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비노 허구논쟁... 문재인의 문제는 리더십

[진단] 문재인 취임 100일이 남긴 것... 선거패배 후폭풍, 계파 논란으로 번져

등록 2015.05.17 19:27수정 2015.05.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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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문 대표는 이날 당 혁신안 방향과 관련해 "기득권에 안주해서는 우리 당의 희망도 미래도 없다"며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문 대표는 이날 당 혁신안 방향과 관련해 "기득권에 안주해서는 우리 당의 희망도 미래도 없다"며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남소연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과 지도부 사퇴 요구,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 논란, 김한길 전 공동대표의 친노 비판, 공천권 지분 요구 논란, 문재인 대표의 글 유출, 박지원 의원의 '패권주의 비판'.

4.29재보궐 선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당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던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문 대표와 당 대표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한 박지원 의원은 경선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가 대표가 되면 당이 쪼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문 대표는 이에 자신이 "계파 문제를 종식시킬 적임자"라고 맞섰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계파에 'ㄱ'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박 의원의 예측이 맞았다. 당은 실제로 분열 직전의 모습이다. 반대로 문 대표의 말은 틀렸다. 당에는 '친노-비노' '계파 패권'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현재 이런 당 상황을 놓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문 대표에게 계파 문제는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의미다.

5월 18일, 문 대표의 취임 100일을 맞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다.

'우향우 논란' 속에서 대선후보-정당 지지율은 상승

문 대표는 지난 2월 8일 전당대회에서 당선됐다. 문 대표의 취임 이후 그의 대선 지지도와 당의 지지도는 동반 상승했다. 당 지지도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기간부터 회복세였지만 새누리당 지지도를 턱밑까지 추격한 건 문 대표의 취임 직후였다.  그것이 '문재인 효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은 22.6%를 기록했다. 오랫동안 10%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도 30.5%을 기록해 약 7개월 만에 처음으로 30%대를 돌파했다. 새누리당(35.2%)과의 지지율 격차도 4.7%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같은 흐름은 한동안 계속됐다. 취임 직후 문 대표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천안함 사태 등에서도 북의 행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안보정당'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당 내에서는 '우향우 논란'이 있었지만 여론은 여전히 우호적이었고, 문 대표와 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문 대표는 여기에 '유능한 경제정당'을 내세워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려 노력했다. 경제단체나 벤처회사, 취업준비생들을 만나는 일정이 많아졌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실상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함께 당직 인선에서는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배제하면서 '탕평인사'를 펼치기도 했다.

'작은 선거'라고 생각했던 4.29재보선에서의 '패착'

무난했던 그의 대표 임기가 급반전된 것은 4.29재보궐 선거를 맞이하면서다. 새정치연합은 전국에 4석에 불과한 '미니 재보선'인 만큼 무난히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력을 집중하기 보다는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공천 잡음'을 없애기 위해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모든 지역에서 경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패착이었다. 선거는 새정치연합의 예상과 달리 판이 커져 있었다. 여권 핵심 인사들의 이름이 들어간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다. 천정배·정동영 등 당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사들이 탈당해 '야권 교체'를 제기하며 출마했다. 어느새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야권의 분열을 잠재워야 하는 선거가 돼 있었다.

 4·29재보선 광주 서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 확정 직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4·29재보선 광주 서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 확정 직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강성관

그런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천정배, 정동영이라는 야권의 거물 정치인이 맞붙은 광주와 서울 관악에서는 야권의 전통 강세 지역이라는 것에 의지해 막연한 승리를 기대했다. 경기 성남과 인천에서는 신상진, 안상수라는 여권의 경쟁력이 있는 후보들과 맞붙었다. 

결과는 처참한 전패였다. 문 대표가 '뚜벅이 유세'로 골목을 누빈 광주에서 그의 얼굴만 보고 표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야권이 분열된 관악에서는 정동영을 잠재우지 못했고, 지역 공약에 충실한 여권 후보에 밀렸다. 성남과 인천 역시 여권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결과였다. 새정치연합의 '정권 심판론'은 또 다시 선택받지 못했다.

떨어지는 문재인-새정치연합 지지율

그때부터 당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보면 당은 선거 때문이 아니라 선거 이후 상황 때문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선거 패배를 수습하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져 지지율을 까먹고, 지지율 하락이 또 다시 당의 분란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전당대회 이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성인 1001명 대상으로 실시)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42%로 지난주에 비해 1%포인트 오른 반면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22%로 2%포인트 떨어졌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매주 1%포인트 꾸준히 상승하고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매주 2%포인트씩 빠지는 모습이다.

문 대표의 대선 후보로서 입지도 흔들렸다. 같은 조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2017년 대선을 양자 가상대결에서 두 사람은 각각 38%, 42%를 얻었다. 김 대표가 문 대표를 4%포인트 이긴 것이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는 같은 조사에서 문 대표가 김 대표에 14~20%포인트 앞섰지만 4.29재보선 이후 역전된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지율에는 '싸울 때는 떨어지고 안 싸울 때는 올라간다'는 공식이 적용된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벌어지자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이후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각 계파의 대표 격 인사들을 비대위원으로 내세우면서 갈등을 봉합하자 지지율은 상승했고, 20%대에서 안정을 찾았다.

다른 무엇보다 '계파 갈등'이 당 지지율을 결정하는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지지율 추락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갤럽은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재보선 결과에 대한 책임론과 당내 갈등이 불거지며 3주 연속 하락했다"라고 진단했다. 결국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당과 문 대표 모두에게 가장 큰 과제인 것이다.

'친노 패권주의' 비난 빌미 준 문재인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다. 갤럽의 같은 조사에서 문 대표가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응답(53%)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33%)보다 20%포인트나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당의 계파 갈등이 문 대표의 입지를 흔드는 정도는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지금의 '친노-비노 갈등'이 실체가 없는 '허구 논쟁'이라는 점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는 지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새정치연합의 선거 패배는 '친노 패권주의'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선거 전망의 실패, 전략적 패착이 원인이다. 여기에 당 대표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를 지적받는 다면 '무능함'이지 '패권주의'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계파 갈등은 정확한 문제 진단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 대표의 책임을 묻기가 가장 손쉽고, 치명적인 방법이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와 반대점에 있는 당내 세력의 인사들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선거 패배와 수습 과정을 모두 잡아 '친노'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의 불씨를 문 대표 스스로가 던졌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계파 논란을 종식시킬 적임자'라고 했지만 그런 면모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선거 이후 거취 문제, 광주 방문 등을 결정할 때 최고위원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대표의 모든 결정을 상의할 필요는 없지만 선거 참패라는 큰 위기 사안이라는 점은 고려됐어야 했다.

언제든지 계파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그에 대한 고민 없이 "다시 시작하겠다"라는 메시지로 일점 돌파를 시도했다. 이는 '친노 패권주의'를 제기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됐다. 선거 패배 이후 신속하게 당내 여론을 수습하고 혁신안을 추진해 계파 갈등을 사전 차단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혁신기구', 계파 논쟁 2라운드 될 것인가?

 지난 2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당대표 경선에서 경쟁을 했던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이 회동을 마치고 각각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당대표 경선에서 경쟁을 했던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이 회동을 마치고 각각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이희훈

이러한 당내 갈등은 일단 '휴전'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병헌 최고위원은 "대표께 당 혁신안 마련을 위한 시간을 드려야 한다"라며 "서로 절제의 시간과 휴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영식 최고위원도 "대표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책임 있게 수습 방안을 만드는 데 총의를 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당 지도부는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혁신기구'에서 당 쇄신안을 만들기로 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혁신기구에서 공천기득권 포기 등 모든 의제를 제한 없이 논의할 것"이라며 "혁신기구의 구성에 있어 당의 단합을 위해 폭넓은 탕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공천권 지분 논란 등을 모든 갈등 요인을 계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혁신기구' 구성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계파 논쟁의 2라운드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 대표의 리더십이다. 또 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진다면 당이 온전한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 어렵다. 취임 100일, 5.18을 맞아 광주를 방문하는 문 대표의 행보가 새정치연합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문재인 #새정치연합 #친노 #계파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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