이들을 포섭하려 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지난 주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 측이 아시아 LGBT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국회에서 '탈동성애 인권포럼'을 했어요.

자기들의 조직적인 움직임, 논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습니다. 국회를 통한 압박이라든가, 서명을 받거나 거리 집회를 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고, 단체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회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서명을 보내게 하는 그런 조직적인 움직임도 계속 있고요.

(국가기관이) 이러한 것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국가기관이 그런 외부의 압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휘둘리지 말고 정말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죠. 실제로 군형법 같은 경우에, 몇몇 국회의원들이 개정안(군형법 제92조의6 개정안)을 냈다가 전화를 너무 많이 받고 '이 사람들 전화 때문에 우리가 일을 할 수 없다', '무섭다' 하며 법안을 철회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자꾸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국가기관이 직접 논의해야 하죠. 이것이야말로 업무 방해니까요. 이러한 업무 방해에 대해 본인들이 강경하게 나가야 하는 것이지, 업무 방해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굴복하겠다는 것은, 물론 그분들은 굴복한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지개 우산의 기적' 후원회원들의 이름이 적힌 '무지개 우산의 기적' 앞에 선 윤다림 간사
'무지개 우산의 기적'후원회원들의 이름이 적힌 '무지개 우산의 기적' 앞에 선 윤다림 간사김예지

사람을 찬성, 반대할 수 있나요?

- '업무 방해'라는 말이 공감가는데요.
"정당하지 않는 내용의 항의를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가 찬성하고 반대하는 프레임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것이 찬성 의견이고 저것이 반대 의견이라고 받아들이는 프레임 자체를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기사에서 북유럽의 어느 나라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교육할 때 '찬반을 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성소수자는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권력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회의 다양한 사람이나 현상 중 하나예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찬성해야 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순간 반대하거나, 불편해하거나, 혐오하는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혐오할 자유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어떤 사람, 인간에 대해 반대하고 찬성하는 프레임이 있을 수 없잖아요.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는, 매번 말하는 그 말이 그저 문장으로만 와 닿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비온뒤무지개재단은 국내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첫 사례'가 되고 있어요.
"처음이라 중요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더 많은 단체들이 생겨날 것이고, 그 단체들이 어떤 필요에 따라서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등록하려고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럴 때마다 국가에서 어떤 핑계를 댈지, 우리는 계속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재단법인) 등록을 하려 했을 때, 처음에 나왔던 얘기가 '담당 부서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를 담당할 부서는 어디인가, 우리를 담당할 부서를 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기관이 담당 부서로서 책임을 가져갈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봐요. 물론 우리가 요구하는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기관들 스스로도 소위 말하는 '소수자 인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단체라는 것이 꼭 '인권'으로만 포섭돼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 스포츠 단체가 생긴다면, 이건 인권의 영역일까요? 이건 인권 영역이라기보다 문화체육부 같은 곳에 가깝잖아요. 성소수자 교육단체라면 교육부 쪽이 가깝고요.

'성소수자가 들어있기 때문에 무조건 인권으로 가야 한다'가 아니라, 각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큰 범위를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 생활 전반에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특정 기관만이 성소수자를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차원에서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지금에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법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실제로 다른 단체들은 세무서에 '비영리단체'와 같은 형태로 등록 신고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국가에 등록된다는 것이 사실, 곧 국가의 관리를 받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등록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들게 했어요. 그런데 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 좀 더 공신력 있고 투명한 회계를 하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선 (기존과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등록된다'와 별개로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가 성소수자 단체를 하나의 단체나 기관으로 인지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 의미들을 획득하고 싶었던 것이죠. 투명성, 공정성 그리고 국가에서의 인지.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인지되고 있다'는 것을 다 같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편집ㅣ손병관 기자

#비온뒤무지개재단 #성소수자 #법무부 #윤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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