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최대의 경제사기극, 세대전쟁> 표지.
21세기 북스
최근 '그리스 사태'는 세대 갈등이 국가 경제에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과도한 복지 지출 때문에 그리스 경제가 파탄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리스의 공공복지 지출은 21.3%로 28.4%인 프랑스나 27.3%인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유독 노인복지 지출 비중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리스 일반 노동자들은 소득의 20~26.6%에 해당하는 연금보험료를 35년간 낼 경우, 퇴직 전 평균 소득의 70~80%를 노후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은퇴한 노인들의 천국이다.
문제는 노후연금을 젊은 세대의 부를 미리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복지에 국가재정을 집중하다보니 그리스 전체 복지 지출 중 노인연금과 노년층 의료비 지출이 무려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는 GDP의 14%가 넘는 수준으로 유럽 최고다.
반면 청년과 가족복지를 위한 지출은 GDP의 3.5%에 불과해 유럽 국가들 중 최하위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청년실업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 대한 그리스의 국가적 지원은 매우 미약했다. 국가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그리스 청년계층은 경제위기 속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열악한 청년 복지 투자로 청년들의 경제적 기반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에 따라 노인복지를 위한 세수 확보도 줄어들어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이 때문에 노인복지마저 축소되는 악순환(193쪽)에 빠져들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청년을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매달렸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본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에 천문학적 액수의 국가재정을 쏟아붓자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본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빚으로 조달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의 재정적자를 가속화시킨 주범이 건설경기 부양책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고령화를 위한 복지 지출이 재정 적자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은 평생고용이 무너진 데다 신규채용이 줄어들면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본의 가장 시급한 투자는 건설경기가 아니라 청년들에게 이루어졌어야 했다. 단기적인 건설경기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노인복지 재정 지출은 더욱 확대됐다.
지속가능한 노인복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재원을 감당할 수 있는 청년들의 인구와 그 소득수준이다. 청년들에게 불리한 경제체제와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그들의 소득기반이 흔들리면 나라 경제 전체가 급속도로 위축된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의 현실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미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일 정부가 증세를 하지 않고 노인복지 지출만 늘려 놓으면 국가 부채 급등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는 현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래의 성장동력인 청년들의 복지 수준을 크게 후퇴시켜왔다. 그러나 미래 경제를 위한 가장 강력한 투자인 청년복지 정책을 포기한다면, 한국 경제는 일본의 20년 장기불황보다도 더 어두운 시절을 보내게 될 것"(44쪽)이라고 내다봤다.
노인복지와 청년복지 불균형 해소해야그리스, 일본과 정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은 스웨덴은 일본과는 정반대의 해법으로 경기회복은 물론 부동산 시장의 방향까지 바꾸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자 스웨덴 정부는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주요 은행을 국유화하고 은행 대주주들에게 부실 대출의 책임을 물어 금융시스템을 안정화시켰다. 특히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청년 세대를 위한 실업 대책 및 각종 복지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실업자들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원하고 적극적인 구직 알선과 재교육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강화해 1991년 GDP의 1%가 넘는 재정을 투입해 공공보육 시설을 확대하고 보편적 무상보육 체제를 확립했다.
스웨덴은 1998년 청년세대에게 매우 불리한 국민연금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해 청년층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국민적 합의하에 기성세대도 자신이 낸 만큼 받아가는 체제로 국민연금을 개혁하고, 대신 연금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세금으로 일정액의 노후를 보장하는 '최소보장연금'을 도입해 노인빈곤 문제에도 대비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논란이 일어났었는데, 스웨덴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저자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국민연금에는 청년세대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의 주머니를 털어 베이비붐 세대의 연금을 채우는 세대간 불공정 구조가 숨어 있다"며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현 세대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비판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노인을 위한 1인당 복지 지출은 아동복지 지출의 40배가 넘는다. 더구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기초연금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된다면 2050년대 이후 한국의 미래세대는 기성세대의 노후를 위해 그들 소득의 최고 3분의 1까지 내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연금에서 세대간 불평등이 계속된다면 베이비부머와 미래세대 모두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미래세대는 기성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과 공공복지 재원을 감당하느라 지금보다 더욱 힘든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미래세대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 내수시장이 위축되어 투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이는 경제성장률까지 끌어내려 결국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복지재원 마련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151쪽).결국 가장 큰 문제는 청년층과 고령층의 복지 불균형이다. 청년세대의 어깨에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이들을 위한 복지 투자는 형편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파업을 감행하는 것으로 기성세대에 맞서며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복지정책에서 세대간 형평성을 맞추려면 청년복지를 노인복지 수준으로 상향하든지, 노인복지를 청년복지 수준으로 깎아야 한다. 후자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은 노인빈곤과 노인자살률도 세계 최고인 나라다. 오히려 사각지대 해소 등 노인 복지 분야에서도 손 볼 부분이 많다.
답은 청년복지를 늘려서 복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한다면 청년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하는 것처럼 세대갈등을 부추겨 세대전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국의 미래는 일본인가, 스웨덴인가.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지음,
21세기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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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조장하는 '세대전쟁', 최악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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