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꼴찌' 우리 딸 취업 소식에 '으쓱'

[지원이의 선택 ①] 수능 대신 사회생활 택한 19살

등록 2015.09.06 12:03수정 2015.09.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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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를 넘어선 n포의 시대. 여기 포기 대신 선택을 하는 아이, 열아홉살 지원이가 있습니다. 수능대신 취업을 선택한, 제 딸 지원이의 다이내믹한 성장과 독특한 선택의 과정을 한해한해 시간의 역순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며칠 전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 지원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나 수능 칠까?"

뜬금없이 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왜?"

답이 오기까지 10여 분,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긴장한 것이 무색하도록 심플한 딸의 답은 이것이었다.

"수험표 있으면 혜택이 많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응시료가 더 들겠다. 그냥 안 칠래요."

디자인특성화고 3학년인 지원이는 2학기 개학과 함께 등교 대신 출근을 한다. 학교로 취업 의뢰가 들어온 광고 디자인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여름 방학 때 본 면접에서 최종 합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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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디자인회사에 취업하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딸 지원이 ⓒ 최경숙


지원이는 다재다능한 아이다. 19살 인생에 지리산 산골, 지방 소도시, 서울(무려 목동), 경기도 신도시를 넘나드는 궤적을 거치면서도 친구들을 잘도 사귀는 재능을 가졌다. 블로거 활동으로 하루 4만 명이란 방문기록을 찍었을 정도로 사람 모으는 재주도 있다. 운동회 응원 단장을 할 정도로 흥도 있다. 학교 밴드의 보컬로 무대에서 교우들의 정신줄을 훔칠 정도의 노래 실력도 있다. 걸그룹 춤도 곧잘 따라하고 그림도 슥슥 잘 그린다. 그런 지원이는 공부를 못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래도 설마 못해봐야 얼마나 못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하는 말인데 액면 그대로 정말 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데없이 부활한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매년 빠짐없이 한두 개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판정을 받았다. '기초학력미달 제로플랜'의 명백한 실패의 증거가 바로 우리 딸인 셈이다.


고 1학년 첫 시험에서는 빼도 박도 못할 전교 꼴찌를 찍었다. 그렇다. 지원이는 공부를 못했고 공부만 못했다. 애당초 공부를 하고 성적을 잘 받아서 무엇인가를 할 생각은 지원이도 나도 하지 않았다. 하고많은 길 중에 하필이면 못하는 그 하나에 목을 매달고 줄서기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으니(학원은 당연히 다니지 않았다) 시간이 충분했다. 지원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곧장 하는 데 익숙했다.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고 그것을 하는 과정이 어린 시절이었다.

시골에서는 지리산 자락을 무대로 소꿉놀이를 하고 농사일도 거들었다. 전시회를 다니고, 발레와 뮤지컬 공연을 보았다. 방학 때마다 캠프와 여행으로 집을 떠나도 보고, 음악 오디션에도 참가했다. 탐색 끝에 지원이는 자신이 가진 무수한 재능 중 디자인을 진로로 잡았다. 그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디자인을 하겠다는 아이가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디자인특성화고였다.

지원이의 고등학교 3년은 즐거운 일의 연속

사실 지원이의 최하위권인 내신 성적으로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적성과 목표가 뚜렷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구제책도 있었다. 특성화고의 취업희망자 특별전형이란 제도였다. 지원이는 그 학교에 가기 위해 노력했다. 대담하게 학교에 찾아가 홍보담당 교사와 면담도 하고 간절함이 뚝뚝 흐르는 자기소개서도 엄마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썼다. 취업서약서를 쓰고 면접을 거쳐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은 그만큼 컸고 학교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지원이의 고등학교 3년은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운 일의 연속이었다. 지원이가 가진 많은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익힌 일본어였지만 홈스테이로 한국에 온 일본 교환학생에게 서울 안내를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학교 축제에서 사회를 맡아 원초적인 사투리를 구사해 축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도 했다. 학교 홍보대사를 자청하여 중학생들 앞에 서기도 했다.

물론 가장 즐거운 것은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다. 전문대학 수준, 아니 그 이상의 기능 습득이 가능한 것이 지원이가 다니는 특성화고의 교과과정이었다. 첫 시험은 꼴찌였지만 자신이 몸담은 학교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가 내리 꼴찌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1학년 2학기 때 지원이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은 우등생 남친의 눈물겨운 지도로 지원이의 성적은 일취월장했다(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 남친과 헤어졌다는 말에 정작 아쉬워한 건 나였다). 전공 교과과목 비중이 늘며 점점 상향곡선을 그리던 성적은 마침내 중위권을 유지하는 기적을 일궜다. 전교 꼴찌 지원이가 말이다.

지원이는 6시 반이 되면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강남에 위치한 회사는 집과는 꽤 먼 거리이지만 지원이는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한다. 청소도 하고 쓰레기통도 비웠지만 상사들이 절대로 하지 말라고 정색을 하고 말려 자신의 자리와 공동공간인 탕비실 청소만 소심하게 한다. 지원이는 광고팀 서포터다. 이번 기회에 광고에 대해 확실하게 배운다며 정말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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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가 디자인한 정월대보름 지역축제 캐릭터 ⓒ 최경숙


아직은 할 일이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배들이 옆에서 하나하나 가르쳐 줄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원에게 주어진 업무량은 금방 동이 난다. 지원이는 남는 시간에 인터넷 검색을 하는 대신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작업을 한다. 우연히 지원이가 작업하는 것을 본 상사가 그동안 작성한 포트폴리오 전체 파일을 보자고 하더니 디자인팀 팀장과 이런저런 품평을 하며 진지하게 본다. 상사는 디자인팀이 요청할 때 도와줄 수 있냐고 한다. 지원이는 요청이란 말 자체가 황송하다.

"아이가 고졸이라고 서러움 당할 거야", 나의 대답은...

취업하고 보름 남짓, 지원이의 하루하루는 학교에서처럼 신나고 재미있다. 사람들에게 딸이 고3이라고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말들이 있다.

"고생하시겠어요."

그러면 나는 말한다.

"아뇨, 고생 할 것 없어요. 우리 딸은 취업했어요."

그러면 대부분 눈앞의 사람들은 할 말을 잃는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10대 딸아이가 취업했다고 자랑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까운 사람들은 조심스레 말한다.

"아이가 사회 나가면 분명 고졸이라고 서러움을 당할 거야. 그때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까?"

분명 그럴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실력이 딸려서 서러움을 느끼는 것과 고졸이라는 이유 때문에 서러움을 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개인이 노력으로 극복할 문제이고 후자는 사회가 바로 잡아야 할 문제이다. 지원에게 이 문제는 고민할 거리도 아니다.

"필요하면 그때 대학 가면 돼요."

필.요.하.면.

지원이가 꿈꾸는 디자인 일을 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이 있어 공부를 하고 싶을 때 그때 학원을 다니든, 대학을 가든, 유학을 가든 하면 된다. 지원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유예기간이 없다. 정말 하고 싶은지를 살피는 탐색의 기간만 있으면 된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이미 지원이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있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이란 제도가 있다. 특성화고 졸업 후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수능을 치지 않고 고교내신과 수학의지 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있다. 지원이가 인문계고에 갔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을, 일반전형으로 가기에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대학도 갈 수 있다.

필.요.하.면. 말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취업 #고졸 #특성화고 #고졸취업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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