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가 박근혜를 본다면 뭐라 할까

[분석] 정치인 박근혜의 발언으로 본 그의 정치철학

등록 2015.07.10 09:49수정 2015.07.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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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새시대를 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모습 ⓒ 청와대 블로그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임기를 1년도 못 채웠다. 메르스 정국의 위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이 사건을 주목했다. 야당은 헌정사에 길이 기록될 전무후무한 치욕의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스스로 자임하는 격이 된다. 취임 일성부터 박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을 성토했던 여당의 원내대표가 결국 밉상이 돼 쫓겨났으니 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공히 대통령의 서슬에 영향을 받고 원내대표를 끌어내렸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의회민주주의가 엎어진 셈이다.

야당이 언급했듯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새누리당 의원들의 비겁과 굴욕은 어디서부터 초래된 것일까.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정치철학의 신뢰와 소신은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것일까.

박근혜 '정치 신뢰'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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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을 넘어서 합의의 정치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 모습 ⓒ 새누리당 홈페이지


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11월 부경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그의 정치철학을 내비쳤다.

"정치란 나를 버리는 것이다. 정치란 잠시 국민의 위임을 받아 봉사하는 것이다. 나를 버릴 때 원칙과 가치를 지킬 수 있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도 얻을 수 있다."

당시 정치인 박근혜는 정치의 신념과 목표를 제시하며 원칙과 약속, 깨끗한 정치실천 등을 언급했다. 그러며 그는 박사학위가 입증하듯 그동안의 실험정치 여론을 잠재우고, 실천하는 전문 정치인으로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요약하면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철학은 '신뢰'와 '소신'이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연설문에서 "고통을 이겨낸 국민과 정부가 서로를 믿고 신뢰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면서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고 신뢰의 자본을 쌓겠다"라고 표방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정치 철학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4월 국회연설을 통해 밝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와도 일맥상통했다. 당시 유 대표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서 용감한 개혁을 실천하고 싶다"라면서 그의 정치 소신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더불어 유 대표는 '진영의 넘어 합의의 정치로'라는 그만의 정치철학을 공유했다. 그는 "진영은 본질이 독재와 똑같다, 진영의 논리를 벗어나 포퓰리즘의 과열 경쟁을 자제해 합의의 정치를 이끌어 가겠다"라면서 "오로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책임의 정치를 일구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정현 의원 "박근혜 힘의 원천은 바로 말의 신뢰"

박 대통령의 심복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은 지난 2008년 '박근혜 전 대표 발언 기사 모음집 - 2004~2008'을 발간했다. 분량만 총 341페이지에 달한다. 당시 이 의원은 자료집을 내면서 "박 전 대표의 공식발언은 그 자체가 정치철학이고 신념이고 소신"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며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힘의 원천은 바로 말의 신뢰에 있다, 약속과 신뢰를 단지 말로만 아닌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더불어 이 의원은 "박근혜의 말은 2년 전이나, 4년 전이나 일관성이 있고 실천력이 다부지다"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이 의원은 또한 "박근혜 전 대표는 해야 할 말과 말할 자리와 말할 시기와 말하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안다, 오버하는 일이 없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어떤 이는 말했다고 불만이고 어떤 분은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한다"라면서 "몰랐는가, 그 점이 박근혜 전 대표와 그런 주문을 하는 사람과의 차이라는 걸"이라고 말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누갸 한 말이냐면

이 의원이 수집한 박근혜 어록은 4년 동안의 언론 활동을 장르별로 총망라했다. 개혁론,  국가정체성, 리더십, 실용주의, 야당역할론, 정치개혁 등의 순으로 정리했다.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였던 정치인 박근혜가 대표적으로 했던 말을 보면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정치" "법치주의로 민주주의 지켜야" "저는 국민에게 큰 빚이 있다" "진짜 정치는 먹고 사는 실용 정치" "진정한 개혁은 국민이 잘사는 방향" "나에겐 오직 국민만" 등이 있다. 2004년에 한 말이다.

2005~2006년에는 "정치는 국민만 바라보며 해야" "국민을 보고 등원한다" "정치인 선택은 국민이 한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 약속은 꼭 지켜야" "블루오션 정치"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나에게는 국민이 가족이나 마찬가지" 등이 있다.

2007년에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대통령 걱정하는 사회" "대통령 리더십 성공 조건은 국민신뢰" "대통령은 국정에 집중해야" "이 땅에 정의를 세우겠다" "시한부 여당에 속지 마시길"이라고 발언했다. 2008년엔 "향기나는 정치인이란 소리 듣고 싶어"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참된 명예란 스스로가 떳떳할 때" 등이 있다.

"국민 마음 정부 여당서 멀어지면 레임덕 빨리 올 것"

구체적으로 어록을 짚어보자. 2004년 4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철회 제안에 대해 "대통령이 법치의 근간을 흔들어 문제가 됐는데 의회가 탄핵철회를 통해 이를 또 어긴다면 우리 스스로 법치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2004년 4월 9일 천막당사에서 "국회에서 통과된 약속은 지켜야 하며 전 세계가 한국의 국제적 신의가 어떠한가를 주시하고 있다"라며 "국가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국제사회에 설 땅이 없다"라고 파병 찬성을 재확인했다.

2004년 7월 '정치란 왜 하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박 대통령은 "국민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러자면 정치지도자부터 '사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뭐, 대통령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라고 정치 소신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2005년 9월 '블루오션 정치'에 대해서 "정치가 싸우고 윽박지르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비방하는 투쟁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블루오션 정치가 되려면 진보와 보수, 좌우이념 대결 등 극한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성토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독선으로 나라 망쳐'라는 논평에서 박 대통령은 "앞으로 1년이나 남았는데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노 대통령은 본인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다. 희생할 때 희생할 줄 알아야 하고 포기할 때 비로소 사회 이익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박 대통령은 2005년 5월 "국민의 마음이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멀어지면 레임덕이 빨리 올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한 2007년 1월 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향해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라며 "대통령과 정권은 오로지 시대착오적인 코드에 사로잡혀 나라를 혼란과 절망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정치가 자질은 시대정신 제대로 파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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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책표지 ⓒ 이정민


저 유명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정치가의 기본 자질을 세 가지로 나눴다.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열정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 행위를 하는 원동력이다. 책임감은 현실을 반영해 구속하고 조정할 수 있는 소양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정, 상호보완하며 결합시키는 능력이 균형적 판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가의 자질은 시대의 흐름, 즉 시대정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시류에 맞춰 정치가는 열정을 조절하고 책임감 있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막스 베버는 강조한다. 정치가가 단순히 야망과 열정만을 가지고, 또 그러한 자신만의 논리에 갇혀 책임감만을 운운한다면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막스 베버는 더불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에는, 혹은 지도력이 결핍된 민주주의에는 소명의식 없는 직업 정치가, 즉 지도자의 필수요건인 내면의 카리스마적 자질이 없는 직업 정치가들의 지배만 있을 뿐"이라고 우려했다. 작금의 직업 정치가들이 되새겨 볼 잠언이다.

"직업 정치가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자신이 어떤 자질을 갖춰야 이 권력을 제대로 다루고, 그래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성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그 권력이 제아무리 좁고 특수한 업무분야에 한정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중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박근혜 대통령 #정치란 무엇인가 #소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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