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닮은 두 남자 이야기

등록 2015.07.15 21:49수정 2015.07.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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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5일 감자를 닮은 두 남자가 화천 평화의 종에서 만났다(좌측 최문순 강원도자사, 우측 최문순 화천군수) ⓒ 신광태


"나는 토종감자지만 최문순 화천군수는 개량감자입니다."


지난 6월 25일, 화천 평화의 댐에서 '6.25 기념행사'가 열렸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본인은 토종감자지만 최문순 화천군수는 개량 감자다'고 말했다.

지사와 화천군수는 이름이 같다. 한자(崔文洵)마저 똑같다.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참석자 중 한 사람은 망설임 없이 '지사도 잘하지만, 군수가 좀 낫지' 라는 말을 한다. 화천군민인 듯했다.

"지사가 본인이 토종감자라고 한 것에 대해 난 반대."

옆에 있던 동료직원의 말이다. 뭔 소린지 묻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었다. "토종감자는 원래 저렇게 안 생겼어. 통통하고 예쁘게 생겼지. 불량감자라면 모를까.(웃음)"

불량이든 개량이든 두 사람 모두 감자를 닮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최문순 지사는 감자 같은 토속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강원도를 누구나 찾고 싶은 고향 같은 이미지로 바꿨다. '감자 콘셉트'가 먹혔다는 평가다.


화천군수도 만만치 않다. 화천이 고향인 그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부군수로 퇴직했다. 한 지역에서 35년여 기간을 공직으로 지냈으니 '어느 집에 젓가락이 몇 개나 되는지도 안다'고 할 정도로 정통하다. 지난해 70%가 넘는 득표로 당선됐다.

군 단위 지역에서 최 지사가 우세를 보인 지역은 화천군이 유일했다. 개중 '군수인 줄 알고 잘못 찍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사가 군수를 개량감자로 치켜세운 건 자신의 외모가 좀 딸리기 때문이란 후문도 있다.

감자밥, 쌀보다 감자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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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강원도 사람들에겐 주식이고 생활이었다. ⓒ 신광태


강원도 사람을 '감자바위'라 불렀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멍청하다는 표현 같아 싫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강원도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 적혀있다. 젊은 시절, 그게 싫어 고향을 물으면 '경기도'라고 했던 적도 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지금은 '참 정겨운 별칭'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왜 사람들은 강원도하면 '감자'를 떠올릴까. 강원도엔 산이 많다. 옛날 산골사람들은 일정 구획을 그은 후 화전 밭을 일궈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다. 감자가 화전 밭에 적합한 농작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논이 없는 산촌에선 감자와 옥수수가 주식이었다. 감자는 타 농작물에 비해 비교적 빨리 생산되는 특성이 있다. 농민들은 감자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김장용 배추를 심었다. 감자를 심으면 이모작이 가능했다.

쌀이 귀한 산골 사람들은 감자를 쌀로 바꿨다. 감자 한가마니를 줘야 쌀 한 말을 얻었다. 고가의 쌀에 비해 감자는 값이 헐했다. 제사나 명절 등 특별한 날을 위해 쌀은 아끼고 대신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집들이 많았다.

강낭콩을 넣어 개떡처럼 만든 감자붕생이, 수제비와 비슷한 즘떡, 감자를 썩혀 까맣게 만든 감자떡. 감자가 지겨웠던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개발했다. 밥상에 올려진 삶은 감자는 별식이 아닌 주식이었다. 밥을 할 때도 감자를 넣었다. 쌀을 씻어 안치고 하얗게 깎은 감자를 수북이 넣었다. (쌀이 귀했기에) 밥이라기보다 감자에 밥풀이 묻어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것을 감자밥이라 불렀다.

이듬해 햇감자가 날 때까지 감자 비축은 필수였다. 늦가을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볏짚을 깐 다음 감자를 넣고 구덩이를 덮었다. 싹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저장한 감자는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매 끼니로 쓰였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밥에는 감자보다 쌀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처럼 감자는 강원도 사람들에게 애환과 애틋한 향수로 남아있다.

구운 감자에 담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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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향기. 강원도 사람들은 안다 ⓒ 신광태


내 나이 13살 되던 해 어느 여름날, 또래의 아이들은 양은솥과 (고기잡이 그물인) 반도를 준비했다. (물가에서 즐기는) 철엽은 솥과 반도면 족했다. 파와 마늘, 고추는 남의 밭에서 구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자도 삶아 먹자."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 맛은 별미였다. 친구 중 한 녀석이 기막힌 제안을 했다. 매운탕 외에 감자도 삶자는 거다. 서리 대상은 건너편 비탈 밭으로 결정했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4명의 특공대를 조직한 우리 일당은 감자밭으로 침투했다. 각자 웃옷을 묶어 캐온 감자를 한 곳에 모았다. 그런데 너무 많은 감자를 캐온 거다. 6명의 아이들이 실컷 먹고도 남았다. 증거인멸을 위해 남은 감자를 숲속에 버렸다.

"작은 아버지가 알아 버렸어."

며칠 지난 어느 날, 일당 중 한 녀석이 '큰일 났다'며 공범들을 소집했다. 녀석은 작은 아버지 밭인 줄 모르고 감자서리에 가담했던 거다. 찾아가 용서를 빌기로 했다.

"이 녀석들, 감자가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밭을 밟아 망가뜨리면 어쩌라는 거야?"

친구 작은 아버님은 감자 값을 물어내라는 말도, 부모님께 알린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밭을 못 쓰게 만든 것에 대한 책망 뒤에 구운 감자를 하나씩 나눠줬다.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감자서리를 하지 않았다.

50살이 훌쩍 넘은 나이, 감자만 보면 그때 일이 떠오른다. 작은 아버지가 보상을 요구했거나 심하게 나무랐다면 까맣게 잊혀졌을지 모를 추억이다. 구운 감자 하나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감자란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한 뉴스는 '최근 감자가 잘 팔리지만, 도시 마트엔 귀한 현상'을 보도했다. 감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눈군가 사재기를 했을 리도 만무다. 답을 포테이토칩에서 찾았다. 농민들이 생산한 감자가 시장으로 출하되기 전, 과자 공장으로 몰린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감자란 한낱 포테이토칩으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강원도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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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닮은 두 남자에게 강원도의 미래를 기대한다. ⓒ 신광태


감자바위는 이제 더 이상 '강원도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다. 고향 같은 넉넉함이다. 오랜 친구 같은 친근감이다.

강원도 두 남자가 감자 예찬론을 폈다. 감자 원정대를 만들어 전국투어도 나섰다. 공무원들의 지역에 대한 애향심도 강조했다. (관련기사 : 오지지역 공무원 정원미달 현상, 이런 이유가 있었네)

그런 면에서 강원도지사와 화천군수는 닮았다. 감자 같은 수수함 외에 지역사랑이 남다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사 최문순은 새정치민주연합이고, 화천군수 최문순은 새누리당이란 논리다. 그러나 강원도 사람들은 이들의 정치색엔 관심 없다. 뚝심있는 추진력과 감자 같은 훈훈함으로 강원도 발전을 앞당기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강원도 #최문순 화천군수 #최문순 강원도지사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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