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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갈 생각을 하면서 논둑길을 걷습니다. 자가용을 거느리지 않는 우리 집 사람들은 다 함께 씩씩하게 걸어서 바람을 가르고 햇볕을 쬡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십 분 남짓 달리면 닿는 바닷가이고, 두 다리로 걸어서 가자면 여러 시간이 걸리는 바닷가입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납니다. 논둑길을 노래하면서 걷습니다. 삼십 분 남짓 걸어서 이웃마을에 닿습니다. 이웃마을 앞은 큰길입니다. 이 큰길에는 바다와 맞닿은 마을까지 가는 시골버스가 두 시간에 한 차례 지나갑니다. 다만, 포구가 있는 바닷마을로 달리는 버스일 뿐, 모래밭이 있는 바닷가로 가는 버스는 아닙니다. 그래서, 포구마을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숲길 어귀에서 내려야 합니다. 숲길 어귀에서 오십 분쯤 더 걸어가면 드디어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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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걸어가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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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걸어가자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벌써 신이 나서 펄쩍 뛰어오르면서 기쁘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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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둑길을 걷습니다. ⓒ 최종규
걸어가면서 땅을 밟습니다. 걸어가면서 하늘을 봅니다. 걸어가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걸어가면서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걸어가면서 왜가리를 만납니다. 걸어가면서 논꽃과 들꽃과 숲꽃을 마주칩니다. 걸어가면서 이웃마을 할매와 할배한테 인사합니다. 걸어가면서 두 아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놀이를 합니다.
다 함께 걸어가면서 오월바람을 한결 짙게 마십니다. 다 함께 걸어가면서 오월볕을 한결 따뜻하게 누립니다. 다 함께 걸어가면서 찔레꽃내음과 국수꽃내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한 시간 남짓 걸으면 아이들은 슬슬 다리가 아픕니다. 이즈음부터 아이들을 하나씩 업거나 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만큼 업히거나 안겨서 걸으면 다시 기운을 차립니다. 새로운 몸과 마음이 되어 또 신나게 걷거나 달리면서 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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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다리로 걷기에, 봄빛과 봄내음을 한결 짙게 누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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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하늘을 온몸으로 안으면서 걷습니다. 걷다가 달립니다. 놀면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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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걸어서 이웃마을까지 온 뒤, 군내버스를 탑니다. 군내버스를 한 번 타기에 두 시간 가까이 더 걸어야 하는 길을 아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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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저마다 창가에 앉아서 창밖 모습을 누립니다. ⓒ 최종규
자가용이 있어서 십 몇 분 만에 바닷가까지 씽 하고 달릴 적에도 찔레꽃내음이나 국수꽃내음을 맡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가용으로 씽 하고 달리면, 찔레꽃내음이나 국수꽃내음(국수나무꽃 내음)을 고작 몇 초쯤 마시고 맙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가면, 찔레꽃내음도 국수꽃내음도 몇 분 동안 마실 수 있고, 걷는 내내 마실 수 있으며, 때로는 아예 눌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꽃내음에 폭 안길 수 있습니다.
걷는 까닭은 더 빨리 갈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걷는 까닭은 일부러 늦게 가려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걷는 까닭은 다 함께 이 길을 걸으면서 모든 아름다운 숨결을 맞아들이고 모든 사랑스러운 바람과 볕과 흙과 나무와 꽃과 풀과 벌레와 개구리를 이웃으로 어깨동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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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걸어야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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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야, 네 옆에 찔레꽃이 인사하네. 기운내라고.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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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내음을 맡으며 다리를 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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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꽃(국수나무꽃)은 달콤하면서 싱그러운 봄냄새를 짙게 베풀어 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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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길을 걷다가 발그스름한 찔레꽃도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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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약에 타죽는 소리쟁이도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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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화도 한 송이 보면서 더 기운을 내어 걷습니다. ⓒ 최종규
휴가철이 아닌 봄철에 바다를 찾아오면, 바닷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바다는 온통 우리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됩니다. 오직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호젓하게 바람과 햇볕을 누리면서, 우리가 선 이 땅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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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먼저 달려드는 아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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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감 자동차한테도 바닷물을 누리게 해 주는 아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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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바람을 가득 마시면서 다리를 쉽니다. ⓒ 최종규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사니까 시골길을 걷습니다. 시골길을 걸으면서 시골하늘을 보고, 시골바다와 마주하며, 시골꽃이 베푸는 냄새를 맡습니다.
1초라도 안 마시면 목숨을 이을 수 없는 바람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파란 바람으로 둘러싸인 채 살지만, 막상 파란 바람을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거나 살폈는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다 함께 시골길을 걸으면서 삶을 새로 돌아보고, 우리 보금자리를 새삼스게 되새깁니다.
바닷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이내 곯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롭게 기운이 나는지, 별이 돋고 논개구리가 울 때까지 신나게 논 뒤에 비로소 잠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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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다에서 노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업고 안아 주기 바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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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호젓한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숲내음을 맡습니다. ⓒ 최종규
"다음에 또 바다에 가서 놀고 싶어."
"그래, 다음에 또 걸어가자."
"응."
"다음에 바다까지 또 걸어가자면 얼른 자고 즐겁게 꿈을 꾸면서 새 기운을 얻어야지. 잘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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