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인권중심사람 다목적홀에서 열린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연구결과 보고대회’
인권재단 사람
인권재단사람 활동을 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모이기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모이기도 합니다. 집회나 캠페인을 기획하기 위해서도 모이고, 인권 영화를 상영하거나 소속 단체 회원들과의 소소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도 모입니다.
다양한 인권 이슈가 있는 만큼 만나는 인권 활동가들도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인권 활동가들이 우리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픔조차 쉽게 표현할 수 없고,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사람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저항하고, 인권을 선언할 수 있게 추동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권 활동가들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너도 나도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절을 맞이했지만, 인권 활동가들의 존재는 많은 이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 인권재단사람에서 '인권 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 실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인권 활동가들의 활동비와 생활입니다. 더불어 인권운동의 의미와 인권 활동가들의 역할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도 인권 활동가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기간 진행된 설문과 연구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권 활동가들이 겪는 생활의 어려움과 고민에 한 발 더 다가가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된 '인권 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 실태 연구'는 총 76명의 인권 활동가가 참여해 준 온라인 설문 결과와 열 개 단체, 10명의 인권활동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눈 심층인터뷰를 통해 완성됐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감추고 싶은 개인의 생활을 잘 이야기해 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인권 운동의 지속성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비켜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이 한 몸 바쳐야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었지만, 지금은 활동비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한 달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인권 활동가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연구결과를 간단히 정리하면 인권 활동가들은 평균 기본급 98만 원 (상임활동가 107만 원)이라는 최저 임금 미만의 활동비를 받으며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수당과 상여금을 합쳐도 최저 임금이 되지 않았습니다. 연구 대상 단체 가운데 13개 단체는 활동비를 전혀 지급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들까지 포함하면 평균 활동비는 더 낮았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약자일수록 후원금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에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방법을 찾으면서도, 인권 활동에 대한 의지는 매우 높아 단체의 재정자립을 위한 고민이 매우 많았습니다. 2015년 최저 임금 기준이 약 117만 원입니다. 단체 후원여건은 좋지 않았지만, 활동비 117만 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권 활동가들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인권활동가들은 연애조차 쉽지 않다고 푸념하면서도 막상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 가능하긴 할까 하는 걱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인권 활동가들은 하루 10시간 넘는 장시간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연월차 휴가를 쉽게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휴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휴가 상여비를 지급받는 인권 활동가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습니다. 일부는 생활비와 휴가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한 단체에서 평균 2~3명 정도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라 인권 현안을 쫓아다니기도 바빠 후원 회원을 늘려가기 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업무 분담도 쉽지 않아 심지어 아파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한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기 위해 감내하는 것들심층인터뷰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라기보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떤 기분이었습니다. 총 10명 중에 8명의 인권 활동가를 만났는데 참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카드빚 때문에 독촉 전화를 피했던 에피소드며, 평일에는 인권 단체에서 주말에는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던 그 시간이 매우 소중했습니다.
상담하러 온 기초 생활 수급자와 함께 짬뽕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던 순간을 잊지 못해 인권활동을 시작했다는 이도 있었고, 월 60만 원 활동비는 창피해서 공지 사항에 채용에 대한 글도 못 올린다고 푸념하는 인권 활동가들도 있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인권 운동에 대한 원칙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인권 운동을 지속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인권 활동가로서 사는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인권 침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인권의 언어로 소화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얼마 되지 않는 활동비를 쪼개고 쪼개서 사는 삶은 인권 활동가의 고단함을 더 가중하는 것 같습니다. 적게 쓰는 삶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힘든데, 자기보다는 타인이 겪는 어려움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게 이들입니다.
연구에 응답해 준 대부분의 인권활동가는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인권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매우 컸습니다. 지금 당장 인권 단체의 재정 구조가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평균 2~3명의 인권 활동가가 있는 구조에선 후원 조직도 쉽지 않습니다. 거리에서 부스를 펴놓고 후원을 조직하는 큰 규모의 NGO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인권 활동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활동 경력이 더 많아질수록 인권 운동의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권 활동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극히 드물고 사회 구성원 각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듯 보이지만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회적으로 매우 유의미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이야기하고 평화로운 삶, 존중받는 삶,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편에 서서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이들입니다.
인권재단사람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 활동가들의 삶과 이들이 사회 변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리려 합니다. 그래서 인권 활동가를 위한 사회적 기금 '365기금'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먹고, 쉬고, 이동할 때 드는 비용이라도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권 단체들마다 여건이 다르겠지만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 가능한 활동비를 지급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이제는 더 많은 분이 인권 활동가들의 편에서 이들의 생활을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온전히 인권 활동가들에게 쓰일 365기금에도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인권 활동가들이 다른 걱정들을 덜 하면서 주저 없이 여러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게, 그리고 그들도 지치고 다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충전해가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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