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협동조합이 대안이다

[서평] 박주희, 주수원이 지은 <만들자, 학교협동조합>

등록 2015.06.10 16:38수정 2015.06.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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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합원들의 화합, 넉넉한 초기 출자금, 업종과 관련된 정보와 관련 서류나 장부를 다루는 기술 등 여러 요인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이기에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조합원들의 마음이 맞고 서로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하는 것일 수 있다. 협동의 힘이 살아나야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긴 자가 모든 걸 차지하고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잔혹사회 한국에는 그런 요인을 강화시킬 수 있는 협동의 문화가 매우 부족하다. 필사적으로 경쟁하고 승패의 결과에 따라 인생의 선택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자란 세대가 협동을 잘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이 말은 지금의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년들보다는 그 부모세대인 지금의 30, 40, 50대야말로 자기 자식들에게 승자독식,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공존과 협동을 입에 담지만 정작 자신도 그런 경험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협동의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과제는 특정 세대의 과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공통과제이고 그렇기에 홀로가 아니라 함께 변화해야 한다. 문제는 다양한 세대들의 이해관계가 한데 엮일 수 있는 장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좌지우지하는 마을이나 지역사회는 청(소)년 세대가 자기 힘을 시험하고 역량을 기르기에 여전히 적합하지 않은 장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다양한 세대의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고 그나마 청(소)년 세대에게 익숙한 공간이다(모든 청(소)년이 학생은 아니라는 한계는 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학교가 자동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불가능'의 공간이라 불리기도 하는 한국의 학교는 기존의 장치나 배치로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기 어렵다.

학교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

그래서 학교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장치 또는 배치를 주목하게 되는데, 박주희, 주수원이 지은 <만들자, 학교협동조합>(맘에드림, 2015년 출간)은 그 가능성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학교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학교구성원(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공동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다."(46쪽)


학교협동조합이란 틀 속에서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지역공동체가 비슷한 지위에 설 수 있다(현실의 권력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에 같은 조합원이라고 해서 동등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더 중요하게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경험을 통해 주체들이 성장할 수 있다.

협동조합을 구성한다고해서 당장 성장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학교와 교육, 성장을 연관시키면 나올 말이 너무 뻔해진다. 그렇지만 협동조합은 그 뻔한 경계를 조금 흩트린다. 가령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할까? 옛날에는 학생도 집안일을 돕고 때로는 집에서 함께 일했고 경제나 지역사회를 학습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생활하고 경험하며 성장했다.


학교협동조합에서 학생 조합원이나 학생 이사는 직접 거래처를 만나고 물건을 다루고 만들며 경험과 삶을 넓힌다. 한국은 교육의 자발성이 상실된 사회, 배우고 싶은 학생이 없는 게 아니라 배움이 틀 속에서만 가능해진 사회, 심지어 자기 주제도 인문학 학습을 통해 파악하게 되는 사회인데, 학교협동조합은 자발성을 살리고 배움의 경계를 허물며 나와 우리를 파악하게 한다. 학교협동조합은 필요와 잠재력을 발굴하며 협동의 문화를 기를 수 있는 좋은 틀이다.

학교협동조합은 학교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공배수를 만드는 작업을 '지금' 시작하도록 돕는다.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준 가능성과 즐거움을 소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학생들은 때론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실제로 한 학교협동조합 학생이사는 "협동조합을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기쁨"(56쪽)을 느꼈다고 한다. 원래 가능성은 미약한 시작이다. "학교협동조합의 시작점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발적으로 공을 들여야 할 부분은 어디인지, 조합원의 자격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71쪽)으로, 그 시작에 따라 방법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학교협동조합이 겪을 어려움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아마도 가장 큰 어려움은 협동조합의 특징인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일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니 말이다. "교사들의 시선에서 학생을 '건의하는 주체'로 볼 수는 있으나, '수평적으로 의견을 교류하고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교사 사회도 마찬가지로 교장의 권위에 결정을 마기는 것이 익숙할 수 있다. 심지어 혁신학교의 경우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학교 내 혁신을 이루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 역시 수평적 의사결정과 관련한 경험과 훈련이 부족한 것이다."(61쪽) 위계질서의 공간인 한국의 학교문화는 분명히 학교협동조합의 장애물이다.

협동의 문화를 만들 사건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학교협동조합이 불가능하다거나 해봤자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학교협동조합은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만들 수 있다. 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과 갑작스런 갈등, 관계의 감동 등 여러 '사건'들은 새로움을 경험하게 한다.

협동조합이기에 학교협동조합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고 그렇기에 틀은 유연해야 한다. 사업형태도 꼭 학교매점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정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매점처럼 하나의 공동 아이템이 정해졌다 해도, 이것이 동일한 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다음에는 '어떤 매점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 학생들의 욕구가 단순히 값싸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 뿐일까? 학생들의 의견은 그 이상으로 다양할 것이다. 또한 하고 싶은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모든 필요를 자유롭게 생각해보고 얘기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51~52쪽)

자발성을 중심에 두고 다른 과정을 배치해야 세대를 넘어선 협동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고, 청(소)년들의 자기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

이 책은 무조건 지금 당장 저지르라며 부추기지 않는다. 당연히 사업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만들자'라고 외치지만 두들기며 건너야 할 징검다리들을 신중하게 살피도록 도와서 책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외국의 사례들을 그냥 늘어놓지 않고 우리 식대로 갈무리하려는 노력도 보여서 그 믿음은 더해진다.

학교협동조합과 관련된 교육을 직접 담당하고 대학 때부터 협동조합과 관련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저자들은 학교협동조합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역량의 범위" 내에 있는 문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설계'"(90쪽)라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의 자발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다양한 과정들이 필요하고 이 교육은 기존의 교육과 다른 배움의 연쇄작용이어야 한다.

"같은 협동조합 공부를 해도, 책으로 읽거나 강의로 듣는 대신 다른 협동조합과 매점을 조사하면서 배우는 것은 더 강렬한 배움이다. 또한 그 결과를 나누는 일에서도 또 다른 방식의 배움이 형성된다. 난관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교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 아이들이 리더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결국 학교협동조합은 다양한 과정 속에서 이런 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128쪽)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 아닐까?

이 책은 이런 배움의 과정들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특히 '제6장 학교협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교육 설계'에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교육안도 포함되어 있어 실제 현실에 적용할 여지도 많다. 협동조합 교육에 필요한 방송 프로그램부터 애니메이션, 책, 렛츠쿱 보드게임까지 그동안 나온 방법들을 대부분 담고 있어서, 이 책은 꼭 학교협동조합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만들자, 학교협동조합 - 고침판

박주희.주수원 지음,
맘에드림, 2017


#학교협동조합 #박주희 #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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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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