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고공 농성장에 올라가 취재를 할 계획이었지만, 광고탑 소유회사가 취재를 가로막아 전화 인터뷰만 해야 했다.
이민선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에 설치된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규협, 최정명씨는 지난 6월 11일 광고탑을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광고탑은 가로 1.8m, 세로 20m 크기로 지상에서 70m 높이에 설치돼 있다.
고공 농성자들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사내하청 소속 조합원이다. 이들이 난간조차 없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광고판 위에 올라가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은 기아자동차가 '비정규직 보호법'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고공 농성자들이 "기아자동차가 법을 지켜야 한다"며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들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지난 9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고공농성 44일째인 지난 24일, 이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처음 계획은 광고판 위로 올라가 대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광고탑 소유자인 M애드넷에서 '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현장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화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광고회사와 경찰, 건물 관리 측은 기자들이 광고탑이 설치된 옥상에 올라가는 것조차 막았다. 옥상 입구는 의경 2명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다.
고공 농성자들을 현장 지원하는 최종원 고공농성 상황실장은 "광고회사에서 인터뷰를 막을 이유가 없는데 막고 있다"며 "경찰과 광고회사, 기아자동차에서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최 실장은 "우리의 요구는 있는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라며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25일부터 물과 식사 반입 사실상 중단 현재, 이들의 처지는 무척 답답하다. M애드넷이 이들을 상대로 6억7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법원에서 M에드넷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성하면서 하루에 100만 원씩 M애드넷에 지급해야 한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M에드넷은 지난 25일부터 식사 반입조차 가족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또 조합원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농성현장 출입도 사전 허가를 요구하는 등 농성자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25일부터 식사와 음료 반입마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생계 문제로 인해 가족들이 농성장에 도저히 올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26일 기자와 통화에서 "가족들에게 매 끼니 식사 전달을 책임지라는 것은, 사실상 굶어 죽으라는 으름장이다. 너무나 잔인한 보복"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성현장에서 만난 M애드넷 관계자들은 "농성자들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서 황제농성을 하고 있다"며 "죽을 각오로 올라갔으면 더 위험한 데로 가는 게 맞다. 여기만큼 편한 데가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인권위 건물관리회사 관계자는 "잘 먹어서 그런지 (농성자들이) 살이 쪘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고공 농성자들이 편하게 농성하는 건 아니다. 한규협씨는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 좁아서 운신을 못 하니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한씨는 "난간도 없고 좁다 보니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떨어질까 불안해) 자다가 깜짝깜짝 깬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살이 찐 것이 아니라 고공농성 40여 일이 지나면서 심하게 부은 것"이라며 "심한 부종이 걱정돼 의사가 올라가서 피를 뽑고 건강검진을 했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몽구 회장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