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골목길·마당, 현대건축이 앗아간 것들

[리뷰] 도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등록 2015.08.18 16:52수정 2015.08.18 21:37
0
원고료로 응원
도시를 인문학적으로 본다고?

처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집어들은 건 순전히 그 부제 때문이었다.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말. 도대체 도시를 보는 인문적 시선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사실 난 요즘 가장 '핫'한 단어 중의 하나인 '인문학'에 불만이 많다. 비록 대학 때 인문학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지만, 지금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는 인문학은 너무 많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반응이 뜨겁지만 동시에 보잘것없는 인문학. 많은 사람이 인문학을 찾지만 정작 인문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컨대 서점에 가면 인문학에 관한 책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 강의 역시 인문학에 관한 것 투성이지만, 정작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에서는 이에 대한 수요가 적다. 학생들은 오로지 취직이 잘 되는 학과에 몰리고, 대학에서는 인문학과 관련된 학과를 철폐하고자 한다. 오죽하면 작금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부르겠는가.

또한, 요즘 사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자. 어디 이게 인문학 붐이 일고 있는 사회인가. 인문학(人文學)이란 말 그대로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인간에 관해 관심이 적다. 오로지 돈만이 목적이다. 그러니 역사는 퇴보하고 사회적 분위기는 천박할 수밖에.

무엇 때문일까? 왜 우리는 끊임없이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인문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사회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문학을 찾는 이유 자체가 불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인문학이 뜬 이유는 유명한 몇몇 외국 기업들이 인문학을 강조하면서부터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화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각 개인의 창의성을 강조하며 이를 키우는 방법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이상한 형태로 왜곡되어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인문학이 취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보다는 인문학 자체에 대한 단순암기가 하나의 틀로 자리 잡았다. 인문학을 통해 상상력을 키웠던 스티브 잡스를 배우라며, 오히려 그 상상력에 제한을 두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문학' 꼬리표를 달고 있는 책들은 우선 백안시부터 하고 본다. 혹여 책의 저자가 인문학이 유행하는 분위기를 통해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출판사가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통해 마케팅을 하는 건 아닌지 등을 의심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시를 주제로 어느 건축학자가 '인문적 시선'을 이야기하고 나섰다. 과연 그가 이야기하는 인문적 시선은 어떤 것일까?

인문학의 보고, 건축 그리고 도시

a  도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을유문화사

건축물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시대의 총체였다. 지금이야 건축학이 수많은 과목 중 하나일 뿐이고, 어떤 건축물이든 뚝딱뚝딱 금세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건축물은 달랐다.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과 노동력 등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명소에 가까운 건축물을 짓다가 멸망했던 국가가 부지기수 아니던가.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서문 16쪽 중에서

따라서 저자는 그 건축물들을 인문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것인데, 건축물들은 그것들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될 수밖에 없는 시공간적인 한계를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하는지,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무슨 생각을 담을지 등. 건축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문학적인 텍스트이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람이다. 그리고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건축물의 이러한 특징은 랜드마크적인 건축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인 특색이 반영된 일반적인 건축물들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DNA를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이해하면 그 배경에 있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서문 16쪽 중에서

저자는 시대를 읽는 데 있어서 단순히 건축물만 보지 않는다. 더 나아가 도시를 살펴본다. 결국 도시는 건축물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과거만큼 건축물이 시대의 첨단에 서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 건축물이 서 있는 도시는 해당 시대의 자화상이다. 최천식 교수는 이런 의미로 추천사에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고 적어 놓았다. 과연 저자가 인문적 시선으로 바라본 건축은, 그리고 현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현대 건축이 보여주는 시대정신

저자는 현대 건축을 이야기하며 우선 그 무미건조함을 지적한다. 비록 기술의 발전으로 건축물의 형태도 복잡해지고 재료들도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 건축물보다 덜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는 결국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든다. 산토리니 섬의 건축물들은 그 기술적 한계로 인해 재료는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지형지물에 맞춰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춤으로써 다양성을 얻었다는 것. 주위 환경과 비교하여 자연스러운 다양성의 합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건축 형태나 재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현대의 건축물들을 보자. 그것들은 인간이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지어진 만큼 주위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건축물들은 과거와 비교하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성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

예컨대 무자비한 평탄화 작업 이후 아주 단순한 모양으로 대량생산되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보자. 이런 건축물은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형태로 나름의 멋을 내는 서울 청담동의 건축물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건물 모두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따지면서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논리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자연과 교류하던 기존의 철학에서 벗어나 있다.

저자는 같은 맥락으로 현대 건축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을 열거한다. 우리는 공원을 얻는 대신 자연을 잃었으며,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얻는 대신 이웃과 함께 쓰던 골목길을 잃었다. 현대인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TV를 켜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의 변화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당이 없어진 이상 그 공허함을 우리는 TV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서울의 강남보다는 강북의 거리를 더 걷고 싶어 한다. 강북이 강남보다 더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는 결국 그곳에 층층이 퇴적된 삶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북은 자본의 논리로 지어진 강남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시공간의 제약에 맞춰 공진화한 결과로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강북을 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좋은 건축물은 포도주와 같다. 같은 종자의 포도와 같은 밭이라고 하더라도 그해의 기후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만들어지며,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포도를 담그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서 세상에 단 한 종류밖에 없는 포도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본문 148쪽 중에서

요컨대 저자는 요즘 지어지는 우리 시대의 건축물을 바라보며 많은 걱정을 한다. 결국 그것들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 온 역사적 궤적, 즉 근본적인 철학과 인문적인 고민 없이 오로지 급격한 산업화와 양적인 경제성장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해왔던 우리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시 건축물을 예로 들며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지어야 할 건축물은, 도시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바탕으로 그것들을 쌓아 올려야 할까?

이외에도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사회적 의문을 건축학도의 인문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왜 교회보다는 절이 들어가기 편한지, 우리 사회에 왜 카페와 모텔이 유난히 많을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지 등을 말이다. 인문학이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라는 데 대해 찬성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지음 / (주)을유문화사 펴냄 / 2015.03.25. / 1만5000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2015


#건축 #도시 #인문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