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엔 가을이 때문인지 결코 들어오지 않는다
박혜림
용량이 커질수록 저렴해진다는 것을 안 후론, 집에는 가을이를 위한 노견용 사료와 고양이용 대용량 사료가 두둑하게 배치돼있다. 워낙 도도한 그들이기에 밥을 먹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다음 날 깨끗이 비운 그릇을 보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캣맘'혹은 '냥집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밥 잘 먹고 아프지만 않아도 고마울 텐데 최근엔 내게 인사를 하는 녀석이 생겼다. 배는 하얗고 등은 까만 그 애는 나를 안다. 어떤 귀엽고 작은 애가 나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히 설레는 일이다. 퇴근길,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끄는 찰나, '누아'하며 다가오는 고양이라니!
집에서 기다리는 흰둥 강아지도 감격이지만 골목에서 마주치는 이 아이도 무척이나 반갑다. 내 차를 알고, 내 발걸음을 알고, 내 목소리를 안다. 확실하다. 다른 사람이 오면 비호같이 숨는데 나에겐 그렇지 않다. 보석 같은 눈을 깜박이며 '누아'하는 모습에 피곤함도 잊고 후다닥 사료를 챙겨 밖으로 나가게 된다. 가을이도 나의 귀가만을 기다렸을 텐데. 하지만 침대 생활하는 가을이 보다는 그 애가 더 가혹한 상황일 테니 가을도 이해해주리라.
유기견 보호소에 대한 편견이 까만 매력둥이와 가을이는 친하지 않다. 호기심으로 다가간 가을이를 그 애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재규어 같은 몸놀림으로 잡아채려했다. 가을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날 수밖에. 그 한 번의 학습으로 가을이는 고양이과 생물이 서있는 길목엔 입장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렇게 앙살을 부리면서 어찌 순해빠진 가을이에겐 뱀파이어처럼 이를 드러낼까? 놀라운 양면성이다.
조금 더 지켜보니 그 애는 나에게만 애교를 부린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윗집 아주머니는 '나비야'라고 불렀고 앞집 외국인 부인은 '스위리'하고 불렀으며 조신한 여학우들은 '야옹아'하며 반겼다. 때론 그 애의 '누아'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세 명의 여자가 세 개의 밥그릇을 어째야할지 난처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배고픈 다른 애들도 많으니 밥이 남을 걱정은 없다만, 뭐랄까, 그 애가 '나만의 무엇'은 아니란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인간의 두 얼굴은 어떨까? '청순한 그녀가 섹시한 면도 있습디다'하는 이야기를 하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의 양면성이 먼저 떠오른다. 족보며 혈통을 열심히 따져 입양해놓곤 나몰라라 버리는 잔인성, 훌륭한 보호자가 되겠다 선언해놓고 오히려 학대를 일삼는 변태성. 유기동물 보호소엔 병들고 나이든 동물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애견샵이나 전문 브리더로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을 주고 수년을 기다려야 겨우 입양이 가능한 소위 '고급 품종'도 많이 있다. 이 녀석들이 단순히 길을 잃은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만은, 명백히 버려진 아이들이다.
또 보호소에 제 발로 찾아와 데려가겠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생각해 그냥 보낼 것 같지만, 악의 소굴로 끌고 간 결과가 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소에 걸려온 전화, 방문객에게 마냥 웃는 낯일 수가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도 각자의 터전에서 멀쩡한 얼굴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그들. 이면엔 생명을 그저 액세서리로 취급하고 무책임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추악한 면이 도사리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동물 유기, 학대의 기사들을 보며 오늘도 하루살이 같이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는 동물들이 가엽다. 세 얼굴도 좋고 네 얼굴도 좋으니 약한 것들이 강건하게 살아나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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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스위리, 야옹이... 밉지 않은 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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