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세(위), 테오필루스 아들의 회생(아래)마사초 '성전세'(위), 마사초, 필리피노 리피 '테오필루스 아들의 회생과 법좌에 앉은 성 베드로'(아래). 피렌체, 브랑카치 예배당. 23세의 마사초가 그린 이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의 시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박용은
이 연작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인 '성전세'는 기존의 성화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주제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예수의 기적을 묘사한 이 일화를 마사초는 특이한 방식으로 구성했는데, 바로 한 화면에 세 개의 다른 순간을 묘사한 것이죠.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려는 화면 중앙의 예수. 그런데 그들 앞에 세금 징수원이 나타나 성전에 들어가려면 세금을 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세금 징수에 발끈한 제자들. 그러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호수로 가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고 그 배에서 은전을 꺼내오라고 합니다. 믿기지 않는 스승의 말을 듣고, 베드로는 동전을 꺼내기 위해 화면 왼쪽 구석에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끙끙거립니다. 그리고 이내 화면 오른쪽으로 가서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는 세금 징수원에게 은전을 건네고 있죠. 돈을 받아 즐거워진 세금 징수원이 탐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불과 23세의 젊은 마사초는 이 독특한 화면에 그동안 자신이 익혔던 새로운 양식들을 총동원하여 천재성을 드러냅니다. 먼저 투시 원근법을 적용한 오른쪽 건물은 대기 원근법(멀리 있는 대상일수록 작고 희미하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묘사된 산자락으로 이어져 독특한 공간감을 보여줍니다. 성인들이라 어쩔 수 없이 광배(nimbus)를 그려 넣긴 했지만, 예수를 비롯한 제자들은 지오토의 인물 묘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실성을 드러내고 있죠. 한 명 한 명 개성이 살아 있는 표정과 동작. 그리고 그들에게도 역시 그림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 일행을 막아선 세금 징수원의 다리는 아담의 다리처럼 명암을 통해 근육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황금빛으로 치장된 국제 고딕 양식의 정점,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며칠 후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날 것입니다)가 수많은 피렌체인들의 찬탄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마리아인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에는 세례를 받고 있는 근육질의 사마리아인과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에는 헐벗은 늙은이와 앙상한 다리의 나이 어린 앉은뱅이 병자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당시 피렌체 사람들의 옷차림을 하고 있죠. 그들 주위에 피렌체의 평범한 건물들이 배경으로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을, 그것도 이교도에, 늙고 병들고 미천한 이들까지 성화에 등장시킨 것은 마사초가 거의 처음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대한 관심, 르네상스 회화 정신은 이렇게 마사초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대한 관심... 마사초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회화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