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중앙에 놓여있는 벤치들.
황보름
오전 10시 정각에 문을 나섰다. 며칠 있었다고 이제 종달리의 좁은 골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 집 앞에 붙은 주소지 표시 덕택에 길을 잃어도 쉽게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숫자로 된 주소를 보며 지도 어플로 길을 찾았다. '천천히 걷자'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아도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느렸다. 느리게 느리게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다.
제주는 좋으나 제주 개는 좀...제주에 와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개'다. 개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많은 개들이 너무 무섭게 짖는다. 아무 생각 없이 골목길에 들어섰다 공격적으로 짖어대는 개에 놀라 뒷걸음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른 골목에 들어서면 또 다른 개가 나를 째려보며 으르렁대는 식이다.
언젠가는 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개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개가 엉덩이에서 약 1인치 떨어진 지점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이빨을 드러내며 목청껏 짖어대는 게 아닌가. '악' 소리를 내지도 못할 만큼 놀랐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한동안 짖는 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눈을 꼭 감고 빠른 걸음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어디 그때뿐일까. 전날도 성산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로 걸어가는 도중 개를 만났다. 해안가를 걷는데 저기 멀리 30m 전방에서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개가 목표물로 삼은 것이 나란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악악악" 소리를 질러대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개를 기다렸다. 개는 내 앞에 서더니 역시나 미친 듯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초가, 아니 10년이 흘렀을까. 개 주인이란 사람이 오더니 여유롭게 개를 자기 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라는 게 "그렇게 자극하면 안 돼요"였다. 공포에 질린 건 나인데 개를 자극하지 말라니. 살면서 처음으로 주먹이 올라갈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개가 무서워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제주 여행 내내 개가 물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다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