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정문 앞 늘어선 교사들, 알고보니

[혁신학교에서 희망찾기 4] 원주시 북원여중

등록 2015.07.09 15:12수정 2015.07.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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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자발성·창의성·공공성·지역성'이라는 기본정신을 통해 학교혁신 실천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발한 혁신학교는 강원도에서는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54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희망신문>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 등을 제공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중특별기획으로 '혁신학교에서 희망찾기'를 9회 연재한다. <오마이뉴스>는 <강원희망신문>의 동의를 얻어 이 기사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말]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북원여자중학교 교문 안에서는 매일 아침, 다른 학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진다. 나이가 지긋한 교사들이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교문 안쪽에 늘어서서, 그날 아침 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학생들 역시 그런 교사들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북원여자중학교(이하 북원여중)가 아닌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상당히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이런 풍경은 지금 중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특히 더 낯설다. 누군가는 감히 상상도 못 했을 풍경이다. 80,9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중에 아침 등교 때 교사들의 인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누가 했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이 됐다. 북원여중에서는 등교하는 학생들 그 누구도 교문에 서 있는 교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가벼운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매우 특별해 보이지만 정작 본인들 눈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북원여중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북원여중, 학생과 교사 모두가 수업 주체로 참여하는 모둠수업 장면. ⓒ 북원여중


아침 인사로 시작하는 학교생활

북원여중 교사들이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다. 2011년, 북원여중이 강원도형 혁신학교인 '행복더하기학교'로 지정된 이후다. 교사들은 북원여중이 행복더하기학교로서 이전과는 다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원여중은 지역에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학교 위치가 시내 중심에서 꽤 떨어져 있는 데다 학교 주변 환경도 열악한 측면이 있어,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기 꺼려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자존감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이런 경우,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직접 보여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인사'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교사들은 이렇게 해서 5년 전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인사를 하는 교사들이나 인사를 받는 학생들이나 모두 쑥스러워했다. 학생들은 특히 더 어색해했다.


늘 권위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교사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등굣길에 자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교사들이 교문에서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맞이하는 날은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러면서 학생들도 교사들의 인사에 담긴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가로놓인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이제는 교사 앞에서 쭈뼛거리며 거리를 두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아진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원여중의 수업은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 성낙선


4명이 한 조, 모둠수업의 장점

북원여중에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교실 안에서 이뤄졌다. 2학년 교실, 3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조금 산만한 분위기다. 아이들이 절반으로 나뉘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수업을 하고 있다. 원래는 4명씩 조를 짜서 모둠별로 앉아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날은 날이 너무 더워 선풍기 바람을 잘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책상을 돌려 앉았다.

교사는 아이들 곁에 서서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 교실 안은 교사와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로 시끌시끌하다. 얼핏 보면, 지금이 수업 시간인지 그냥 쉬는 시간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수업은 매우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이 떠드는 것처럼 보이는 건 자신이 가진 생각과 지식을 끊임없이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도 일제히 교탁과 칠판을 향해 앉아 수업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에겐 꽤 낯선 것이다. 북원여중에서는 수업이 대부분 모둠별로 이뤄진다. 4명이 한 모둠이 돼서 책상을 모두 마주 놓고 앉아 수업을 진행한다. 교사가 과제를 내주면 모둠에 속한 학생들이 함께 해결한다. 그러는 동안, 교사는 일종의 '안내자'이면서 '지휘자'이기도 한 역할을 맡는다.

아이들은 수업에 모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자연히 혼자서 떠들거나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채 그냥 엎드려 자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 수업 시간에 이렇게 활달한 아이들이 또 있을까 싶다. 모둠 수업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

공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 북원여중


함께 협력하는 '배움 공동체'

북원여중에서 학교 수업이 모둠별로 진행되는 데는 그 방식이 지식과 생각을 나누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모둠 수업은 특히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좋은 효과를 거둔다. 아이들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데서 배우는 보람을 느낀다.

북원여중에서 '지식'은 친구들과 서로 나눠 갖는 것이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 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공부를 하는 가운데 서로 하나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 '배움 공동체'를 만드는 게 북원여중이 가지고 있는 교육 목표 중의 하나인데, 그 공동체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모둠수업은 또 수업에 참여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친밀도를 높여준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주입식 교육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동료로 인식한다. 그만큼 교사와 학생 사이,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에 갈등이 일 소지가 크게 줄어든다. 실제 북원여중에서는 2013년 이후 지난 2년여간 학교폭력 등의 사고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자존감이 높아진 아이들이 수업뿐만이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건 당연지사다. 다른 학교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교 복도에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이러저러한 지시와 훈계가 나붙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북원여중의 복도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아이들이 남긴 의견이 붙어 있기 쉽다. 북원여중 복도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그런 사례들 중에 하나다.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과 봉사 활동에도 열심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활동 중에 동아리인 '아름다운 지구인'과 학교특색교육인 '아름다운 지구살림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6년 전 교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대한 재활용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교실 안에 '분리배출함'을 가져다 놓고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들을 모두 이곳에 모아서 분리 배출한다. 이 프로젝트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이 80% 가까이 줄어들었다. 놀라운 결과다.

복도에 학생들이 또래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 성낙선


혁신학교는 유별난 학교가 아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수업 내용을 수시로 공개하는 것도 북원여중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다. 공개수업을 통해, 교사들은 자신들이 교실 안에서 수행하는 수업 방식을 끊임없이 개선한다. 교사들이 수업 공개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모둠 수업' 자체가 교사들의 창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북원여중 교사들은 원칙적으로 매 학기 한 번씩 수업을 공개한다. 북원여중에서 실시하는 공개 수업은 단순히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수업 공개를 하는 데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평상시 교실 안에서 실시하는 수업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사들은 수업 중에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찾아낸다.

북원여중에서는 또 교사들의 수업 연구가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교사들은 수업 공개 외에, 매주 수요일을 '교사 연수의 날'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 수요일에는 '교직원 협의회'가 열린다. 그리고 두 번째 수요일에는 '전교사수업연구회'가, 세 번째 수요일에는 '교과수업연구회'가, 네 번째 수요일에는 '학년수업연구회'가 열린다.

혁신학교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아직도 혁신학교를 '유별난 학교'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를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흔한 오해 중에 하나가 '혁신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행복을 강조하는 탓에 성적이 다른 학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북원여중에서는 그런 인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북원여중 학생들의 성적은 높은 편이다. 이 학교 최규수 행복학교운영부장 말에 따르면, 성적으로 놓고 봤을 때 북원여중은 원주시 내에서 상위 그룹에 속해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즐거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바람직한 게 없다. 거기에다가 성적까지 좋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다.

최규수 교사는 "북원여중은 결코 별난 학교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원래 학교가 이런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북원여중은 절대 별난 학교가 아니다. 별난 걸로 따지면,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낡은 교육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학교들이 더 심하다. 5년 전, 북원여중은 학부모들이 가장 꺼려하는 학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5년 후인 지금, 북원여중은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로 변했다. 북원여중에서 미래에 우리 학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차윤희 학생 ⓒ 북원여중

차윤희 학생은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성격은 밝고 활달한 편이지만, 때로 약간 냉정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장래 꿈은 법조계에서 일하는 것이다. 학생회장에 입후보할 당시, '학생들과 소통하는 회장으로서, 학생소통함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차윤희 학생에게서 북원여중에서 겪는 학교생활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 북원여중은 다른 학교와 비교해 어떤 점들이 다른가요?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분위기가 밝고, 협동적입니다. 행복더하기학교로 서로 도와가며 문제를 해결하고, 선생님과 학생 간의 사이가 좋습니다. 그리고 지구 환경을 소중히 생각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교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침마다 학생 선도 대신 학생과 선생님이 서로 아침인사를 나누며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다릅니다."

- 그런 점들 중에서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함께 환경을 생각하며 분리수거도 하고 '쪽지 접기'(비닐 쓰레기를 부피를 줄이기 위해 딱지 모양으로 접어서 버림)를 하는 것이 자랑할 만합니다. 평소에 환경에 대한 교육도 받고, 환경동아리의 관리 덕분에 체계적인 분리수거와 빈 그릇 운동(급식 남기지 않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북원여중은 행복더하기학교입니다. '행복더하기'라는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행복더하기'라는 말 속에는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행복이 되고, 학생은 선생님께, 선생님은 학생에게 행복이 되는,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더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행복더하기 학교에 다니다 보니 모둠 수업이 많은데 내가 친구에게 도움을 주어 문제를 해결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웃는 순간이 사소한 일이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 북원여중 학생으로서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북원여중과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해주시고 반영해 주시기 때문에 지금도 완벽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원여중 #행복더하기학교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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