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구암동산에서 바라본 금강 하구(군산 시가지와, 공사 중인 군장대교 위로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조종안
군산시와 서천군은 금강을 경계로 행정구역만 다를 뿐 지역 풍토와 언어가 유사하다. 군산 사람이 서울이나 경상도에 가면 고향이 충청도냐고 묻는 사람을 종종 만날 정도다. 두 지역은 내용이 비슷한 전설도 내려오고, 이름이 같은 사찰도 있었다. 군산 지역에 월명산, 천방산, 공주산이 있는데 서천군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존재한다.
두 지역이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서기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사비성(부여)의 도독부 중심으로 지배하던 때이다. 역사서는 당시 귀화현(군산)이 서천과 함께 당나라 도독부 직할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통일신라 때도 지금의 광역시 개념의 소부리주(所夫里州)에 속했으나 신문왕 5년(685) 전주에 완산주가 설치되고 군산이 완산주에 분속된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전국 8도 체제가 갖춰지면서 군산은 전라도, 서천군은 충청도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럼에도 군산과 서천군 주민들은 수백 년을 이웃사촌처럼 지내왔다. 해방 후 동장협의회 추천을 받아 초대 군산 부윤(시장)을 지낸 김용철도 서천 출신이었다. 그는 군산에서 제약소와 양조장을 운영하였고, 동산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1959년 6월 제10대 군산시장에 취임, 어려운 시기에 '군산호 선장'을 두 번 역임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천, 장항, 한산 등지에서 도선을 이용하여 군산으로 통학하거나 하숙하는 학생이 수백에 이르고, 군산의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서천군 주민이 많았다. 군산 지역 학생들이 장항제련소로 견학을 가고, 서천군 주민들은 민족 명절이나 집안 대사를 앞두고 군산의 전통시장으로 장을 보러올 정도로 두 지역은 왕래가 활발하였다.
1971년 대선 이후 갈등관계로 바뀐 군산시와 서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