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시골에서 어린이책 읽기] 최형미,김희영 <음악 혁명가 한형석>

등록 2015.08.04 10:17수정 2015.08.04 10:17
0
원고료로 응원
부산 서구에서는 오는 13일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토크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한형석(1910∼1996)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부산 부민동에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칠 뿐 아니라 아동극을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먼구름'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서 썼고,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부르던 군가를 지었으며, 중국에서 <아리랑>이라는 가극을 짓고 무대에 올려서 우리 겨레 아픔을 달래 주었다고 해요. 제국주의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광복군으로 뛰기도 했다지요. 항일독립운동을 문화로 예술로 하셨다고 합니다.

1996년에 숨을 거둘 무렵 한형석님을 국립묘지에 모시겠다고 했으나, 한형석님은 '건국 매국노'가 묻힌 곳에 함께 누울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고 합니다. '건국 매국노'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권력에 빌붙어야 한 사람이 많았을까요? 그리고 해방 뒤에 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친 사람은 드물었으며, 올바른 평화와 독립과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바라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


 겉그림
겉그림상수리
인공 호수 속에는 돌을 깎아 만든 엄청나게 큰 배도 있었어요. "저것들을 사람들이 다 만들었다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엄청난 흙더미를 쌓아 올려서 만든 산 위에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흙과 돌을 지게에 지고 저 산을 올랐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구나." 형식이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웅장하고 화려한 산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슬프고 끔찍해 보였어요. (41∼42쪽)

최형미님이 글을 쓰고 김희영님이 그림을 그린 <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 2015)을 읽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나 사회에나 사람들한테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할 만한 한형석님을 어린이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빚은 예쁜 책입니다.

한형석님을 낳은 아버지는 '의술로 펼치는 독립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할 적에 모든 사람이 총을 들 수는 없다고, 다친 사람을 다스리고 고쳐 주는 일을 할 사람이 있다고 여겨서 의술을 펼친 아버님이요, 의술로 번 돈을 조용히 독립군 자금으로 대었다고 합니다. 한형석 님도 아버지 길을 이어서 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의사가 되는 공부가 한형석님한테는 도무지 안 맞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한참 갈팡질팡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무렵, 임정요인이자 광복군을 여는 일에 이바지한 조성환님이 도움말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한형석님더러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물을 적에 한형석님은 서슴지 않고 '음악'을 잘 한다고 말했고, 이에 조성환님은 그러면 '예술 구국'을 하라고 이야기했다지요.

"대학은 만주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가거라. 어려운 때일수록 의술이 꼭 필요하다.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형석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겼어요. (47∼48쪽)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형석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어요. "음악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조성환 선생은 무릎을 치며 말했어요. "그거 아주 좋구나. 넌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구국을 하거라." (57쪽)

 속그림
속그림상수리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광복군이 쓰는 총을 만들려고 쇠를 달구는 일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광복군이 입는 옷을 지으려고 바느질을 하는 이들도 독립운동가입니다. 독립운동에 힘쓰는 이들이 먹을 밥을 지으려고 땅을 부치는 모든 농사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정치 일꾼이 되어야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삶자리를 지킬 수 있는 씩씩하고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된다면, 어느 곳에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마을을 지키며 나 스스로를 지키는 튼튼한 사람으로 섭니다.

학교를 일으키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남새를 파는 아지매와 할매도 똑같이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총칼을 앞세워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해서 고개를 떨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고 올바른 넋으로 아름다운 손길을 나누며 어깨동무할 적에는 어느 누구도 이 땅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님과도 소식이 닿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자 형석이는 창작 활동에 더 열심히 매달렸어요. 1937년 6월, 여름방학을 맞은 형석이는 첫 종합 예술 작품이면서 중국 최초의 가무극인 <리나>를 아동극장에서 발표하게 되어썽요. <리나>는 나라 잃은 폴란드의 음악가가 자신의 딸 리나를 데리고 연주 활동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이야기예요. (67쪽)

 속그림
속그림상수리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으면서 '구국'이나 '독립'을 이루려고 애쓰는 몸짓과 넋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곰곰이 따지면, 군관학교를 세우려고 벽돌을 나르던 사람들 손길도 모두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발치에서 마음으로 힘을 북돋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칼을 든 제국주의는 서른여섯 해에 이르도록 군홧발로 이 땅을 짓눌렀지만, 이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권력에 빌붙는 길로 접어들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여느 사람들은 꿋꿋하게 섰습니다. 마치 풀처럼 서고, 마치 나무처럼 섭니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뽑히고 뽑혀도 다시 싹을 틔워서 자라는 풀처럼 섰어요. 베이고 베여도 다시 가지를 내놓고, 아예 뿌리를 뽑히면 어린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아기나무를 키우는 어미나무처럼, 이 땅 수수한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게 섰습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목숨도 빼앗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빼앗고, 마음도 병들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쟁 중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는 예술은 무척 중요해요. (79쪽)

(1940년 5월에) <아리랑>은 모두 우리말로 공연되었지만 중국 사람들의 반응도 대단했어요. <아리랑>은 실험극장에서 열흘 동안 공연을 마친 뒤 중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그 덕분에 중국 사람들에게도 <아리랑>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어요. 또한 공연으로 번 돈은 독립군의 겨울옷을 마련하는 데 쓰였어요. (88쪽)

전쟁이란 무엇이고, 침략이나 식민지란 무엇이며, 다툼이나 싸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기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서로 이웃이 되지 않으니 침략이나 식민지를 일삼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다툼이나 싸움을 벌입니다.

우리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전쟁이라고 하는 바보짓'이 다시 이 땅에 들어서지 않도록 슬기를 모으고 힘을 모으려는 마음을 키울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겨레 사이에 너와 내가 '적군'이 되는 짓부터 내려놓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전쟁무기를 쓸어 없앨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할 때에 비로소 평화를 이루리라 느낍니다.

평화가 이 땅에 깃들어야 비로소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함께 이루는 길로 나아가려 할 적에, 독재라든지 막개발이라든지 차별이라든지 불평등 같은 씁쓸한 것들을 쓸어낼 수 있어요.

 속그림
속그림상수리

형석이의 바람과는 달리 연합국이 들어오면서 극장은 미군 전용 위안 극장으로 쓰였어요. 형석이는 단순한 극장 관리자가 되고 말았어요. 형석이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의 새로운 꿈이 물거품이 되어서가 아니에요. 그토록 힘들게 되찾은 조국인데 동족끼리 총을 겨누게 된 현실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에요. (104쪽)

당시 형석이는 부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월급을 받았는데 자유아동극장을 (무료 공연으로) 운영하느라 늘 빚에 허덕였어요. 하지만 극장 공연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야학원까지 운영했어요. 형석이는 자유아동극장에서 낮에는 공연을 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108쪽)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는 어린이들이 가슴속에 고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이 책을 어린이한테 읽힐 어른들도 가슴속에 맑은 노래를 고운 씨앗으로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 한 가락으로 부르는 독립과 평화를 함께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우리가 다 함께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고 민주와 평등과 통일로도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음악 혁명가 한형석
최형미 글
김희영 그림
상수리 펴냄, 2015.7.15.
12000원

음악 혁명가 한형석 - 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최형미 지음, 김희영 그림,
상수리, 2015


#음악 혁명가 한형석 #한형석 #독립운동가 #최형미 #김희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AD

AD

AD

인기기사

  1. 1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2. 2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3. 3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4. 4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5. 5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