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두 발 아닌 두 바퀴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우리 모두 힘 써야할 일

등록 2015.06.15 11:39수정 2015.06.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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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승권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시민건축포럼을 운영하면서다. 지체 1급 장애를 가진 그는 "장애인은 대중교통뿐 아니라 턱 때문에 대부분 건물을 이용할 수가 없다"며 건축가와 함께 '이동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시민건축포럼에 참여했다.


승권씨는 중도장애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졸음 운전한 사람에 의해 교통사고가 났다.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는데 승권씨는 대뇌에 있는 운동 신경이 건들어지는 바람에 마비가 오게 됐다. 뜻밖의 사고로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승권씨와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난 두 발로 움직이고, 그는 두 바퀴를 사용한다는 것. 겨우 한 가지가 다를 뿐인데 세상을 사는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포럼에서 얼굴을 익히니 도시를 오고 갈 때 가끔 그가 눈에 띄었다. 그가 자주 목격 되는 곳은 위험천만하게도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 위다. 차선이 따로 없으니 자동차와 한데 섞여 위험하게 이동한다.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들의 전동 휠체어 사용이 늘고 있으니 도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장애인 이동권, 거주권 높이기... 정부와 시민 모두 함께해야

저상버스 기다려요 유승권씨가 동료들과 함께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측맨끝이 유승권 전북장차연 대표)
저상버스 기다려요유승권씨가 동료들과 함께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측맨끝이 유승권 전북장차연 대표)강미현

버스라도 편하게 이용하면 좋은데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를 타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 저상버스는 경사판이 정류장 보도의 끝에 잘 밀착이 돼야 그 위로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의 불법 주정차 때문에 저상버스 정차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승차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문제는 차도에서 저상버스를 탈 경우 급격한 경사각 때문에 전동 휠체어가 뒤로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승권씨도 휠체어와 함께 뒤집어져 차로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경험이 있다.

불편한 것은 대중교통 뿐 만이 아니다. 길을 가다 목이 마려워 물을 사 마시고 싶어도, 대부분 가게들 입구에는 턱이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화장실은 더 큰 문제다. 턱도 문제지만 내부가 좁아 휠체어 사용이 불가능하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상실하게 한다. 볼일을 참다 옷에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부끄럽다.


이렇게 화장실 사용이 어려우니 물을 포함해 국물이 있는 음식을 되도록 먹지 않는 이도 있다. 최근에는 다행히 1층 건물의 턱을 없애고 화장실도 넓게 설치하는 추세다. 장애인 뿐 아니라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무엇보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승권씨의 일상이 올해 7월부터는 많이 달라질 듯하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신축하는 청사, 문화 시설 등의 공공건물 및 공중 이용 시설 가운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은 의무적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F인증)을 받아야 한다. 승권씨는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하고, 어떤 건축물에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며 7월을 기다리고 있다.

승권씨를 보면 이동권 만큼 시급해 보이는 것이 집(주거권)이다. 그는 LH에서 시행하는 다가구 매입 임대(도심내 최저 소득층이 현 생활권에서 현재의 수입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기존의 다가구 주택 등을 매입해 저렴하게 임대하는 형태)에 살고 있다.

승권씨가 집을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LH에서 보여준 곳은 2층 빌라였다. 승권씨 같은 지체 장애인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주거 공간에서는 생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LH에서는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주택을 또 보여줬다. 다행인지 LH 다가구 매입 임대 1층에 살던 동료가 이사를 가게 돼, 힘겹게 그곳에 입주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자신의 몸의 특성에 맞춰 개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사 나갈 때 원상 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들어갈 돈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승권씨의 LH 다가구 매입 임대 입주 과정을 살펴보면 안타깝다. 일단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된 집이 없다. 1층도 4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제는 LH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행 사업의 집 설계 가이드라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젊고, 건강한 사람뿐 아이라 어린이, 노인,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 즉 모두를 위한 다자인)에 맞춰 정비 됐으면 한다. 많은 국민의 행복한 삶의 터전을 이루는 데 큰 몫을 담당했던 LH의 비전처럼 '누구나 살고 싶고 행복한 주거 공간'을 만드는 일에 앞장 서주길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승권씨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도시는 많이 불편하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그가 두 바퀴 휠체어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활동을 해줬으면 한다. 그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도시를 조금 더 살기 좋게 바꿔나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건축하는 나 역시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강미현 시민기자는 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새전북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LH 매입 임대 #저상버스 #BF인증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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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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