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얻는 용기

준수를 '쬐끔' 용감하게 만든 항일 대하소설 <불타는 반도>

등록 2015.05.27 18:11수정 2015.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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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 "쌤! 왜 신문 보면서 그리 인상을 쓰세요"
코끼리 쌤: "우리나라 땅인 독도를 일본이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준수! 네 집을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이라고 하면 넌 어떻게 할래"
준수: "쥐어패야지요!"
코끼리 쌤: "우리가 저네들을 쥐어패기 전에 저네들이 아마 먼저 쳐들어올걸!"
준수: "그걸 쌤이 어떻게 아세요"
코끼리 쌤: "역사가 말해 주니까!"
준수: "쌤! 그러면 역사가 말해주는 대로 일본이 쳐들어오면 우리는 어떻게 하죠"
코끼리 쌤: "싸워야지!"
준수: "쌤! 저는 어리니까 안 싸워도 되죠?"
코끼리 쌤: "아니지. 너는 학도병으로 가야지! 너는 덩치도 크잖아. 벌써 네 키가 170cm 아니냐? 육박전은 잘하게 생겼는데!"
준수: "만약 제가 총 들고 싸우다 보면 죽을 수도 있지요?"
코끼리 쌤: "그럼! 아무래도 죽을 확률이 높지!"
준수: "저는 죽기 싫어요! 독도를 그냥 일본에 주고 우리 안 싸우면 안 돼요? 그러면 나도 안 죽잖아요!"
코끼리 쌤: "뭐? 네가 죽기 싫어서 독도를 그냥 주자고?"

그리고 작가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에 들어가고 완성된 원고를 제일 먼저 준수에게 읽힌다. 물론 여기에는 한 권 읽는데 1만원을 주겠다는 딜이 따른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눈빛으로 이 책을 읽던 준수가 5권 어딘가를 읽을 때 눈물을 비추는 것을 보고 묻는다.


"왜, 좀 슬프냐?"
"차지혁 아저씨가 죽는 장면이요!"
"그래? 차지혁 전문가가 남을 위해서 일본군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준수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쓴 것이 헛고생은 아니었다고. 솔직히 이 책이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역사를 조금 아는 것만으로 준수는 '쬐끔' 용기를 얻었습니다. 누구라도 알고 나면 준수처럼 용기를 얻도록 하는 게 역사 아닐까요?

최근 나온 항일 대하소설 <불타는 반도>(밥북 펴냄, 전 5권) 작가의 말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코끼리 쌤은 작가이고 준수는 작가가 운영하는 학원의 학생이다. 전문작가도 아닌 불타는 반도의 작가는 준수의 그 한마디에 집필을 시작했고 신진작가로 놀랍게도 5권 총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이 책은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오늘날도 이어지는 일본의 도발을 보며 이 땅의 아이들이 아픈 역사를 알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그때 당시 거대한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민초들의 이야기글 통해 일본의 실체와 역사를 알려준다.

그렇다고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소설은 아니며 청소년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란 의미이다. 이렇게 작가가 청소년까지 염두에 두고 쓴 탓인지 책은 무려 다섯 권에 달하는 대작임에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전혀 지루한 감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특히 1권에서 주인을 잃고 5권까지 주인공 역할을 하는 진돗개 진스칸의 활약은 상상력의 절정이면서도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고 생생하게 느껴지며 흥미를 더해 주었다. 이런 진스칸의 눈부신 활약도 압권이지만 일본군과 비교도 되지 않는 절대 열세의 전력을 가지고도 농민군이나 의병이 일본군을 압도하는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 전법으로 일본 수군을 물리치는 것처럼 통쾌했다. 또 3권부터 등장하며 이 책에서 '전문가'로 통하는 이들의 활약은 임꺽정이나 장길산에 나오는 의적처럼 전문 분야의 솜씨를 자랑하며 일본군을 압도했다.

당시에는 벌어지지 않았던 조선 처녀들을 종군위안부로 강제 납치하는 설정 등은 역사적 사실에 혼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들고, 몇몇 장면은 즉석에서 꾸며낸 듯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해 명백한 역사적 사실마저 허구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걸 가장 우선하다 보니 빚어진 일로 보이기는 하나 소설의 흥미를 반감하거나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쉽게 다가가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고 옛날 것은 고리타분하다고 더욱 기피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기법이 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이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진돗개라는 다소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하여 재미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작가는 왜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 역사는 어떤 것인지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아마도 작가가 우리에게 알리려는 역사는 오늘도 이어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동북아 정세가 아닌가 싶다. 즉 과거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역사와 일본을 잊지 말 것이며 강대국의 각축장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894년 동학군의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발을 붙인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중국 중심이었던 동북아 질서를 재편한다. 일제 패망70년이 되는 지금도 일본의 도발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의 패권 싸움은 한 치도 양보 없이 오늘도 팽팽하게 흐른다.

오늘날 이런 긴박한 동북아 정세는 과거의 역사처럼 민족의 명운이 걸린 일인데도, 이 나라 현실은 상대가 오직 북한밖에 없는 듯 태평하다. 이는 둘 중 하나다. 과거 역사는 물론 이어지는 오늘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이거나 이에 맞설 전략과 외교력이 없어 모른 척하는 고의이거나.

어쨌건 작가에게 권당 만 원을 받고 책을 읽은 준수가, 역사를 안 다음 '쬐금' 용기를 얻은 것처럼, 용기는 자신이 알고 느끼며 절실해야 나오는 덕목인지도 모르겠다. 비단 사회와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사 역시도 겪고 느끼고 아는 만큼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며 부닥칠 용기를 얻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역사를 바로 알고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은 채 오늘을 바꿔내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갈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세트] 불타는 반도 1~5 세트 - 전5권

윤규창 지음,
밥북, 2015


#신간소설 #항일 대하소설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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