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 장군 절명시 '타임캡슐'에 담겼다

[인물] 이대원 장군 석상 기부한 이민식 손죽초 총동문회장

등록 2015.05.18 19:04수정 2015.05.1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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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죽해전에서 왜구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대원 장군의 넋이 살아있는 손죽도 선창장 댓머리에서 손죽인의 날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 이민식 제공


"손죽도는 호국과 충절의 섬입니다. 여객선이 닿는 곳에 4m 높이 26톤가량의 동상을 해외에서 제작 중입니다. 이대원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3월 손죽도 여행에 동행한 손죽인 이민식씨의 강렬한 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관련기사 <징비록>에 나오는 그 섬, 이런 아픈 역사가) 당시 그의 말이 남다르게 각인되었던 건 나 역시 섬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60이 넘는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향사랑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428년 만에 모습 드러낸 이대원 장군

'손죽인의 날 선포식'에서 이대원 장군의 석상 제막식과 화전놀이 재현행사가 열렸다. 선창에 풍어를 상징하는 오색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 이민식 제공


2일 '손죽인의 날 선포식'에서 이대원 장군의 석상 제막식이 열린가운데 선착장에서 해군 제3함대 군악대가 제막식에 앞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이민식 제공


그 후 2개월이 지났다. 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대원 장군의 동상제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반가웠다. 약속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후 방송을 통해 그날의 행사를 접할 수 있었지만 미안했다. 428년 전 손죽도 해전에서 최후를 마감한 이대원 장군이 다시 되살아나는 뜻 깊은 행사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맘에 걸렸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위치한 손죽도는 마을이 한 개뿐인 단일부락이다. 해방 후 350호에 1500여명이 거주했다. 한때 초등생 350여명이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은 딱 한 명의 학생과 교사가 겨우 학교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학교가 없어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현재 마을주민은 95세대 184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사극 KBS <징비록>에 등장하는 손죽도. 이대원 장군의 활약 때문이었다. '하늘이 내린 재상'으로 칭송 받는 유성룡은 징비록을 토대로 7년 전쟁 임진왜란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당시 조정에선 왜장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설에 대해 신하들끼리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았다.

선조는 "만에 하나 단 한 척의 왜선이라도 침입할 시에는 직접 대군을 이끌어 왜의 본토를 정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지만 조정안에 갇힌 그의 눈은 왜구를 간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성룡은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직접 민심을 탐방하며 구멍 뚫린 군사체계의 전환을 주장한다. 또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5년 전 손죽도에서 발생한 정해왜변(1587년)의 예를 들어 관련자를 질책하는 장면은 선조와 대비된다.


이후 1차 손죽해전에서 대승했던 이대원 장군은 2차 해전에서 대패한다. 공을 가로채려는 상관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었다. 왜구는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자 포로가 된 장군을 돛대에다 매달아 참혹하게 칼로 찔러 절명케 했다. 허나 혈서로 절명시를 쓴후 위축되지 않고 적을 나무라던 장군의 기상은 손죽도 바다 위에 쩌렁쩌렁 울려 펴졌단다.

"세월호 참사 때 받은 것 다시 환원해야겠다는 심정"


이대원 장군의 석상은 손죽도 마을 입구인 댓머리에 세워졌다. 베일벗은 4.4m 무게 8톤 규모의 이대원 장군 석상의 모습이 공개된 가운데 내빈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민식 제공


지난 2일 손죽도 일원에서 '손죽인의 날 선포식'과 함께 이대원 장군의 석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손죽초등학교 총동문회(회장 이민식)가 주관해 손죽사무소, 손죽향우회, 함평이씨 종친회,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수스킨스쿠버연합회를 포함해 450여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또 해군 제3함대 군악대가 함께했다.

장군을 조각한 석상은 4.5m에다 무게만 26톤인 원석을 다듬어 4.4m길이 8톤의 작품이 탄생됐다. 3.7m 좌대높이는 장군의 생일인 3월 7일과 좌대넓이 2.1m는 장군이 21세 수군만호가 된 나이를 상징한다.

석상 건립문구에는 "마제봉 정기를 받아 손죽항 부두에 충렬공 이대원 장군의 석상을 세운다. 전적지요 유적지인 손죽도 똑바골 무구장터에는 장군의 분묘가 안장되어 있고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마을 중심에는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 박면군관 휘하 무명 장졸들을 모셔있는 장군사당(문화재239호)이 있으며 매년 3월 3일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장군의 석상은 마을 입구인 댓머리에 세워졌다. 동상제막 프로젝트와 함께 그 비용은 손죽도 총동문회 이민식 회장이 후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민간 잠수사 1개 팀이 정부요청으로 인명구조에 참여했다"면서 "국가에서 받은걸 다시 환원해야겠다는 심정에서 후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통해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 같은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라고 석상 건립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이대원 동상 제막식과 함께 타임캡슐이 봉인됐다. 캡슐 안에는 평택문화원에서 발간한 책과 이대원 장군 관련된 절명시를 해군본부 군악대가 녹음한 CD가 노래로 제작되어 동상 좌대 밑과 동상이 바라보는 바다에도 설치됐다.

손죽도 동상제막식에 참석한 함평이씨 이계은 평택 대종회 회장은 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손죽도 앞바다에 밍크고래가 잡힌 뉴스를 접했다"면서 "손죽도가 함평이씨 종친한테는 의미가 깊고 중요해 해마다 참여하고 있는데 갈 때마다 고향 같은 심정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민식 위원장이 사재를 털어 석상을 건립해 주고 마무리까지 타임캡슐을 봉인해 함평이씨와 손죽도 주민들 그리고 여수시민들이 호국영령의 돌봄으로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아래는 16일 손죽초등학교 이민식 총동문회장과 나눈 이야기다.

손죽인 이민식.... 이대원 장군 석상 쾌척

이대원 장군의 석상은 손죽도 마을 입구인 댓머리에 세워졌다. 동상제막 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그 비용을 후원한 손죽도 총동문회 이민식 회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 이민식 제공


- 이대원 장군 석상 건립자로 새겨졌다. 어떠한 계기로 추진하게 되었나.
"충효의 섬 손대도(손죽도)는 이대원 장군의 절명시를 생각할 때 가슴이 찡하다. 세월호 참사 때 민간 잠수사 1개 팀이 정부요청으로 인명구조에 참여했다. 국가에서 받은걸 다시 환원해야겠다는 심정에서 후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통해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이 같은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

- 이대원 장군 석상규모가 놀랍다. 치수는 어떤 의미인가.
"이대원 장군 석상은 총 높이가 4.4m다. 좌대넓이 2.1m 높이 3.7m다. 치수가 가진 의미는 좌대높이는 장군생일인 3월 7일과 좌대넓이는 장군이 21세 수군만호가 된 나이를 상징한다."

- 동상건립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제작부터 섬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 베트남에 찾아가 원석을 구했다. 장군의 석상은 호치민에서 조각되어 배를 통해 이곳까지 이송됐다. 동상 재질은 옥석이다. 손하 작가의 손을 거쳐 예술로 탄생했다. 동상에 제작된 원석은 4.5m에다 무게만 26톤이었다. 이후 3개월간의 제작기간을 걸쳐 최종 8톤의 작품이 탄생됐다. 이동상을 컨테이너 선박으로 운송되어 광양항에 도착했다. 이후 100톤 크레인과 예인선 부선으로 손죽도까지 이송돼 설치됐다. 1587년 손죽도 앞바다에서 왜구와 맞서 싸운 장군의 모습이 새롭게 탄생돼 감회가 새롭다."

- 고향 손죽도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손죽도는 임진왜란 5년 전 이대원 장군이 왜구와 맞서 싸운 곳이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한 장군의 충렬사와 묘비가 있다. 손죽인들은 400여 년 동안 장군의 넋을 모시고 있다. 앞으로 둘레길 일주도로가 완공되고 이대원 장군 성역화 사업과 화전놀이 문화사업을 꾸준히 발전시킨다면 '가고 싶은 섬'으로 탄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분들이 손죽도를 찾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손죽도 #이대원 장군 #이민식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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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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