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에 있는 도미니크 수녀회 표지판
송주민
어둠 속에서 표지판이 보인다. 'Soeurs Dominicaines'(도미니크 수녀회)라고 적혀 있다. 출입구가 보였는데, 대문이 잠겨 있거나 하진 않다. 어두운 벽돌 건물은 세월이 묻은 윤곽만 느껴진다. 컴컴하기도 하지만, 피곤함에 파묻혀 차분히 수도원의 첫 공기를 음미할 새도 없다. 그녀는 다시 옛 기억을 더듬으며 현관을 찾는다.
"아, 여기야."벨을 누른다. 피로는 호기심보다 강하다. 처음으로 와보는 수도원, 게다가 여성 수도자들만 살고 있는 금단의 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있는데도, 그녀의 어린 시절 영혼이 묻은 흔적에 만감이 교차할 것을 예상했던 순간임에도, 가슴이 쿵쾅거리기는 커녕 눈꺼풀이 바닥까지 내려온다.
한국말이 들리는 이방 땅의 수녀원?이윽고 문이 열린다. 머리에 어두운 베일을 길게 내려 쓰고 하얀 수도복을 입은 여인, 검은 피부의 젊은 수녀님 한 분이 나온다. 컴컴한 시간에 온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을 어색한 눈으로 보더니, 불어 특유의 강한 발음으로 입을 연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놀라서 동그래진 그녀의 눈을 보며 추측건대 "누구세요?"라고 묻고 있다.
"우리는 로사 수녀님을 찾아왔어요."
"한국에서 오셨나요?"
"네."대충 이런 말이 오가고 있다. 로사(가톨릭 교회 세례명) 수녀님은 그녀가 여기 와있을 때, 아니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이 수도원에서 사신 분이란다. 문을 반쯤 열고 우리에게 말을 걸던 수녀님은 이제야 긴장을 풀고 우리를 맞는다. 이어서 뜻밖의 음성이 들려온다.
"잠...깐만 기다...리세요."우리말이다. 서툴고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한국말이다. 영어도 잘 안 통하는 프랑스에서, 그것도 이 외진 곳에서, 이 오밤 중에, 불어 억양이 세고 피부가 검은 수녀님의 입을 통해 들리는 우리말이라. 갸우뚱 하는 나를 보며, 이번에는 그녀가 넌지시 입을 연다.
"아마도 저 수녀님 빼고 여기 계신 분들 모두 한국에서 온 분들일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수더분하고 동그란 인상의 여인이 걸어온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그러나 "봉수와" 저녁 인사를 하는 여기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인이기도 프랑스인이기도 한 수녀님이 우리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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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프랑스 수녀원에서 들려온 한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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