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 믿었다간 발목 나가"
대북전단 살포 시도 활극

[현장]광복 70주년 하루 앞둔 경기도 파주 임진각 앞

등록 2015.08.14 15:56수정 2015.08.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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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단체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14일 오전 경기도 연천과 파주 인근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 20만 장을 대형 비닐풍선 10개에 매달아 살포했다고 밝혔다. ⓒ 박상학


#. 14일 오전 10시 30분께 경기도 파주 임진각 1km앞 도로 위.


탈북자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의 발이 묶였다. 오전 11시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50만장의 대북전단을 살포하려 했으나 경찰이 그를 막아섰다. 박 대표는 임진각 입구 도로에서 경찰 병력에 둘러싸였다. 그러자 도로 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였다.

"내가 경찰이 저지할 줄 알고, 두 개조로 나눴습니다. 또 다른 일행이 새벽 5시부터 준비해 오전 10시부터 10시 30분 사이 (북한 접경지역인) 파주와 연천 일대에서 전단 20만장을 애드벌룬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애드벌룬을 띄운 사진을 보여줬다. 박 대표의 주장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오늘은 바람이 약해서 전단이 북한으로 넘어가기 어렵다"라며 "전단 살포 장소와 시기 등 박 대표의 주장에 대해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 한 시간 뒤 같은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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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 살포 무산에 항의하는 보수단체 회원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를 비롯한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소속 회원들이 14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인근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경찰에 의해 저지되자, 이에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동족이 어딨어? 동족을 믿었다간 발목 나갑니다."

마이크를 든 최우원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최 대표를 지켜보던 60, 70대 노인 30여명은 태극기를 흔들며 "옳소"라고 함성을 질렀다. 일부는 "빨갱이는 물러가라", "김정은도 물러가라"고도 외쳤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국방부는 북괴의 지뢰 테러에 무자비한 보복으로 응징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최 대표는 "김정은이가 놓은 지뢰에 우리 병사의 발목이 끔찍하게 절단 당했다"면서 "지뢰 테러로 애국시민들이 북괴의 멸망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 앞으로 신문과 소형 현수막이 바닥에 깔렸다. 신문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기사가 담겨있었다.

연이은 대북전단 살포 활극... 윽박·고성·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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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경찰 저지 고려해 이미 대북전단 날려보냈다" 탈북자단체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경찰에 의해 저지되자, 소속 회원들이 이미 연천과 파주 인근에서 대북전단 20만 장을 대형 비닐풍선 10개에 매달아 살포했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앞에서는 탈북자 단체와 극우 보수단체가 잇따라 전단 살포를 시도하는 활극을 펼쳤다. 경찰은 전단 살포가 국민 안전에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전단 살포를 저지했다. 이들의 막무가내 윽박지르기와 떼쓰기로 임진각 앞 도로는 한때 경찰과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단 살포의 명분은 DMZ 지뢰 폭발 사고였다. 지난 4일 경기도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육군 모부대 소속 장병들이 수색작전을 하던 중 폭발물이 터져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쳤다. 김아무개(23) 하사는 오른쪽 발목이 절단됐고 하아무개(21) 하사는 오른쪽 다리 무릎 위와 왼쪽 다리 무릎 아래쪽이 절단됐다. 지난 10일, 한미합동조사단은 이 지뢰가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라고 발표했다(관련기사: DMZ 경계 왜 뚫렸나?국방부 "기상이 좋지 않아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시도해왔다. 앞서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은 지난달 27일 같은 장소에서 살포를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지난해 10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전단을 보내자 북한군은 14.5mm로 추정되는 고사총탄을 쏘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반대 방침을 분명히 해왔다. 통일부는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정부 당국의 대북 심리전과 민간의 행위는 다르다"며 "군 당국의 대북 심리전 재개에도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한 제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경찰은 5개 중대 500여 명의 병력을 임진각 주변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 벽에 막히자... "너희 김정은이 지령 받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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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경찰 왜 가로막어"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소속 회원들이 14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인근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경찰에 의해 저지되자, 이에 항의하며 경찰에게 대북전단을 뿌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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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실은 차량 가로막는 경찰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회원들이 14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인근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위해 1t 화물차량에 수소가스통과 전단, 대형 비닐풍선을 싣고 망배단으로 향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임진각에서의 전달 살포가 저지되자 이들은 경찰을 윽박질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께 임진각 입구 1km 앞 경찰 바리케이드 인근에 나타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우리 꽃다운 청춘들이 김정은이의 만행으로 다리가 잘렸다"면서 "김정은이의 야만적인 범죄를 북한 동포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전단 살포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질문에는 "전단이 뭐가 나쁘냐, 전단에 폭탄을 넣었냐, 총알을 넣었냐"면서 "내 아들의 발목을 잘렸으면 이렇게 막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 뒤인 11시 30분께 관광버스를 타고 나타난 최우원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 경찰을 규탄한 최 대표는 살포 저지의 이유가 통일부 내에 종북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주장도 내놨다.

최 대표는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상의 권리"라면서 "통일부 안에 종북세력 때문에 지뢰테러에 분노하는 애국시민의 염원을 실현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대 교수인 최 대표는 자신의 전공 수업에서 '노무현은 가짜 대통령 임을 증명하라'는 과제 요구해 논란이 된 바 있다(관련기사 : 부산대 교수, '노무현은 가짜 대통령' 과제 요구).

최 대표와 일행은 기자회견이 끝나자 경찰 벽 앞에서 임진각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너희들은 대한민국 경찰 아니다", "김정은이 편하게 해줄 거냐, 길을 비켜라", "경찰도 다 종북 빨갱이들이다", "너희들 북에서 지령 받았냐"라고 고성을 질렀다. 건장한 경찰 병력에 가로막히자 이들은 곧바로 타고온 버스에 올랐다.

한편,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전날 탈북자단체가 전단을 살포하면 조준 격파사격을 강행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날 오후3시 현재 북한군측의 특이한 동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북 전단 #삐라 #목함지뢰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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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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