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과 붉게 익는 열매처럼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고운 사랑이 깃들기를 빕니다.
최종규
그래요, 가난하지 않은 살림이라고 해서 꼭 즐거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거나 커다란 집이 있기에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배불리 먹거나 햇볕 잘 드는 마당이 있는 집이 있으니 기쁜 삶이 되지 않습니다. 온갖 물질이 다 있어도 '우리 집'에 '오순도순 흐르는 이야기'가 '사랑스레 어우러지'지 않으면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기쁨도 없습니다.
언니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똑똑한 언니는 엄마 가슴을 아프게 만들 말은 하지 않았다."외할머니 댁으로 갈까 해."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하듯 방바닥에 펼쳐진 내 책을 정리하며 말을 내뱉었다."시골이요?"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았다."그래, 외할머니가 계시는 시골말이야. 거기서 농사를 짓는 거야. 배추도 심고, 감자도 심고. 그것들이 자라면 우리가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서 팔기도 하고 말이야." -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본문 179쪽 중에서아이들 어머니는 미장원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잃은 아이들 어머니는 한숨만 짓는다고 합니다. 어린 상효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푼푼이 돈을 모은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이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집을 옮기자고 말합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늘 외롭다고 생각하던 상효는, 같은 다세대주택에서 사는 이웃 운전기사 아저씨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랬기에, 어머니가 시골로 가자는 말에 화들짝 놀랍니다. 마음붙이 아저씨를 잃겠구나 싶어서 슬픕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상효네 이야기를 듣고는 상효더러 기운내어 씩씩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잘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해를 듬뿍 보면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마음이 있으면 서로 만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 상효는 아저씨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서로 만나서 사랑과 꿈을 속삭일 수 있다는 생각을 어린 상효가 고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마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지하집에서 햇볕 한 줌 없이 지내던 그늘에서 빠져나와서 흙을 밟고 만지면서 일하고 놀 수 있다면, 이러한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어머니가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어머니는 아이를 때리는 손길을 거두어 남새를 기를 테고, 남새를 기르듯이 포근한 손길로 어린 상효를 어루만지거나 쓰다듬는 삶으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어린 상효도 이제는 고개를 야무지게 들면서 두 발로 이 땅을 씩씩하게 디디는 어린이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반지하라는 말보다는 그냥 지하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방은 햇살이 잘 들지 않아 솔직히 언제쯤이 아침인지 언제쯤이 저녁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집에서만은 해는 잠꾸러기인 셈이다. 그래서 늘 형광등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 -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본문 23쪽 중에서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이 피해자입니다. 때린 사람을 감싸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릴 적에 늘 맞고 살던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메마르거나 차갑고야 만 사람들(가해자)도 마음을 따사로이 달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주먹힘이나 발길질로 괴롭히는 짓으로는 그들 스스로 곱거나 좋거나 너르거나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 사랑받으면서 살 이웃이요 동무이고 숨결입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폭력도 따돌림도 괴롭힘도 없이, 서로 어깨를 겯고 함께 웃고 노래할 사람입니다.
해님을 바라보면서 웃을 삶입니다. 바람님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노래할 삶입니다. 비님을 기쁘게 부르면서 사랑을 꿈꿀 삶입니다. 동화책에 나온 아이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아이들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히지 않기를 빕니다. 모든 아이들 어깨에 보드랍게 산들바람이 불어서 나비처럼 춤추고 새처럼 노래하는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이연경 지음, 이소하 그림,
바람의아이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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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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