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술맛이 매번 달라 단점이라고요?

균일한 발효주 맛 기대, 자연의 섭리 거스르는 일

등록 2015.06.01 15:26수정 2015.06.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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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지겹지 않나요?"라며 어느 분이 물어온 적이 있다. 그분 눈에는 쌀을 씻고, 밥을 짓고, 누룩으로 버무리는 일들이 매양 같아 보였나 보다. 그러나 한 달에 서너 가마 분량의 쌀을 씻고 있지만 매번 손에 닿는 느낌이나 말갛게 씻어놨을 때 뽀얗고 통통한 쌀의 모습은 다르다.

뜨거운 김을 쏘여 쌀을 찌는 것은 똑같은데, 같은 시루에서 익힌 밥알들은 한 번도 똑같이 생긴 적이 없다. 더구나 똑같은 사람의 손을 타는데도 발효양상이 항상 다르다. 당연히 기물들은 술을 담을 때마다 살균하고 소독한다. 오염에 의해서 양상이 달라질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우리 전통술을 아끼는 분들 중에서 "전통주는 술맛이 매번 다른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다. 발효주에 대해서 차이없이 늘 균일한 맛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의 섭리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 어머니가 같은데 자식들 얼굴이 왜 똑같지 않느냐는 질문과 같다.

내가 조물주가 아닌 이상, 공상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생명체가 공장에서 복제를 통해 나오지 않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존재하는 숫자만큼 그 모습이 다르다. 다만 생물계통이나 자라온 환경에 따라 유사한 패턴과 생김새를 갖기는 한다. 얼굴만 봐도 어느 집 손(孫)이구나 대강 가계(家系)를 짐작할 수 있고, 한 집안에서도 "외탁을 했다", "조부를 쏙 빼닮았다" 등등 할 때 보면 이목구비는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같은 분위기나 특성을 보인다.

우리 술도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살아있는 생명들이 하는 일이니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서로 다를까 싶다. 이런 점은 "단점이다", "장점이다"로 단호하게 잘라서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특성을 잘 파악하여 시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음식과의 궁합에 따라 맞춤한 술을 내놓을 수 있는 데 힘을 쏟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대개 같은 술도가에서 나오는 술맛은 예측이 가능하다. 걱정하는 만큼 그 맛이 널뛰듯 하지 않는다. 빚은 사람의 품성을 쏙 빼닮았고, 그곳의 풍광을 떠올리면 대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술들이다.

가끔 우리 전통 술도가를 운영하는 대표들이 "하-, 이 대표! 이번 술은 산미가 좀 강하게 나왔어... " 또는 "이 술은 단맛이 아주 좋아, 지난번 거랑 많이 다르지?"라며 맛보라고 권할 때가 있지만, 나에게는 영락없이 그분의 술이다. 마치 부모가 "갸름하게 생긴 녀석이 우리 큰 애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놈이 작은 애여"라고 소개한다 해도 부전자전 비슷비슷하게 생긴 형제들처럼.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모두 전통주 전문가가 될 수도 없고, 내가 전통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 나만 따라 오라는 식으로 강변할 수도 없다. 우리 전통술을 반석에 올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술맛의 진폭(variation)은 과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우리 전통 술도 빚고 거른 시기에 따라, 쌀, 누룩 등 재료나 가공방법에 따라, 더 나아가 한 지역에서도 생산자 간에 블렌딩(blending)을 통한다면 장점을 살리면서도 품질의 균등화를 어느 정도까지는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섞어서 딱 반으로 나눌 수 없지만 술은 그게 가능하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기호식품 중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믹스 시장과 고급 원두커피 시장으로 나뉘어져 모두 다 잘 발전하고 있다. 우리 술 시장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 균일한 맛을 내는 기존의 대중화된 술 시장과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프리미엄 명주 시장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전체 술 시장을 놓고 볼 때, 현재는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작은 규모의 우리 프리미엄급 전통 술 시장은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개선과 정부지원을 기대하기 이전에 술 빚는 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공유하는 일,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부터가 시작이다.
#향음 #전통주 #발효주 #누룩 #우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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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술과 천연식초 등 발효식품을 교육연구, 제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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