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65화

"국민안전처 자체가 재앙... 이 와중에 박원순만 때려"

[e사람] 국가위기관리 전문가 이재은 충북대 교수가 본 메르스 사태

등록 2015.06.19 21:26수정 2015.06.21 02:46
94
원고료로 응원
a

이재은 충북대 교수. ⓒ 권우성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젠 (정부에서 뭐라고 해도)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의 국가위기관리 자문을 맡았던 이재은(50)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에 손을 들었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확산세가 잦아들기는커녕 사회와 경제 전반에 큰 피해를 주며 진짜 '국가위기'로 치닫고 있어서다.

"격리자가 1만 명을 넘었고 시간이 더 지나면 통제 불가능 상태가 올 수도 있다. 관리할 인력도 없고 관리 인력들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가위기관리 차원에서 청와대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대통령이) 나선다고 뭐하겠나. 이젠 컨트롤타워 얘기 꺼내기도 미안할 정도다."

"이 상황에서 박원순 때리기? 국민 신뢰 회복이 더 급해"

국내 위기관리 분야 개척자인 이 교수는 '국가최고책임자가 위기관리를 맡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지금껏 청와대의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조해왔다. 실제 지난 2004년 참여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 자문위원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 청와대 위기관리 자문을 맡아 자신의 소신을 실천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충북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지금 박근혜 정부는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 회복보다 잃어버린 신뢰 회복이 더 급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는 걸 밝혀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박원순 때리기'만 하고 있다. (청와대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한다는 걸) 다 알고 있는 국민들은 식상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장 시절부터 박원순 시장의 '재난위기관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있던 지난 2007년 4월 재난안전연구소(당시 재난관리연구소)를 직접 만들었는데, 당시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 위기관리 전문가 20여 명이 중심이 돼 지난 2009년 국가위기관리학회가 탄생했다. 박원순 시장이 메르스 확산 초기 중앙 정부보다 발 빠르게 대응한 데는 이 같은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위기관리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 교수는 "당시 위기관리 학자들 모임도 따로 없었는데 연구소를 만든 뒤 2년 동안 세미나만 28차례 진행했고 전국을 누비며 재난 취약 지점을 현장에서 조사했다"면서 "박원순 시장이 우리나라 위기관리 분야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당시 대형 태풍 '카트리나'와 같은 기상이변에 따른 각종 재난에 대비하려고 연구소를 만들었지만 2007년 12월 삼성 허베이스트리트호 유류 오염 사고와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사고 직후에도 바로 세미나를 열어 재난 극복 해법을 모색했다.

"재난 위기와 위험 문제에 대한 박 시장의 인식은 탁월했다. 세계 각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모은 재난 안전 관리 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휴대용 저장장치에 저장해 놓고 다녔는데, 위기관리 전문가를 자부하는 나도 기겁할 정도였다. 재난 안전뿐 아니라 복지, 교통, 도시 개발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료들이 메뉴별로 잘 정리돼 있어 하나의 도서관 같았다. 어설픈 전문가는 이 양반 앞에서 꼼짝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4대 사회악' 공약을 내놓고 '안전행정부'도 '안전'을 앞세워 '생활 안전'을 강조한 건 이전 정부보다 진일보했지만, 정작 현실에서 국가위기관리 인식은 후퇴했다고 보고 있다.

"참여정부 때 만든 청와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대통령령)에 위기는 ▲전통적 군사위기 ▲자연재난과 인적재난과 같은 재난 위기 ▲국가기반체계 마비 위기 등 3가지로 분류했다.  국가 핵심 기능에는 공공 보건도 포함돼 있는데 공공 보건 기능이 마비되면 국민이 질병과 전염병으로 위험해지고 수출, 수입이 중단되는 등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이처럼 국가핵심기반 기능 마비 위기관리 차원에서 다뤄야 했다. 메르스가 이미 중동에서 창궐해 큰 피해가 난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들어오게 해선 안 됐고 이미 들어왔더라도 사소한 바이러스로 보지 않고 적극 대처했어야 했다."

a

이재은 충북대 교수. ⓒ 권우성


메르스 초동 대처 실패는 자연스레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당시 잃어버린 '골든타임'을 떠올린다. 이 교수는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우린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한 걸 두고 '무책임의 극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관련기사:"사고 수습도, 조사도 안 끝났는데 국가안전처?").

이 교수는 이날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자연재해, 화재, 붕괴, 교통사고 다 포함돼 있는데도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박근혜 정부에서 그 지침이 사문화됐다는 것이고 국가안보실장이 지침 내용도 몰랐다면 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당시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해법으로 내놓은 '국민안전처' 역시 중앙-지방정부 간 위기관리 공조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메르스 사태로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국민안전처 만든 게 재앙... 중앙-지방정부 협력 막아"

"초동 대응을 잘 했으면 여기까지도 안 왔겠지만 이후 위기관리도 실패했다. 우선 방역 체계가 뚫리면서 감염병 확산 예방이나 완화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또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위기관리 기본 원칙인데, 삼성서울병원 등 병원 명단부터 제때 공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려고 위기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건 당연한데도 중앙 정부가 오히려 독자 행동하지 말라고 했다. 늑장 대응도 문제지만 중앙정부의 위기관리 인식 부족이 실패를 불렀다."

이 교수는 국민안전처를 국무총리실 밑으로 분리한 게 중앙-지방정부 불협화음에 한몫했다고 보고 있다. 안전행정부 업무가 지자체를 관리하는 행정자치부와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국민안전처로 쪼개지면서, 보건복지부 등 다른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 협조 체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기관리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밀접하게 연계해야 하는데 국민안전처를 만들어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지자체도 구제역, 조류독감 등을 다루며 독자적인 방역 경험이 있는데도 보건복지부는 지자체에 방역 권한을 주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바이러스나 감염병에는 전문성이 있어도 위기관리 전문성은 없다. 재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각 분야 전문성을 국민안전처에 결합시켜야 했는데 결국 손을 놨고 뒤늦게 메르스 예방 수칙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박살났다.

국민안전처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앙이었다. 지금도 중앙 조직은 충분하다. '스몰 컨트롤타워' 활성화를 위해 전국 240여 개 지자체의 위기관리 전문성과 인적 자원, 조직을 강화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청주에서 당장 재난 상황이 발생했는데 중앙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사람들은 다 죽고 난 뒤 아니겠는가."

"박원순-이재명 시장 아니었으면 병원 이름 공개했겠나"

a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급기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동선을 공개하는 등 먼저 움직였지만, 보수의료단체가 박 시장을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후폭풍도 거세다.

"박 시장이 정보 공개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더 빨리 했어야 했다. 만약 그때 박원순 시장이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병원 실명 공개를 안 했으면 중앙정부가 그때라도 했겠나. 안 했을 것이다. 서울시장이 서울시민 안전을 확보하려고 당연한 일을 한 것이고 너무 늦었다고 비판할 순 있어도 정치적 의도로 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십 부재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국민 생명 보호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일 뿐더러,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 대응력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 메르스 사태가 세월호 사고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재난 발생 유형이 다르다보니 주무 부처와 관리 방식은 달라도 위기관리 원칙과 기능은 같아야 했다. 공통점은 우선 초기 위기에 대한 정부 인식이 안이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보 공개인데 세월호 때는 틀렸고 메르스는 안 했다는 게 문제다. 셋째는 늑장 대응, 넷째는 지자체, 유관기관과 협력이 제대로 안 됐다는 점, 다섯째는 거버넌스가 민관이 함께 가야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중심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민간 병원이어서 국가재난관리 체계에서 예외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실수를 한 부분이 있지만 민간 기업은 영리추구 행위가 기본이고 당연히 정보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정부는 공익과 절대 다수 국민의 안전을 위해 병원명을 공개해도 되는데 공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무책임했다."

- 참여정부 당시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 대응과 비교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는 범정부 차원에서 위기관리 역량을 결집해 청와대부터 지자체까지 총력대응체제를 구축했다. 이번엔 일부 부처가 개별적으로 위기관리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전염병을 두고 이게 무슨 재난이냐, 매년 독감이나 폐렴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전쟁도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염병은 확산 가능성과 피해 영향 범위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막지 못하면 경제적 파급 효과가 엄청나게 커진다. 독감이나 감기는 기존 의약품이나 의료시스템으로 통제 가능하지만 메르스나 사스는 통제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행정학자이면서 위기관리를 전공한 이 교수는 지난 2005년부터 위기관리 싱크탱크인 '위기관리 이론과 실천'을 만들고 <한국위기관리논집>을 10년째 내고 있다. 처음에 사비를 털어 연 2회 발행으로 출발했지만 연 4회(계간), 연 6회(격월간)를 거쳐 지금은 매달 발행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논문 700여 편을 실었다. 이렇게 쌓인 역량은 지난 2009년 국가위기관리학회와 국제위기관리학회(ISCEM)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 교수는 지금 위기관리 분야에서, 기후 변화 협약인 '교토 의정서'와 어깨를 겨룰 만한 '세종 의정서'를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 위기관리 전문가들을 세종시로 불러 모아,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안전 의제를 제시하겠다는 포부다. 메르스 사태로 전세계 이목이 한국에 집중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 흐름도 앞으로 탄생할 '세종 의정서'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밖에 없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메르스 #국가위기관리 #박원순 #이재은
댓글9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