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고 연기영 사장의 생전 모습(왼쪽). 3대 연분홍 사장이 손님에게 안경을 씌워주고 있다(오른쪽).
장선애
3대 안경사는 이름도 어여쁜 연분홍(34)씨다.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구요, 부모님이 권하셔서 대학에서 전공을 택했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 12년이 됐는데요, 일을 오래 하다보니 그리고, 아빠 돌아가시고 나니 책임감이 커졌습니다."고 연기영 사장이 딸과 함께 안경원을 운영하는 걸 얼마나 기다리고 좋아했는지, 2003년 분홍씨가 안경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매장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대대적인 기념 이벤트를 열었다. '국가공인안경사 3대 탄생기념 안경사 합격 기쁨 감사 세일'이라는 제목 아래 '안경사 연기영, 연분홍' 부녀 이름을 나란히 내건 당시 홍보 전단지는 안경원 역사 자료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다.
분홍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2년 동안 서울에 있는 안경원에 취직해 경험을 쌓고, 고객 응대 훈련과 시장의 흐름을 파악한 뒤 예산으로 돌아왔다.
'예산안경원'이 60년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대를 이어오며 무조건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류에 뒤처지지 않고, 변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4·5대로 이어졌으면출산을 하면서 8개월여 안경원을 떠났던 분홍씨는 가업을 위해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분홍씨는 천안으로 통근을 하고 있는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
"학교에서는 이론 교육을, 실무 일은 아빠가 가장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아빠가 가장 강조하신 것 중에 하나가 '연세 드신 분들은 도수를 높게 해드리면 안 된다. 정석대로 교정 시력을 맞추면 어지러우시니 낮춰서 안정적으로 해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많은 농촌에서 실무를 많이 하신 분만이 알 수 있는 노하우 같은 거죠."10년 동안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부녀이자, 선후배였던 딸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에 자꾸 눈시울을 붉힌다.
얼마 전 제대를 한 분홍씨의 동생 형모(24)씨도 안경광학을 전공하고 있다.
"지금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저 혼자 하고 있지만 동생이 합류하면 힘도 덜 들 테고, 또 더 젊은 감각으로 운영하면 좋지 않겠어요?"분홍씨는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일을 동생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바람도 덧붙인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동생이 같은 일을 하는 아내를 만나고, 4대 5대까지 계속 '예산안경원'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늘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고, 미래를 기약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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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모두 안경사... 스무살 청년이 노안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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