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반짝이는 눈망울, 우리 가족이 제주도 간 사연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45] 6월 말, 이른 여름 휴가 이야기 ①

등록 2015.07.15 18:06수정 2015.07.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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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5년만에 제주도로 떠난 여름 휴가

5월 중순부터 메르스로 뒤숭숭하더니 6월 중순 메르스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한 환자가 강동구 여러 병원을 경유하면서 강동구 내 격리자가 수 천 명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메르스 걱정으로 나들이 동선을 줄이고 칩거 아닌 칩거를 하던 때, 그런 일이 벌어지자 집 앞 놀이터도 못나가는 아이들의 원성은 여름날 수은주보다 더 올라갔다.


동네의 크고 작은 모임도 취소, 연기가 되고 자주 가던 도서관도 2차 휴관에 들어갔다. 지역의 사회적경제 일을 하는 남편의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7월 초 마을축제로 남편도 나도 아주 바빠야 할 6월 중순이 헐렁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던 차 누군가 메르스 때문에 제주 비행기 편도가 아주 저렴하다며 당일치기로 제주 가서 밥이나 먹고 오자는 농담을 건넸다. 그냥 웃어넘기고 집으로 왔는데 제주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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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 태교여행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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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의 마지막 여행 ⓒ 이희동


어릴 적부터 나는 그냥 제주가 좋았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맛본 제주의 바다는 늘 꿈결 같았다. 결혼 전 혼자 불쑥 일주일 동안 제주 여행을 떠났었고, 친구와 마라도 기원정사에 마음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다. 첫 아이 태교여행으로 남편과 풋풋하게 다녀온 적도 있다. 그리고 친정아빠께서 돌아가시기 1년 전, 회갑기념으로 둘째를 업고 첫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빠 휠체어를 밀고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늘 그리운 제주이지만 아직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곤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5인 가족 왕복 26만 원의 비행기 티켓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제주를 저 가격에 갈 수 있다니 붕 뜬 마음은 이미 제주에 도착해버렸다.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메르스 때문에 먼 나들이를 고민하던 남편은 격리자가 수 천 명인 강동구보다는 제주 바닷가가 훨씬 더 안전할 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5년 동안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산청 친정행 외에는 변변한 여름 휴가를 못 갔던 터라 이번엔 무리를 해서라도 이른 휴가 겸 제주에 꼭 가고 싶은 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고민 끝에 동의했고 나의 폭풍검색은 시작되었다.

거의 반나절의 검색 끝에 오전 6시 15분 출발, 오후 8시 20분 출발이라는 꽉 찬 2박 3일의 항공편을 예약했다. 1분이라도 제주에 더 있고 싶고, 100원이라도 더 저렴한 항공편을 위한 선택이었다. 새벽 출발, 밤늦은 귀가의 일정이 힘들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여행 전 들뜬 마음에 이 비행일정이 얼마나 힘들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 셋과 함께 할 숙소 찾기의 어려움

자, 이제는 숙소! 소셜사이트에 괜찮아 보이는 숙소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5~6만 원 선에서 괜찮은 원룸을 예약하려고 했지만, 아이가 셋이라는 말에 추가요금이 거의 3만 원이나 붙어버렸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로 방향을 돌렸다. 혼자, 혹은 친구 몇몇과 여행하기 참 좋은 숙박시설이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을 받아주는 게스트하우스는 흔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받아주는 곳을 찾았고, 방 두 개에 욕실이 딸린 독채를 적당한 가격으로 내어주는 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침까지 준단다!

관광지나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한 지역이 아닌 작은 마을(구좌읍 하도리)에 평범한 제주집 같은 숙소를 예약하고 나자 모든 준비가 끝난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번 여행은 유명 관광지 대신 그냥 제주의 작은 마을과 바다에서 쉰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 후 컴퓨터를 껐다.

일기예보를 들여다보던 남편의 한마디. "우리 제주 있는 동안 내내 비가 오네." 아! 제주 날씨 변덕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3일 중 단 하루도 '맑음'이 없다니! '비 오다 갬, 흐리다 비, 종일 비'가 3일간의 예보였다. 그림 같은 제주 바닷가에 돗자리 깔고 누워 모래장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깜빡 졸기도 하는 그림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비'라는 변수가 나타나자 여름이면 손바닥만 한 민소매옷과 3부 반바지면 되는 아이들 옷차림부터 달라져야 했다. 바람막이 점퍼에 얇은 가디건, 비옷 등등. 비 오는 풍경도 운치 있는 제주이지만, 아직 드라이브의 맛을 알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에게 비 오는 날은 심심할 뿐. 게다가 돌아오는 날에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다.

'아무 것도 안할 거'라던 제주여행에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폭풍검색. 인터넷 파도를 타다 보니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자꾸만 늘어갔다. 관광지 하나 예약하는 것보다는 패키지가 더 저렴하다 보니 '기승전패키지'가 되어버렸다. 짐도 싸기 전 검색과 예약만으로 벌써 지쳤다. 렌터카와 맛집은 남편에게 넘겨버렸다.

미국도 아닌데 오전 4시 출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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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 비행기를 탄다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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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설렌다 ⓒ 이희동


겨우 3일이지만 집을 비우자니 마음이 바쁘다. 냉장고에 든 식재료를 살피고 밀린 빨래가 없게 신경을 쓰고, 고장난 여행가방과 작아진 까꿍이의 수영복, 마을극단과 도서관 운영회의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프면 안 된다. 여행 전 설레임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고 고단한 며칠을 보내고 떠나기 전날 자정에야 가방을 다 쌀 수 있었다. 

메르스 자가격리자 검사로 출발 한 시간 전까지 오라는 항송사의 문자에 공항 도착 시간은 오전 5시 15분.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동선엔 늘 변수가 생겨 30분의 여유를 갖고 움직여야 해 오전 4시 출발을 정하고 3시 40분에 일어나 자는 아이들을 안아 차에 태웠다. 미국도 아닌데, 비행시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제주에 가면서 오전 4시 출발이라니!

공항보다 싼 인근 주차장을 이용하다보니 더 일찍 서둘러야 했다. '돈'과 '수고로움'은 왜 늘 반비례할까. 출발의 설레임보다 피곤이 더 컸지만 드디어 올라탄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개미보다 작게 보이는 집들을 보며 아이들은 감탄했고 끝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에 이제야 여행가는 기분이 난다. 그래, 얘들아, 엄마도 좋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제주인지 너희는 모를 거야. 우리 신나게 놀고 오자. 우린 지금 하늘을 날고 있어! 

[아빠의 일기] 아내와 다른 나의 제주도

며칠 전부터 지나가는 말로 '제주도' 이야기를 꺼내던 아내가 어느날 아침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제주도 가자!"

제주도라. 그래, 못 갈 이유는 없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사회적경제 장터나, 마을 축제 등 사무실의 모든 일정이 연기되었던 터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휴가를 내면 걸리는 것이 결국 동료들과의 일정 조정인데 하는 일 자체가 없어졌으니 그만큼 부담이 덜할 수밖에.

게다가 아내는 메르스 사태 여파로 편도 1만 9900원까지 떨어진 제주행 비행기표를 틈틈이 보여주었다. 물론 막상 예약하려 들어가면 가장 싼 티켓은 이미 매진이었지만, 그래도 메르스 사태의 여파 때문인지 6월 말 제주도행 비행기 표는 생각 외로 저렴한 편이었다. 다섯 식구 기준 제주 왕복 비행기 값이 30만 원도 안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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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바다 아내가 그리던 바다 ⓒ 이희동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제주도 행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이 되고, 비행기 값이 싸다한들 그것이 내가 제주도에 갈 결정적 이유는 되지 못했다. 남들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아름다운 풍광 등을 들며 제주도 예찬론을 폈지만, 내게는 그런 제주도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제주도는 수많은 섬들 중 하나였고, 바다는 같은 바다일 뿐이었다,

"제주도 바다가 인천 앞바다와 같아?"
"뭐, 인천 앞바다는 조금 더 더럽고, 제주도 바다는 가기에 조금 더 비싸지."
"그래서 두 바다가 같다고?"
"응."

아내는 나의 이런 발언에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이는 결국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아내와 내가 다른 탓이었다. '휴양'을 중시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그 지역을 '관광'하고자 했고 따라서 그 지역의 역사, 정확하게는 내가 얕게나마 알고 있는 역사가 중요했다. 결국 내가 여행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갔던, 그리고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제주의 역사는 삼성혈에 대한 전설과 4.3 항쟁이 거의 전부였다, 오랜 시간 동안 제주의 역사였던 탐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물론 공부하면 되겠지만 여행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제주도를 현지 물가가 비싼, 그리고 몇 번 다녀온 관광지 중 하나로 기억할 수밖에.

초롱초롱한 아내의 눈망울... 그래 가자 제주도!

아주 오래 전부터 제주도를 노래하던 아내와 제주도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는 나. 그러나 나는 이내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전 tvN <수요미식회>에서 봤던 제주도의 맛집이나 저렴한 비행기 가격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제주도만 이야기하면 초롱초롱해지는 아내의 눈망울이 결정적이었다.

그래, 아내에게 제주도는 그냥 섬이 아니었다. 그녀의 수학여행이나 결혼 전 여행은 잘 모르겠으나, 제주도는 우리가 까꿍이를 임신해서 갔던, 그리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기 전 함께 했던 마지막 여행지였다. 우리가 옛날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제주도를 가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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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용눈이 오름에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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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의 3년 전 까꿍이 ⓒ 정가람


아내가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올랐던 용눈이 오름과 그곳에서 봤던 우도 및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운 풍광, 임신한 아내를 운전시키면서까지 혼자 마셨던 한라산 소주의 알싸한 맛, 우도의 하얀 모래사장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까꿍이와 그런 손주를 지그시 아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장인어른의 모습 등등.

여행의 목적이 어디 휴양과 관광만 있겠는가. 자신의 흘러간 과거를 돌이키며 현재를 치유하는 것 역시 여행의 묘미겠지. 어쩌면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을 하고픈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무언가를 좀더 보고 듣고 배우려는 욕심이 앞서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보다는 추억을 반추하며, 하루라도 젊었던 당시를 떠올리고 싶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제주도 여행을 결심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아이들 때문이었다. 잘 하면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갈 수 있다는 엄마 말에 흥분한 세 녀석들. 까꿍이는 3년 전을 기억하는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탔던 서귀포의 잠수정을 계속 이야기했고, 산들이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었으며, 복댕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누나, 형을 따라 마냥 기뻐했다. 손짓 발짓 하며 '우~웅' 하는 것을 보니 비행기 탄다는 것을 아는 것도 같았다.

비록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의 어린 나이지만 잠재의식에서라도 녀석들은 이번 제주도 여행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일 것이며,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는 엄마와 아빠의 제주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녀석들에게 각인되겠지.

난 결국 아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아이들의 열광적인 모습에 흔쾌히 꽉 찬 2박 3일 제주도 행을 결심했다. 비록 일기예보에서는 마지막 날 비 소식을 알렸지만 그것이 제주도를 못 갈 이유는 될 수 없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제주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거니. 오히려 비가 오면 장인어른과 비 오는 날 함께 갔던 시장을 떠올리게 되겠지.

공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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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러 출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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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훌쩍 커버린 둘째 산들이 ⓒ 이희동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제주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일요일 이른 새벽 시간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흥분했는지 새벽잠을 청하지 못한 채 공항에서 폴짝폴짝 뛰어 다녔다. 그래,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그 기분. 나도 25년 전 그 설렘을 잊지 못하지. 공항은 아직 메르스의 여파로 예전보다 수속이 복잡해진 듯했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곧 비행기를 탄다지 않은가.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 착석했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껏 흥분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창밖을 내다 보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3년 전 기압 차로 생기는 이명 현상 때문에 기내에서 1시간 내내 울었던 당시 돌도 지나지 않았던 산들이가,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세월은 이렇게 빨리 흘러 가는구나.

창밖으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래, 우리는 지금 제주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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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주도 간다 ⓒ 이희동


#육아일기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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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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