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 좋으시네요" 내가 당할 줄은 몰랐다

[휴학생, 한국 사회 적응기①] 전재산을 날린 날, 휴학을 결정한 날

등록 2015.06.21 17:38수정 2015.06.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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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복이 많이 들어 있는 상이에요~"
"네?"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이 내게 말했다. 순간, '사이비인가'하는 의심이 들어 그냥 가려는 내게 종교 얘기 하려는 거 아니니 한 번 들어보라고 하면서 나에 대해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나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두말 없이 들었다. 계속 듣던 중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럴 게 아니라 어디라도 잠깐 앉아 얘기를 하자고 한다. 가까이에 있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콜라를 주문했다. 물론 돈은 내가 냈다. 앉아서 차분히 얘기를 듣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집안의 화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이며 조상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돼있었고, 나는 심각하게 경청하며 얘기를 들었다.

이런 나, 여행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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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 여행할 수 있을까? ⓒ flickr


어느새 집안의 화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됐고, 일말의 비장감마저 생겼다. 나는 다급하게 어떻게 하면 우리집을 구할 수 있냐 물었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알겠다며 바로 일어나 통장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현금째 그 사람들 손에 쥐여주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날로 나는 그들의 영험하다는 청주 지하 상가 근처의 허름한 건물을 방문했고, 한복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휘한 사람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고, 의식이 끝날 때쯤 이상한 한지를 둘둘 만 것을 손 위에 올려 놓더니 태우기 시작햇다. 그러면서 이게 바로 '장을 지진다'는 것이라며 엄숙하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장을 지진다는 것을 실제로 해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번갯불에 콩 볶듯 순식간에 제사를 지내고 집안을 위해 애썼다는 후련한 마음으로 문 밖을 나서는 내게 그 곳의 대표(따로 뭐라 불렀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분이 얘기하기를 앞으로도 몇 번을 더 해야 온전히 죄가 씻긴다고 했다.

분명히 아까는 오늘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기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 자고 났더니 기분이 더 꺼림칙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그 사람들이 하던 '조상공양'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세상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됐다. 난 지금 알바하며 알뜰살뜰 모은 전 재산을 내 손으로 직접 쥐여주며 두 눈 뜨고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계시는 분들은 이게 말이 되냐고, 참 바보같다고 비아냥거리실 수도 있지만(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진심으로 홀려있었다. 지금까지 사기란 건 남이 당하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지난해 7월 9일의 일이다.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 내려가는 표를 끊고 기다리는 길에 나한테 접근했던 아저씨에게 전화해 돈 돌려달라고 울며 빌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 조상님께 공양한 건데 어떻게 다시 돌려드려요."

필요 없다는 내게 아저씨는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다시 112로 전화했다. 울먹울먹이는 내게 경찰관은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지금 서로 합의 하에 직접 현금으로 돈을 쥐여주셨다는 거죠?"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아, 진짜로 그 돈을 잃어버린 것이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4시간 동안 정말 하염없이 울었다. 모았던 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다. 하지만 더 슬펐던 건, 세상 사람 중에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서였다.

그동안 살면서 나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사람들 중에 나쁜 의도로 내게 접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믿음이 부서진 날이었다. 처음으로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고, 이런 내가 과연 여행을 할 수 있까라는(그동안 부모님께 여행을 하려고 휴학하겠다고 말했고 아직 허락을 못 받은 상태였다) 생각과  나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집으로 가서 잠만 이틀을 내리 잤다. 자고 다시 올라가기 전 기회를 틈타 엄마한테 슬쩍 말하니 펄쩍 뛰며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여행을 가냐, 절대 못간다고 하셨다(납치나 안 당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신 듯 하다). 그 때, 나는 내 멘토께 연락을 했다(이 분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자세히 말하겠다). 통화를 한 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무조건 여행을 가야겠다!

이상이 내 여행 준비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지는 간다고는 했지만, 뚜렷한 계기가 없었고 미적미적였는데 그 이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인생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하게 들었다. 부모님께 그런 취지로 말했더니, 드디어 허락을 받았다. 여러 고민 끝에 세종시에서 방을 잡고 자취하면서 알바를 구해 일하기로 결정했고, 내 1년간의 휴학 생활이 시작됐다.
#휴학 #여행 #결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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