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는데 웃음이... 이토록 '황홀한 출산'이라니

엄마도 아기도 행복한 자연주의 출산이야기

등록 2015.06.04 15:30수정 2015.06.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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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에 간다고? 지금이 조선 시대니?


첫째를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다. 내가 아직 진통을 안 겪어봐서 모른다며 무통 주사가 주는 천국을 포기 말라는 '훈계형'은 얌전한 편이었다. 그러다가 아기나 산모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형'도 많았다.

하지만 출산에 대해 공부할수록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소망은 더욱 간절해졌다. 수많은 산부인과를 뒤로하고 조산원에서의 출산을 결심한 까닭은, 그곳이 산모와 태어날 아기를 가장 배려하고 존중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임산부 굴욕'이라 불리는 무조건적인 회음부 절개나 관장이 없다. 본격적인 진통을 하는 중간에도 산모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걷고 싶으면 걷고, 눕고 싶으면 눕고, 자신의 진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무통 주사 없이 진통을 오롯이 견뎌야 했지만, '힘들지, 엄마 잘하고 있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아기 머리가 나온다.' 끊임없이 격려해주며 아기를 받아주는 조산사가 무통 주사보다 더 강한 진통제 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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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의 분만실 풍경 - 단촐하고 따뜻하다. ⓒ 송은미


자연주의 출산은 '폭력 없는 출산'이라 불리는 르봐이예 분만에 따라 출산이 진행된다. 편안한 엄마 자궁을 벗어나 탄생하는 아기에게 출산 그 자체가 크나큰 고통이다. 따라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만큼은 최대한 어둡고 조용한 상태로 유지하고, 태어나자마자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르봐이예 분만의 핵심이다.


조산원에서 첫째를 낳았던 과정은 한편의 동화 같았다. 자궁문이 다 열렸을 때 조산사와 했던 하이파이브, 힘들다고 했더니 두 다리를 올려놓으라며 어깨를 내주던 따뜻한 조산사, 아기가 탯줄 호흡에서 폐호흡에 익숙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 후에 신랑이 자른 탯줄,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물던 아기, 100분의 풍욕과 갓 태어난 아기에게 조산사가 건넨 덕담까지…….

그 어떤 의료적 개입 없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아기를 낳았던 과정은 평화로웠다. 출산 후 진통의 기억은 사라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행복한 탄생의 기억만 남았다.

또다시 임신, 잊고 있던 그 고통이 떠올랐다

임신한 여자들은 출산이 임박하면 종종 아기 낳는 꿈을 꾼다. 그런데 그 꿈은 대개 악몽이기 마련이다. 나 또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아기 낳는 악몽을 꾸었다. 동시에 첫째를 낳고 잊어버렸던 진통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연주의 출산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지만, 솔직히 진통 자체는 힘들었다. 첫 출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두려워졌다. 첫 번째 출산 때는 모르니까 용감했지만, 두 번째 출산을 앞두고 있자니 출산의 과정이 생생하게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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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기다리는 첫째의 모습 ⓒ 송은미


이미 출산 경험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BS 스페셜에서 방영된 내용을 엮은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 1%의 선택 행복한 출산의 권리>라는 책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조산원과 병원 또는 가정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한 산모들의 생생한 체험기를 읽으며 나도 다시 한 번 황홀한 출산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출산을 예습했다. 내가 원하는 출산 장면을 상상하며, 분만할 때와 출산한 다음에 바라는 것들에 대해 공책에 쭉 써내려갔다.

- 회음부 절개는 원하지 않아요.
- 내진은 최소로 해주시고, 하기 전에 꼭 물어봐 주세요.
- 유도분만은 원하지 않아요.
- 출산 직후 바로 캥거루 케어(산모가 신생아를 품고 맨살을 오랫동안 서로 접촉하고 있는 것)를 하고 싶어요.
- 모유 수유만 할 예정이니, 젖병이나 분유 사용을 하지 말아주세요...

또한,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출산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두려운 마음을 없애려고 했다. 신랑과 함께 자연주의 출산 동영상을 찾아보며 진통이 찾아오면 취할 자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출산이 임박했을 때 첫째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밤에 신호가 오면 첫째를 어떻게 맡기고 갈 것인지,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이 걸리면 어떻게 할지 등 세세한 것 하나하나 짚어보고 글로 써두었다. 마치 스포츠 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 하듯이 출산 과정을 반복적으로 상상하니,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든든했다.

세 살배기 첫째와 함께 한 출산

4월 3일 새벽 1시경,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나서 화장실에 가보니 말로만 듣던 '이슬'이 보였다. 그리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 주기 측정 앱에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진통을 입력하면서, 출산과정을 벼락치기로 복습했다.

진통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분만 1기, 자궁이 10cm 열리고 아기가 나오는 분만 2기, 태반이 나오는 분만 3기까지 머릿속으로 그리며 잘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 다독였다.

경산부이기 때문에 출산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진행이 느렸다. 조산원 원장님께서 두 가지를 제안하셨다. 분만이 임박하면 어린이집에 있는 첫째를 데려와 분만을 함께 보게 하자는 것과 간호대학 실습생들이 출산과정을 볼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선뜻 '예'라고 답하기 힘들었다. 첫째의 경우 점심과 낮잠시간이 걸려 출산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고, 낯선 이들에게 출산 장면을 공개하는 것 또한 여자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진통은 매우 규칙적이었는데 자궁문이 아주 조금 열린지라, 다시 집에 다녀왔다. 5분 간격으로 진통 오는 와중에, 첫째가 먹을 반찬을 만들고 취미 삼아 하던 퍼즐도 몇 조각 더 맞추고 왔다. 출산 후 모유 수유하면 먹을 수 없는 아주 매콤한 김밥도 사 먹었다. 조산원 맞은 편 도서관에 들러 첫째에게 읽어줄 그림책도 잔뜩 빌렸다.

병원이었다면 꼼짝없이 링거 꽂고 침대에 누워 진작에 무통주사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아기를 믿었기에, 출산 임박 전까지 남은 시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오후 간식을 다 먹었을 시간까지도 자궁문이 완전히 다 열리지 않았다. 왠지 태어날 아기가 첫째가 와서 자신의 탄생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황급히 신랑더러 어린이집에 가 있던 첫째를 데리고 오게 했다.

그 사이 조산원 원장님과 간호대학 실습생들이 신랑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두 실습생은 출산 현장에서 산모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둘라' 역할을 충실히 하며, 인간 진통제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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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심장소리를 듣는 아빠의 모습 ⓒ 송은미


첫째가 조산원에 도착하고 양수가 터지면서 출산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첫째는 더운 온돌방과 낯선 사람들 때문에 아빠에게 매달리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첫째가 겁먹을까 봐 고통을 꾹 참고 오롯이 자궁 쪽으로 힘을 보내며 출산에 집중했다. 조산사는 기계장치 하나 없이 배에 손을 얹는 촉진만으로 진통 주기와 강도를 정확히 짚어내며 호흡을 이끌어 주었다.

두 간호대학 여학생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격려해주며 둘라 역할을 충실히 했고, 또 다른 남학생은 사진사를 자처하며 출산 과정을 카메라에 잔뜩 담아주었다. 신랑 또한 첫째를 끌어안고 출산 과정을 친절하게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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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 분만실에서 - 김순선 원장님과 둘라 역할을 충실히 해준 간호대학 여학생들 ⓒ 송은미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나의 고통도 절정에 다다랐다. 그런데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정말 아팠지만, 이제 1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날 고통이라는 생각에 그 고통이 낱낱이 공중 분해되는 느낌이었다. 이 진통은 오늘 하루면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두렵지 않았고, 두려움이 없어졌기에 고통이 고통 같지 않았다.

태어날 아기와 함께할 나날들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났다.

첫째 때보다 더 수월하고 황홀했던 출산이었다. 출산 과정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나 스스로 해냈다는 만족감에 산후 우울감도 첫째 때보다 훨씬 덜했다. 다만 둘째가 태어나서 첫째가 받을 스트레스가 큰 걱정이었다. 하지만 조산원 원장님의 권유대로 분만 과정을 함께 지켜봐서인지 첫째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둘째를 아껴주었다.

병원에서 출산했더라면 엄마를 걱정하느라 울먹이고 왔다 갔다 했던 첫째는 진작 분만실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산원에서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출산이 이루어지기에, 나이 어린 첫째 또한 환영받을 수 있었다. 7000명의 아기를 받아낸 김순선 조산사는 베테랑답게 첫째를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농담으로 첫째를 잘 달래주면서 동생이 곧 나올 거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세 살밖에 안 된 첫째는 동생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손동작으로 정확히 표현한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부터 첫째의 출산과 성장 과정을 담은 포토북을 열심히 보여주었기에, 동생이 자기와 같은 조산원에서 태어났음을 잘 아는 듯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동생에게 달려가 뽀뽀를 퍼붓고, 껴안는다. 수유가 끝나 아기를 내려놓으려 하면 젖을 더 주라고 하기도 하고, 조금만 동생이 울어도 아기를 안으라며 엄마 아빠를 보채기도 한다. 동생에 대한 첫째의 사랑은 둘째가 태어나고 5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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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첫째의 모습 ⓒ 송은미


당신에게도 행복한 출산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조산원에서 첫째를 낳은 이후로, 주변에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종종 물어온다. 이야기를 들으면 관심을 보이지만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결국 병원 출산을 선택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용기를 얻어 조산원에서 출산했고, 무척 만족스러웠으며 자신 또한 자연주의 출산 전도사가 되었노라고 답해왔다.

누구나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어도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병원에서 출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출산하든, 그 주체는 산모와 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부분의 병원 출산에서 산모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의사의 일정에 맞추어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야 하고,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가면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신세다.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라는 임산부 3종 굴욕 세트는 꼭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이고, 굴욕적인 내진 또한 출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참을만한 고통이니 무조건 견뎌내야만 한다.

그렇게 참고 참아 아기를 낳았건만, 사랑하는 아기는 나중에 해도 될 조치들을 받느라 한참을 돌고 돌아 어렵게 엄마 품에 안긴다.

사실 출산의 장소가 가정이냐, 조산원이냐, 병원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서 분만이 이루어지든, 그 과정에서 아기와 산모는 충분히 배려받아야 한다. 태어날 아기가 인생에서의 첫 순간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엄마 스스로 아기가 존중받는 인권 분만을 당당히 요구했으면 한다. 체중을 재고 발 도장을 찍는 것보다, 타버릴 듯한 빛과 찢어질 듯한 소음으로부터 먼저 아기를 보호해 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실력 없는 의사보다 불친절한 의사가 의료 소송 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산모와 태아에게 실력 있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의료진 또한 필요하다. 탄생의 현장에서는 산모와 태아가 출산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산모와 아기를 충분히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자연주의 출산 문화가 여러 곳에서 싹트기를 기대해 본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자연주의 출산 #조산원 #르봐이예 분만 #폭력없는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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