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여기저기서 두 사태의 닮은 꼴을 분석하는 비평과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조기 수습의 실패, 정부의 정보통제와 은폐 등이 주로 언급되는 양상들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대응) 역량은 사실 사회가 평화로운 시기를 누리고 있을 때보다 자연재해가 되었든 인재가 되었든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너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왜 이렇듯 박근혜 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이 연속해서 연출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사고 대 사고가 아닌, (국가 대 국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정권 대 정권으로 비교 해 볼 필요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경향신문의 신동호 논설위원을 포함한 몇몇 명민한 평론가들이 이 두 사건을 김영삼 정권 후반기였던 1995년, 5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연결시키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닮은 꼴 인재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은 정부가 사고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재발방지책을 세우지 않았던 까닭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많은 언론사들이 앞다퉈 노무현 정권 당시 겪었던 사스 사태와 메르스 사태를 비교 분석하면서 효율적인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재발방지책과 컨트롤타워의 유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이었을 뿐 국가차원의 위기 발생시 정권 간에 대응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의 차이였을까요? 그러기엔 보수와 진보, 그 상이성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가 불분명합니다. 그럼 국가원수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가치관의 차이일까요? 대통령제를 따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도자가 가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또한 변수와 행위자가 많은 국내정치의 구조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제가 전제하는 바에 의거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선거가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국가의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투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가치보다 경제적 성장이 우선시 되었기에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고, 박정희 정권 하에 이뤄졌던 경제성장에 대한 향수가 박근혜 정권의 계승을 가능하게 하면서 대한민국을 3공화국으로 되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권위적인 정부의 특징은 국가의 권위가 통제와 압박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마음 놓고 정부를 비판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위기 발생시 사고의 원인의 제공자로 정부가 지목될 경우 희생자들에 대한 애가를 목청껏 부를 수 없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실종자들의 시신이 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 잔해를 난지도에 매립해버렸습니다.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지만 큰 저항 없이 처리됐습니다. 20년 지난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고 희생자들의 가족은 정부를 상대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사회적 지지 속에 싸움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80년 당국의 철저한 언론통제 하에 광주학생운동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둔갑할 수 있었지만, 2015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은 더 이상 정부의 구세대적인 정보통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용기와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는 20년 동안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켜온 대한민국의 역량을 보여주지만, 희생자들에게 애가를 허용하지 않는 정부와 일부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진정한 국가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성숙되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음을 또한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되기 위해서는 많은 우여곡절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국가 또한 생명과 윤리가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는 하나의 유기체로 성숙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혼란기와 과도기를 거쳐야 함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된 지는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저 형태 지나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생명과 윤리가 우선시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아마도 지금까지 흘러온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그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이라 인식이 더욱 분명해져야 함을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그 주인의식이 현재는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지만, 보다 성숙한 주인의식은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 발현되어야 하며, 그리고 책임을 지는 방법 또한 보다 건설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도자와 정부의 정책과 태도의 변화는 결코 지도자나 정부에 대한 비난과 비하를 통해 이뤄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출될 때 사회는 결과적으로 통합이 아닌 분단을 경험하게 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생명과 윤리가 존중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현명하고 적절한 협상을 통해 그 대안이 정책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우리의 분노를 건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대한민국은 정권이 교체되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사회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시민을 위한 정권이 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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