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전경.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송주민
오늘은 1월 첫째 주 일요일, 파리 주요 미술관들이 무료 입장을 허용하는 날(매달 첫째 주 일요일)이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서둘렀는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공짜 관람인데 이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그래도 일찍 온 덕분에 1시간여만을 기다린 끝에 이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웅장한 미술관에 들어갔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특히 '벨에포크'(1890~1914)라 불리는 예술이 찬란히 꽃핀 시절의 각종 작품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 게다가 인상주의 회화의 성지라 불리는 곳. "오르세를 걸으면 인상파의 숲을 산책하는 것이 된다. 숲길에서 사랑하는 화가들도 만나고 나무에 걸린 매력적인 작품에 마음도 빼앗긴다."(최상운, '파리 미술관 산책')
연간 3백만 명이 찾는다는 이 거대한 예술의 장에서, 나의 발길은 어디로, 어느 작품으로 향하고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영혼을 적시는 작품은, 나의 명작은 무엇일까. 아니, 명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객관적인 작품성이나 예술사적 가치 등도 물론 있겠지만, 일반적인 취향도 자리하겠지만, 이 순간 스스로가 품고 있는 주관적인 관심사와 절실하리만치 사무치는 고뇌나 지향에 따른 공감도 짙게 개입되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는 내 마음에 걸린 그림을 찾고 쫓는다.
'농민 화가'의 저녁 종소리에 빠져들다예컨대, 작년에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무엇에 매료됐던가. 나는 어떤 상태였던가. "공동묘지보다도 많은 주검을 간직한, 나의 머리는 피라미드, 엄청난 납골당……."(보들레르, '우울'). 그렇게 파리의 우울을 가슴에 품고, 나의 시선은 오로지 고흐의 '자화상'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우두커니, 그러나 나 역시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오직 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 그 실존적 불안과 우울, 그 자신 스스로 뼈에 사무치게 앓았나 보다. 근심과 우울이 심각해지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격정의 눈물은 오히려 건강하다는, 내면의 뜨거움이, 생의 감각이 남아 있다는 표징일까."오늘 나는 그 처절하게 뜨거웠던 자화상을 스치듯 지나갔다. 고흐는 그대로인데,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파고는 어딘가 변했나보다. 그리고 다시 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고흐가 전시된 방보다는 한산했다. 자연과 농촌의 풍경이 두드러진 방, 그리고 밀레의 '만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