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자리, 절벽 위에 선 '부처'

[강원도 자전거여행] 영월군 요선암에서 법흥사까지

등록 2015.05.25 11:49수정 2015.06.0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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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전강 요선암.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둥그스름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들.
추전강 요선암.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둥그스름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들.성낙선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요선암에서 법흥사까지 가는 길 위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다. 법흥천을 따라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수없이 많은 캠핑장과 마주친다. 평생 이렇게 많은 캠핑장은 보게 된 건 이곳이 처음이다.

법흥계곡은 그만큼 캠핑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이 투명하고 깨끗하다. 낮은 여울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캠핑장 주변은 온통 소나무 숲이다. 솔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가슴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다.


요선암에서 법흥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길이다. 평지를 달리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꽤 힘든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행을 하는 동안, 피곤한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솔 향기를 맡으며 페달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경사길이라고 해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매연으로 가득 차 있는 도시의 복잡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면, 얼마 못 가서 자전거를 타는 일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두가 다 솔 향이 묻어나는 맑은 공기 덕분이다. 그러니까 법흥계곡은 캠핑을 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도 꽤 적합한 조건을 갖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 요선암

요선암은 법흥천이 주천강과 만나는 합강머리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법흥천이 끝나는 지점에서 주천강으로 내려서면, 강물 밖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주천강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주천강은 한반도지형이 있는 지점에서 평창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다음에는 청령포 부근에서 동강과 함께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주천강이라는 이름으로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선암에서 마주하게 된 주천강은 그 이름처럼 아무런 특색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강이 아니었다. 주천강에는 또 주천강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풍경이 있었다.


 주천강 요선암, 강물 위에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들.
주천강 요선암, 강물 위에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들.성낙선

요선암은 미륵암이라는 절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 절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숲과 언덕이 강변 풍경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절 안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서 강가로 들어서면, 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강물 위로 솟은 하얀 바위들이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강물 위를 온통 뒤덮고 있는데, 그 바위들이 누군가 마치 떡이라도 주무르듯이 아무렇게나 매만져 놓은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각이 진 바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매끄러운 표면에 유려한 곡선을 가지고 있다. 그 모양이 아닌 게 아니라 콩고물을 묻히기 전, 잘 치댄 인절미처럼 보인다.


바위 표면 여기저기에 밥을 담는 공기 그릇처럼 원통형으로 패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형태가 자연이 한 짓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돌개구멍'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이다. 그 생김새가 하도 특이해서,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에 이 돌개구멍들을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대자연이 아니고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이곳에서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요선'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주천강에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요선암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마애여래좌상. 뒤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측면에서 바라본 마애여래좌상. 뒤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성낙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서 있는 불상

요선암에서 산 위로 나 있는 좁은 길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강가 높은 절벽 위에 서 있는 바위와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강원도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마애상이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불상은 질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선은 두껍고, 상하 몸체는 어딘가 모르게 서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바위 표면에 새겨진 불상이 대개 그렇듯이 상당히 투박한 편이다. 불상만 놓고 봤을 땐 보잘것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불상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바로 이 불상이 서 있는 위치다. 불상은 커다란 암반 위에 올라 서 있는 둥그스름한 바위 표면에 새겨져 있다. 그 바위가 마치 설악산에 있는 흔들바위를 연상시킨다.

그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게다가 불상 뒤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 주천강이 까마득하다. 모골이 다 송연해지는 광경이다. 하지만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서 그런 불안한 기운을 느끼는 건 오로지 인간들뿐이다. 바위 표면에 새겨진 불상의 얼굴은 절벽 위에 서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상당히 평온한 기색이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서 있는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주천강.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서 있는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주천강.성낙선

그러니 애초 그 불상에서 불안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연히 그 기운이 인간들에게도 전해지는데, 거기에 무언가를 초탈한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처라는 대상을 섬기는데 이처럼 적당한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이곳에 불상을 만든 사람들은 장소 하나만큼은 제대로 선택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옆에는 '요선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가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불상'과 '정자'라는 말이 한 가지로 통하기 어려운데도, 이곳에서는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요선정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세워졌다. 불상과 정자가 만들어진 시기에 커다란 격차가 있다. 하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법흥사 경내, 만다라전 앞에 서 있는 소나무.
법흥사 경내, 만다라전 앞에 서 있는 소나무.성낙선

해우소마저 풍경의 일부가 되는 곳, 법흥사

요선암에서 법흥사까지는 약 10여 킬로미터 거리다. 자동차로는 몇 분 안에도 가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자전거로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야 한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면서 쉬어가다 보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가는 길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캠핑장을 지나친다. 캠핑장 주변 풍경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법흥사 가는 길이 조금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법흥사는 꽤 유서 깊은 절이다. 643년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종9산문 중 사자산문의 중심 도량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대 적멸보궁 중에 하나가 있는 곳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야 했던 만큼 사람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 속, 사자산 연화봉 기슭에 터를 잡았다. 그렇지만 깊은 산 속도 다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절문 앞까지 도로가 놓여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법흥사는 여러 차례 소실을 거듭해온 끝에 1930년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 길 옆에 두 그루 소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 길 옆에 두 그루 소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성낙선

이 절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이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키가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절 주변으로 하늘 높이 곧게 뻗은 금강송이 즐비하다. 이처럼 기품이 있는 소나무 숲을 가꿀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법흥계곡을 지나가는 길가 한쪽에 '금표' 표시가 적혀 있는 바위가 남아 있는 걸 찾아볼 수 있다.

금표 표시를 봐서, 이곳은 대대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해온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 덕에 이곳의 소나무 숲도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법흥사에서는 소나무들이 어찌나 기품이 있던지, 해우소 앞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조차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해우소마저 그림처럼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이다.

불상이 따로 모셔져 있지 않은 적멸보궁

적멸보궁에 오르기 전에 만다라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티베트 스님 8명을 초청해서 만든 '만다라' 한 점이 있다. 티베트 스님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모래를 사용해 직접 만든 만다라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만다라전 앞에도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데, 그 소나무들이 또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법흥사는 불교성지다. 적멸보궁 뒤쪽에서 석분과 부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례객들.
법흥사는 불교성지다. 적멸보궁 뒤쪽에서 석분과 부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례객들.성낙선

만다라전에서 시작되는 길 끝에 적멸보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적멸보궁 역시 금강송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그곳에 불상이 따로 없다.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방석 하나만 깔려 있다.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는 건, 불상을 부처의 진신사리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진신'이 있는데, 그 자리에 허상이나 마찬가지인 '불상'을 앉힐 이유가 없다.

적멸보궁 뒤편이 진신사리를 봉안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이 장소는 원래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 지금은 석분과 부도가 하나 남아 있다. 석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겉보기에 무슨 무덤처럼 보인다. 이 석분은 입구를 화강암으로 봉하기 전까지는 법흥사 스님들이 수도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누구는 석분과 부도가 있는 곳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어찌 된 일인지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한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적멸'은 모든 번뇌가 사라져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사실 진신사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멸보궁, 뒤쪽으로 사자산이 올려다 보인다.
적멸보궁, 뒤쪽으로 사자산이 올려다 보인다.성낙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졸음운전' 경고 문구

법흥사를 떠나 요선암 방향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법흥사를 향해 올라갈 때와 달리, 요선암을 향해 내려갈 때는 별 힘들이지 않고 내려갈 수 있다. 법흥사를 향해 올라갈 때 느꼈던 고통이 그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긴 번뇌 끝에 아주 짧게나마 적멸을 맛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적멸 끝에 다시 번뇌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속도로 위에 내걸린 현수막들이 시신경을 자극한다. 그 현수막에 '졸음운전은 살인운전',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니다'와 같은 살벌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살풍경한지 모르겠다. 현수막이 적힌 문구들이 지나치게 강렬하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효과는 있다. 그런데 졸음운전이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꼭 그처럼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 강한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 문구들이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정서를 대변한다.

 법흥사 경내 해우소 앞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내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쁜 기운들은 모두 다 이곳에 쏟아내고서 되돌아가시기를...
법흥사 경내 해우소 앞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내 몸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쁜 기운들은 모두 다 이곳에 쏟아내고서 되돌아가시기를...성낙선

사람들의 정서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는 현상이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5월 25일은 '부처님이 오신 날'이다. 부처가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부처가 원했던 세상은 결코 이런 세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 것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선암을 찾아간 김에 잠깐 호야지리박물관에 들른다. 그곳에서 6월 30일까지 독도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에도 독도가 우리나라 땅으로 표시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전시회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독도 특강'을 들을 수도 있다. 영월을 여행하는 길에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볼 만한 전시회라는 생각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요선암 #법흥사 #적멸보궁 #주천강 #사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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