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걸어서 바다로 간다

[시골도서관 풀내음] 풀꽃하고 동무하며 놀자

등록 2015.06.06 17:24수정 2015.06.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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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는 걸으면서 논다.

우리는 걸으면서 논다. ⓒ 최종규


a  시골길을 걸으면서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는다.

시골길을 걸으면서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는다. ⓒ 최종규


아이들하고 들길을 걷습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셋이 함께 타고, 때로는 두 다리로 셋이나 넷이 함께 걷습니다. 우리는 들길이나 논둑길을 걷습니다. 들길이나 논둑길이 끊어지면 찻길을 걷고, 찻길을 걷더라도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호젓한 길을 걷습니다.


시골길을 걸어가면 시골에서 사람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는 모든 목숨붙이가 노래를 들려줍니다. 맨 먼저 바람이 노래합니다. 바람은 하늘을 가르면서 온갖 소리를 내다가는, 풀잎과 나뭇잎을 간질이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요. 이 다음으로 멧새와 들새가 노래합니다. 한 해 내내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는 새가 노래를 하고, 철 따라 한국을 드나드는 새가 노래를 합니다. 여기에, 개구리가 노래를 합니다. 풀벌레는 제법 깨어났지만 그윽한 노래를 들려주는 풀벌레는 아직 조용합니다. 논갈이를 마친 자리마다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고, 왜가리와 고니가 개구리를 찾아 무논에 내려앉습니다.

a  걸어서 면소재지에 닿으면 종이비행기를 놀이터에서 날린다.

걸어서 면소재지에 닿으면 종이비행기를 놀이터에서 날린다. ⓒ 최종규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달립니다. 두 아이는 한두 시간쯤 가볍게 걷고 달립니다. 여덟 살 큰아이도 다섯 살 작은아이도 저만치 앞서서 걷거나 달립니다. 자동차가 드나들지 않는 길을 다니니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춤추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새와 개구리가 바람과 햇볕하고 춤추듯이 어우러지는 길을 달리다가 폴짝폴짝 달릴 수 있고, 얼마든지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두 다리로 걸어서 바다로 갑니다. 아직 많이 차갑지만, 기쁘게 바닷물에 뛰어듭니다. 물결이 찰랑일 적마다 힘껏 뛰어오르면서 놉니다. 아이들 스스로 가방에 챙긴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을 꺼내어 모래밭에 내려놓기도 하고, 바닷물에 함께 뛰어들기도 합니다. 장난감하고 인형은 아이들이 손수 짊어진 가방에 곱게 앉아서 마실길을 누립니다. 바닷바람을 함께 쐬고, 바닷노래를 같이 즐깁니다.

a  바다가 보인다. 씩씩하게 잘 왔구나.

바다가 보인다. 씩씩하게 잘 왔구나. ⓒ 최종규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며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사람이 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2015)라는 책을 몇 쪽 읽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며 꽃밭을 가꾼다는 마루야마 겐지 님은 "땅을 일구고 돌을 나르고 좋아하는 초목을 심어 기르는 등의 생활을 체험했다면 살아가는 의미 등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그토록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현세의 생명체에 대해 어떠한 의혹도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았을까(12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밑줄을 긋고 읽다가 책을 내려놓습니다. 아이들하고 바닷가 모래밭을 걷고, 달립니다.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손발을 씻고 도시락을 먹습니다.

바다까지 씩씩하게 걸어온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길도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그래도 아직 퍽 어린 아이들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이는 어머니한테 업히고, 한 아이는 아버지한테 업힙니다. 얼마쯤 업힌 뒤 내려서 다시 걷고 달립니다.


a  바다에 선다.

바다에 선다. ⓒ 최종규


a  바다에 걸어가서 인형하고도 놀다가.

바다에 걸어가서 인형하고도 놀다가. ⓒ 최종규


이튿날에 또 걷습니다. 어제 그렇게 걸었어도 아이들은 하룻밤 달게 자고 나면 기운이 새로 솟습니다. 그래, 너희만 기운이 새로 솟느냐? 어른도 기운이 새로 솟아야지. 큰아이는 집에서 접은 종이비행기를 챙깁니다. 오늘은 면소재지에 있는 놀이터로 가기로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안 다니지만, 주말에는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 놀이터에 갑니다. 오늘은 학교 운동장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놀 생각입니다.

집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이웃마을 할매와 할배한테 인사합니다. 논에서 일하시던 할매와 할배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고는 "어데서 이런 귀한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서 허리를 펴십니다. 우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노래처럼 듣고, 마을 할매와 할배는 아이들 목소리를 노래처럼 듣습니다.


a  너른 바다에 손도 발도 담그면서 놀자.

너른 바다에 손도 발도 담그면서 놀자. ⓒ 최종규


놀이터에서 함께 시소를 타고 놀다가 책 몇 쪽을 살짝 읽습니다. 노정임·안경자 두 분이 빚은 그림책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 고추>(철수와영희,2015)를 펼칩니다. "최근에 김장으로 담그는 김치 가운데 배추김치가 대표처럼 보이지만 배추김치를 먹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김치를 담근 역사는 1000년쯤 된다고 하지요. 반면, 배추를 주로 김장 김치로 먹은 것은 약 100년쯤 되었어요(33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예전에는 배추김치보다 무김치를 즐겨먹었다고 하는데, 김치를 먹기 앞서는 날푸성귀를 먹었을 테며, 겨우내 시래기국을 먹었을 테지요. 그런데 겨울에도 풀은 새로 돋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갓과 유채가 새로 돋고, 늦겨울과 이른봄에 돋는 풀도 한겨울에 추위가 누그러지면 어느새 고개를 내밉니다. 입맛을 살리는 김치도 맛있지만, 겨울에 찬바람을 뚫고 돋는 들풀도 맛있습니다.

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먹던 들풀을 가만히 그립니다. 이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누렸을 들밥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삼천 해나 사천 해 앞서 이 땅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던 사람은 어떤 밥살림으로 즐겁게 하루를 누렸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쑥이랑 마늘이 나오는데, 오천 해나 만 해쯤 앞서 살던 사람은 어떤 풀밥으로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꾸었을까 궁금합니다.

a  먼 길을 잘 왔구나. 휴가철이 아니라면 이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야.

먼 길을 잘 왔구나. 휴가철이 아니라면 이 바다는 온통 우리 차지야. ⓒ 최종규


옛날 옛적에는 버리는 풀이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옛날 옛적에는 모든 풀을 밥이나 약으로 삼았으리라 느낍니다. 우리 마을을 살피면, 논둑에 소리쟁이나 돌나물이 돋아도 농약을 들이부어서 죽이거나 기계로 베어서 죽입니다. 소리쟁이잎을 바르면 아토피에도 좋지만, 막상 소리쟁이잎을 건사하는 손길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풀 한 포기를 다루거나 나무 한 그루를 아끼던 슬기가 그만 지난 백 해 사이에 가뭇없이 짓밟히거나 잊혀졌는지 모릅니다. 시골 들길을 걷는 사람이 없어지고 들바람을 쐬면서 노는 아이도 어른도 사라진 자리에는 기계가 울리는 소리만 가득할 뿐, 들일꾼이 부르는 들노래는 없습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두면서 대중노래를 듣지만, 마을이 어우러져서 부르는 마을노래와 일노래와 놀이노래는 자취를 감춥니다. 아이들은 머리통이 굵으면 면소재지를 거치고 읍내를 지나 도시로 빠져나가기 바쁩니다.

시골길을 걸어서 바다를 다녀오고, 면소재지 놀이터를 다녀옵니다. 집에 닿은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먹이니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저뭅니다.

a  바다에 닿은 우리는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며 놀지.

바다에 닿은 우리는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며 놀지.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남 광주에서 펴내는 문화잡지 <전라도닷컴> 2015년 6월에도 함께 싣는 글입니다.
#시골도서관 풀내음 #시골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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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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