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수가 아닐까요?
전지영 제공
그렇게 함께 할 동료까지 구했지만 사실 이 계획의 핵심 문제는 '돈'이었다. 다른 부분들은 열정과 의지로 가능하다고 해도 현실적인 '돈'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벌인 일이니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오마이북> 출판사에서 진행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공모전이었다.
일주일 후면 중간고사. 공모전 마감이 중간고사 기간에 겹쳐 있었지만 미룰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을 새가며 책을 읽는데, 읽으면서 참 많이 놀랐다. 어떻게 이 책의 핵심 내용과, 내가 계획한 이벤트의 취지가 이렇게 맞을 수 있는지. 함께 행복하자는 내용의 이 책을 읽으며 '진짜 내가 여기서 상금을 받게 되면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다 누군가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밤을 새며 새벽에 비몽사몽하며 마감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제출한 글이 당선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저 진심이 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모전 결과발표가 있는 날, 나는 친구와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최우수 상이었다. 상금은 30만 원.
너무 놀라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도서관 의자에서 폴짝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장 교실로 뛰어가 함께하기로 한 친구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됐어! 수박이 하늘에서 넝쿨째 굴러왔어!", 사실상 우리의 행복 나눔 프로젝트는 결과발표가 있던 이 날부터 시작되었다.
빙수 : 뜻밖의 여정이쯤 와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이 일은 사실 내가 했지만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기획부터, 준비, 실행까지 모두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많은 도움들의 첫 시작이 바로 3학년 사회과목을 맡고 계신 이성길 선생님이다.
돈은 구했지만 어디서, 몇 명에게, 얼마나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지원군을 찾아 나섰다. 이런 일에 긍정적이고, 또 가능하면 안면이 있고, 이런 쪽에 경험이 풍부할만한 분. 교목 상담실에 계신 이성길 선생님이 딱 떠올랐다. 매해 담임 반 학생들과 단합으로 빙수를 해먹었다는 말씀과, 홈베이킹이 취미라고 하셨던 수업시간 말씀이 생각나서 친구와 나는 곧장 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밝히고 조심스레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를 여쭤 보았는데 선생님께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계획의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첫째, 수박을 자르고, 손질하는 것은 누가 언제 다 하겠는가. 둘째, 수박을 다 어디다 보관하며 언제 어디서 사오겠는가. 셋째, 전교생이 먹기엔 비용과 시간이 모자라지 않겠는가.
이쯤 다다르자 우리는 '전교생 수박화채'를 깨끗이 포기했다. 대신 선생님의 추천으로 더위에 지친 3학년 친구들을 위한 빙수 파티를 하게 되었다. 빙수기기와 장소도 선생님께서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심으로서 우리의 행복 나눔 프로젝트는 수박화채에서 빙수로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안 돼, 아이야, 나는 허락 못한다"빙수 나눔 날짜는 어쩌다보니 딱 수능 D-100이 되는 8월 4일로 정해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빙수파티 딱 일주일 전이 됐다. 빙수 재료를 사러 나가는 것은 하루 전인 8월 3일로 정했고, 얼음 값을 줄이기 위한 이성길 선생님의 부탁으로 각 교무실의 냉장고는 얼음으로 꽉꽉 채워졌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며 빙수 프로젝트 허락을 받기 위해 3학년 담당 부장 선생님이신 오병훈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께 우리의 계획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구하는데 당연히 허락해주실 거라고 믿었던 선생님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안 돼, 아이야, 나는 허락 못한다." 나와 친구는 너무 놀라 서로 눈을 마주치다 버벅거리며 이유를 여쭈었다. 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은 "내가 이 이야길 들었는데 어떻게 허락하겠니? 공모전에서 받은 그 돈은 다 쓰지 말고 얼마 정도는 너를 위해 쓰렴, 얼음은 선생님이 준비해 줄게. 이 정도는 내게 양보해 줄 수 있니?"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친구들도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얼음이라면 더 기쁘게 먹을 거예요"라고 대답하며 선생님의 눈을 바라봤을 때 왠지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 보였던 건 우리의 착각이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이성길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던 일은 오병훈 선생님 담당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세상에서 제일 짠 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