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의 아픈 기억, 해원의 소리로 풀어내"

[인터뷰] 삼풍백화점 실화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 극작가 오세혁

등록 2015.06.09 20:59수정 2022.02.0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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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속보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지은 지 6년 남짓 된, 강남의 부의 상징인 5층짜리 백화점이 단 20초 만에 무너졌다. 서울시 추정으로 사망자는 502명이고, 부상자는 938명이다. 일년 전 세월호를 겪은 우리는 20년 전 이 엄청난 재앙을 이미 경험했다. 그 이후로 강산이 두 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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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증언하는 최영섭(57)씨 20년 전 삼풍백화점이 붕괴 될 당시 목수로 일했던 최씨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장비가 부족해서 구조를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전국의 민간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은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 서울문화재단


20년 전 목수였던 최영섭(57)씨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올랐다. 시동을 켜자마자 라디오에서 긴급속보가 전달됐다. "긴급속보입니다. 조금전 오후 5시 55분경,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무슨 소리인가하면서 퇴근한 최씨는 집에 오자마자 TV를 틀었다. 사고를 생중계하는 아나운서 멘트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국민 여러분, 통탄할 노릇입니다. 일곱 시간이 지나도록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없고, 장비도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톱이 없어서 구조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최씨는 즉시 톱 열자루를 챙겨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수업을 받다 온 한씨, 회사에서 달려온 엄씨, 공사장에서 온 육씨, 국밥과 김밥을 싸가지고 달려온 주씨까지 전국 각지에서 민간구조대를 비롯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건물의 반쪽이 /칼로 수박 자른 듯 댕강 / 흔적 하나 없이 / 땅 속으로 꺼지고 / 건물을 받치던 기둥만 / 땅 위에 댕그러니
사방에 흙먼지와 유리파편 / 곳곳에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진 흔적 / 자동차며 냉장고며 에어콘이며 / 무겁기로 소문난 것들은 죄다 / 쳐박히고 두동강나고 거꾸로 뒤집혀있네
잠시 후 그이들 귀에 / 온갖 소리들이 들여오기 시작하는데
부상자들 지르는 비명소리 / 가족들이 애타게 찾는 소리 / 구조대원들의 한숨 소리 / 소방차와 앰브란스 싸이렌 소리 / 기자들 플래쉬 터뜨리는 소리 / 하늘에 떠 있는 헬기소리
울음소리 탄식소리 통곡소리들이 뒤섞여서 /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소리가 / 천지사방에서 들여오니 / 모두들 정신이 아찔하고 /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었다..."
(창작 판소리 '유월소리' 중)

삼풍백화점의 아픈 기억, 해원의 소리로 풀어내...


6월 29일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지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당시 삼풍백화점 실화를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소리 안숙선, 작 오세혁)가 오는 7월 3일 오후 7시 서울 시민청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민간구조대로 활동한 최영섭씨의 실제 증언으로 제작됐으며, 명창 안숙선(66, 국립국악원 예술감독)과 극작가 오세혁(34,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대표)이 공동 제작했다.

판소리 대본을 쓴 오 작가는 노동극을 주로 다루는 극단의 대표이자 문학 창작레지던시인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이기도 하다. 20년 전 삼풍백화점의 아픈 기억을 해원의 소리로 풀어낸 이번 판소리의 대본을 직접 쓴 오세혁 작가를 지난 6월 초순 대학로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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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판소리 '유월소리' 대본을 쓴 오세혁 극작가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를 맞아 당시 민간구조대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창작 판소리 '유월소리'가 다음달 3일 오후 7시에 시민청에서 선보인다. 명창 안숙선과 공동 제작하는 그는 실제로 몇 시간 분량의 녹음 기록을 실제로 읽으며 대본을 작성했다. ⓒ 이규승


- 이번 판소리 공연 대본은 어떻게 쓰게 됐나?
"오래된 것들에 대한 기억을 하는 공연을 예전부터 만들고 싶었다. 옛것들이 잊혀져 소멸되는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러던 중 서울의 오래된 기억을 채록하는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에 주목했다. 20년 전에 붕괴된 삼풍백화점에 관한 기억을 모으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다."

- 극단 '걸판'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연극을 해온 단체다. 그런데 왜 이번에 제작한 대본은 판소리인가?
"이번 공연은 연극보다는 판소리와 어울리는 면이 훨씬 많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면을 묘사하는 하나하나가 '소리'가 중심이다. 이것이 연극보다는 판소리가 현실감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판소리를 배운 적이 있었나?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풍물패를 했었다. 민요도 자주 불렀고, 어렸을 적에 티비를 보면 가끔 나오시는 안숙선 선생님의 공연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창작소리꾼이 되고 싶었다. 단원이었던 시절에는 소리를 직접 배우기도 했으며, 판소리에 대한 동경은 어렸을 적부터 있었다."

- 이번 공연을 위해 안숙선 선생님은 무슨 얘기를 했나?
"제가 쓴 대본으로 안 선생님께서 작창을 하시니까 몇 번 만났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첫째는 '한 사건 전체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고 하셨다. 작은 것을 다루어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하는 말이라며 '극의 장면에서 곤장을 때리는 것보다 때려서 날라가는 조각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장면을 직접 묘사하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묘사하면 관객들이 더 마음으로 다가설 것이란 의미이다."

- 이번 판소리 공연에 그런 식으로 접근했나?
"그렇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해 깜깜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소리'에 주목했다. 살려달라는 SOS 소리,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의 목소리, 구조를 하는 공사소리, 지상에서 나는 헬기소리 등 판소리에 맞는 각종 소리에 주목했다."

- 실제 대본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는가?
"사망자 중 남편이 발견된 어느 아주머니의 사연이 유독 슬펐다. 유품으로 남편 지갑이 발견됐는데, 딸이 첫 월급으로 수표를 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는 딸의 수표를 쓰지 않고 지갑 안쪽에 넣고 다녔던 것이었다. 이밖에도 여러 얘기가 있었는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다." (실제로 오 작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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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을 기억하는 창작판소리 '유월소리' 극작가 오세혁 창작 판소리 '유월소리' 대본을 작성한 오세혁 작가는 "이번 공연을 통해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해원의 소리로 치유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규승


- 삼풍백화점과 세월호가 상당히 닮았다. 특히 안산에서 대학을 나왔고,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감정이 특별할 텐데...
"그 당시 걸판 단원 한 명이 단원고 연극반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내 작품으로 청소년연극제를 나간다고 했다. 가끔 와서 봐달라고 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다. 어느날 아침, 연극반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갔다며 다녀와서 봐달라고 했었는데 그때도 건성으로 들었다. 그게 지금도 가슴 속에 한으로 남는다."

-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왜 안산인가?
"초반에는 대학교가 안산에 있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서울과 비슷하고 월세도 서울에 비해서 상당히 저렴하다. 안산에는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 이것이 노동극을 하는데 많은 영감을 얻었던 거 같다. 활동은 주로 안산에서 하고 서울을 비롯해 부산, 춘천 등 지방 공연을 순회하고 있다."

- 올해는 구로아트벨리에서 상주단체로 선정됐다고 들었다.
"구로와 안산이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두 도시가 공단이라 '걸판'이 지향하는 노동극에 대한 부분도 수월한 것 같다. 구로아트벨리에서는 '구로독백'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구로가는 아홉개의 길이라는 의미로, 이번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 이번 '유월소리' 공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삼풍백화점이든지 안산이든지 중요한 것은 기억을 통해 치유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원의 소리를 통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오세혁은...
1981년 안성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정보사회학과와 서울예대 공연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대표, 작가, 연출가이다. 또한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연극IN 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수상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아빠들의 소꿉놀이>
2011 부산일보 신춘문예<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률>
2011 밀양연극제 대상/연출상<그와 그녀의 옷장>
2012 남산예술센터 상주극작가 2기 선정
2013 서울연극제 올해의 젊은예술가상 단체수상<아름다운 동행>
2013 국립극단 청소년극 창작벨트 선정<질풍노도의 역사>
2013 창작팩토리 뮤지컬 부문 선정<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2014년 주요 작품
<아빠들의 소꿉놀이> <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 률> <그와 그녀의 옷장> <홀연했던 사나이><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우주인> < 김사장 의 전투 > <한밤의 천막극장> <레드 채플린>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지켜줄거야 친구야> <게릴라 씨어터> <늙은 소년들의 왕국> 외 다수.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 #삼풍백화점 #오세혁 #민간구조대 #유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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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지 '문화+서울' 편집장과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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