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의 도미니코 수녀회 마당 곳곳에 있던 오렌지 나무들
송주민
시선을 가까이로 돌리자, 어제 밤 달빛 아래에서 보았던 오렌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수녀원 마당 곳곳에 솟아 있다.
"나 여기 있을 때, 저 나무들에 물을 주는 일을 했었어."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며,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수녀원에 있던 3개월,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오렌지 나무에 물을 줬단다. 똑같아, 똑같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되풀이하고 있다.
오렌지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벌겋고 노랗게 반짝인다. 테라스 안쪽 바로 앞 식사 테이블에 놓인 아침식사에는 바게트 빵과 함께 오렌지 잼이 놓여 있다.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는 프랑스라더니, 바게트와 잼류, 음료 정도로 단출하게 차려져 있다.
"이 오렌지 잼이 저 마당에 있는 것들로 만든 것일까?""맞아. 하느님이 키워준 오렌지들이지."신앙이 강한 사람들은 다 하느님이 해줬다고 하는 게 문제야. 그런 생각을 하며, 유자잼 보다 조금 더 진한 빛깔의 오렌지 잼을 바게트에 발라서 한입 먹어본다. 달달하고 새콤하다. 그리고 인공의 맛이 없다. 어느덧 로사 수녀님이 보인다.
"잼이 참 깊고 맛있네요.""이거야 말로 비오(Bio, 불어 biologique 친환경 유기 재배 식품을 저렇게 줄여서 부르더라)지. 자기들이 알아서 햇살 받아 자란 것들이니 말이야."농약도 비료도 없이 햇살과 바람과 살살 뿌려주는 물만으로 큰 오렌지란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보니, 저절로 컸다는 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날씨앱에도 파리나 더 위쪽의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는 온통 흐리거나 비 표시의 연속인데(유럽의 우중충한 겨울 날씨를 연상케 하듯), 이곳은 이번 주 내내 해님 표시만 이어져있다. 여기는 날마다 화창한 날씨가 오만할 정도로 계속된다는 프로방스의 땅이다. 수녀님도 덧붙인다.
"우리가 뭘 얼마나 하겠어. 하느님이 알아서 키워주시는 거야."사람은 흘러갔으나, 흔적은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