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장식품' 된 민주주의 어떻게 해야 할까

[서평] 알랭 바디우의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

등록 2015.07.12 20:56수정 2015.07.1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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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인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변형해 '행정적 민주주의'(군정 단계), '민족적 민주주의'(제3공화국), '한국적 민주주의'(유신체제)로 이어지는 담론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2015년 7월 7일자 '광복70주년 특별기획: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 (14) 민족적 민주주의 논쟁' 참조) 박정희는 '민주주의자'였을까.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민주정의당'을 세워 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제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가 임기 내내 강조한 것은 '민주주의'와 '정의'였다. 그러나 그는 현대 한국정치사에서 독재 정치의 아이콘처럼 돼버렸다. 전두환이 집권한 1980년대가 '민주화 시대'의 원년처럼 기록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왕정 식의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행정 수반이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찍어내기' 표적이 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3대 세습의 독재 국가 북한의 정식 이름조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들 모두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는 2013년 1월 26일 '철학으로 바라본 한해-현재의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행한 그의 강연을 묶은 책이다. 바디우는 강연에서 프랑스 작가 장 주네(1920~1986)의 희곡 <발코니>를 분석했다. "우리의 현재에 대한 거울상적 남근"(17쪽)을 명명하여 "벌거벗은 권력이 그 난폭성도 공백도 영원히 숨길 수 없음을 보여주"(17쪽)기 위해서였다. 바디우가 주목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현재, 즉 우리의 현재에 대한 철학적 희극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권력의 성대한 상징물은 무엇일까요? 건드릴 수 없는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이런 가치가 현재를 불행하게 현전시키는 것일까요?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이름은 '민주주의'입니다. (18쪽)

바디우가 정의하는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분유된 권력, 즉 실질적인 인민주권을 가리"(18쪽)키는 것으로, 국가의 한 형태를 지칭한다. 이런 제한된 정의에도 불구하고 바디우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말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정되며, 찬송가들 중에서도 보편적인 찬가가 이 이름을 기"(19쪽)린다고 말한다.

바디우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이것의 헌법적 조직화가 오늘날 정치생활의 무조건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시간의 상징적 이미지이자 우리 시대의 남근적 물신인 민주주의가 "거짓된 이미지로 이미지 없는 벌거벗은 권력을 감추고 있"(35쪽)다고 규정한다.


오늘날은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의무감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를 파괴하는 맹렬하고 벌거벗은 권력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뒤집어쓰자마자 모두의 인정을 받고 심지어 사랑받게 됩니다. 마치 경찰서장이 발기된 성기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모두의 욕망을 희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이 의무감이나 사랑을 조리 있게 다뤄야 합니다. 일단 우리의 영혼에서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떼어놓아야 합니다. (36쪽)

바디우는 적절하게 규제된 자본주의, 포르노그래피적이지 않은 자본주의, 생태 자본주의, 언제나 더 민주적인 자본주의를 제안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공상'이라며 일축한다.

자본주의가 그 개인(중간계급-기자 주)에게 덜 독재적이고 더 합의추구적인 권위를 그리고 더 규제된 부패를 제안하기만 한다면, 이런 점들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국가에] 참여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동시대의 중간계급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인지도 모릅니다. 중간계급은 자본주의의 가공할 만한 불평등한 부패에 순진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자들, 극소수이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45쪽)

바디우는 "유일하게 위험하고 급진적인 비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42쪽)이라고 꼬집는다. "현재 시간의 상징물, 이것의 물신, 이것의 남근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42쪽)이다. 이에 따라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도로 창의적인 비판을 끌어낼 수 없다면 우리는 "유곽의 여주인과 경찰서장으로 이루어진 짝, 즉 소모적인 이미지들과 벌거벗은 권력으로 이루어진 짝의 하수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디우식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정치를 무력하게 만든다. 실제 그렇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절대적인 무엇처럼 대접한다. 신성 불가침의 존재 같다. 민주적인 소통 없이 제왕적 통치를 일삼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말할 때 우리는 무력하기만 하다.

'민주주의'는 절대선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말이다. 바디우는 "물신 없는, 특히 민주주의적 물신이 없는 하나의 정치"를 강조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민주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정치를 가리키는 말이겠다. 바디우가 <발코니>에서 거대한 성기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찰서장에게서 권력의 벌거벗은 욕망을 읽어낸 것처럼, 민주적이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권력(자)의 민낯을 직시하는 일이 그런 정치를 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알랭 바디우 지음, 강현주 옮김 / 북노마드 / 2015. 6. 24. / 125쪽 / 1,2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

알랭 바디우 지음, 강현주 옮김, 김상운 감수,
북노마드, 2015


#알랭 바디우 #민주주의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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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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