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는 왜 노무현 투신에 열광할까?

[누리꾼 탐구생활⑫] '충(蟲)' 윤리, 자유가 아닌 '추락'을 지향한다

등록 2015.09.10 15:56수정 2015.09.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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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게이'(일베 게시판 이용자)들에게도 자신들 나름의 '도덕'이란 게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많은 누리꾼들은 이미 일게이들은 인간이 아닌 '일베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게이들은 도리어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지탄을 향해 큰소리쳐왔다.

"무슨 말을 못 하게 한다"(기**)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게 인권입니까"(암호를*****)

올해 초 세월호 희생자들을 일베가 어묵에 빗댄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누리꾼들은 당시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필자 역시 해당 사건의 취재 과정에서 일베 누리집을 모니터링했다. 그때 필자가 경험한 진실을 조심스레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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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논란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충(蟲)' 윤리다. ⓒ 하지율


사건 초기 어묵 사진을 올렸던 일게이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됐고, 반발한 다른 일게이들은 마치 '보라는 듯이' '항의하듯' 어묵 사진들을 올려댔다. 이 소식이 누리꾼들 사이에 알려지자 '역시 저놈들은 인간이 아닌 벌레들이다'라는 세간의 인식은 굳어졌다.

그러나 대학에서 윤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좀 다른 차원에서 정신적 혼돈에 빠졌다. 벌레는 그저 꿈틀댈 뿐 뭔가를 '주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분명 이들은 '나름의' 자유를 갈구하고, 이를 실현해야 한다는 '당위'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표명했다. 그래서 아주 힘겹더라도,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게 표현의 자유라고? 이 벌ㄹ... 아니, 이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란 게 뭘까."

윤리학자들은 흔히 누군가가 자유롭다고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우선 남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의 원칙을 세우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어묵 사건 후 반년 동안 일베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전문 정보 검색 DB들에 등재된 관련 논문 들을 살폈고, 두 결과를 크로스 체킹했다. 그리고 일베에게도 원칙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칙1] 세상과 자신을 벌레로 만들라

잘 알려졌듯 일베는 조상뻘인 디씨인사이드(디씨) 게시판들 군데군데 퍼져있던 관심병·여성혐오·팩트 골룸·우경화·지역 차별·막장·패륜 등을 집약·흡수하며 독립했다. 한 누리꾼은 이를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캐릭터 '마인부우'에 빗대, "디씨가 마인부우라면 일베는 거기서 떨어져 나온 순수악 버전"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동영상)

주목할 점은, 그중에서도 일베가 디씨의 '너도나도 평등한 xx' 사상과 '친목금지' 의례를 계승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2010년 이미 예견된 '일베'의 탄생)

이때 일게이들은 일베에서는 '너도나도 벌레인 건 마찬가지'라는 식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사회적 규범들을 일베에서 내세우는 "가식적"인 "x선비"(일베의 막장스러운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도덕적 훈계를 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말)들은 오히려 조롱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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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게이들은 스스로도 '일베충'이라고 자주 부른다. 실제로 2013년 5월, 대학가 축제 무렵에 일베의 마스코트인 '베츙이'들을 봤다는 제보가 속속 등장했다. 이들은 벌레 인형을 나눠주며 일베를 홍보했는데, 이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은 학교 본부와 총학생회로부터 나가줄 것을 요청받았다고…. 한편 옆에 선비 분장을 한 사람도 눈길을 끈다. ⓒ 일베 갈무리


그래서 어묵 사건이 터졌을 때, 일베 내부에서 소수의 자정 목소리가 나오자 "선비스러운 걸 원하면 다른 데 가라"(대충청*****)" "그냥 쳐 놀다 가라"(야기분****)는 등의 목소리가 압도할 수 있었던 거다. 이들에게 일베란 순간적 기지를 발휘해 '개드립'(저급성을 상징하는 '개'와 애드리브를 뜻하는 '드립'의 합성어)이나 치며 노는 "놀이터"일 뿐이다.

이 '놀이터'에서, 일상의 엄숙한 소재들이 유입되면 곧 가벼운 것으로 뒤틀리고 웃음거리로 전도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가족이 희생자 관 앞에서 오열하는 사진에, 택배 송장을 합성한 뒤 "아이고 우리 아들 택배 왔다"며 조롱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냉소와 혐오이며, 일베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건 인간에 대한 낮은 애정 수준으로 개드립과 조롱을 주고받는 것뿐이다. 또한 그것을 자연스러운 동시에 인간답고 진정성 있다고 느낀다.

이제 이 진정성은 세상에 '실현되어야' 한다. 세상을 뒤틀면, 인터넷의 특성상 외부에 알려질 것이다. 사람들은 혐오스러워하며 그들을 '일베충'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즐거운' 순간이다. 세상과 자신을 모두 '혐오스럽게' 만들었으니까. 그들에게 혐오는 우습고 즐겁다.

[원칙2] 꿈을 꾸기를 거부하라

일게이들은 인간이 어떤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태도 역시 싫어한다. 가령 세월호 유가족이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고 하면, 일게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냥 교통사고"(백**)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애국***)이라고 답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진지한 가치와 의미 부여를 거부하는 이러한 생각에는 디씨의 '병맛' 문화라는 유산이 그늘져있다. 디씨의 이른바 <병맛만화> 시리즈는 그 몰이상주의를 잘 드러낸다.

<병맛만화>는 주인공이 좋은 대학, 직장, 여자친구 등 각종 판타지를 꿈꾸며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절정에 올랐을 때(가령 성관계 직전까지 갔다가), 느닷없이 잠에서 깨며 "아 xx 꿈"하는 식으로 급추락하며 끝나는 정형화된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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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만화>는 찌질한 그림체의 주인공이 잠에서 깬 모습으로 급 태세전환을 하며, "아 시발 꿈"하고 끝난다. ⓒ 하지율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모순적으로 부각시켜, 인간의 이상이란 부질없다는 짙은 냉소를 드러낸다. 이상에 대한 냉소는 최근에는 청년, 그리고 국가 전반으로까지 확대됐고 요즘 유행하는 "한국은 헬조선(지옥+조선)과 다름없다"는 인식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경향신문>과 아르스 프락시아가, 비교적 진보성향의 SNS인 트위터와 보수성향 커뮤니티인 일베의 헬조선 담론 데이터를 의미망으로 시각화해 공동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더 이상 사회로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절망'이 관측됐다. (관련 기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

또 '노력'해도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짙은 회의와 그 원인을 '미개'한 사회 풍조에서 찾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다만 그 풍조의 책임을 트위터는 사회 '구조 탓'에서 찾는 경향이 높지만, 일베는 '개인탓'이 섞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통을 '누구나 겪는 것'으로 여기며 개인의 일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어서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기 일쑤라는 거다. (관련 기사: 장난감 총사진 올리고 자폭한다는 젊은이, 왜?)

일게이들에게 인간의 삶은 우습고 모순적이기에 함께 연대해 복원해야 할 이상 같은 것은 없다. 즉 그들에게 성스러운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생각은 '당위'로까지 도약한다. 인간에게 성스러운 것이 없다면, 그에 걸맞은 주제 파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일게이들의 '충(蟲)' 윤리다.

노무현 투신에 대한 광적인 집착

지금 이 순간에도 일베에서는 많은 일게이들이 개드립을 치며 자신들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의 자살마저 한 자양강장제 CF의 "나는 자연인이다" "운지"(떨어질 운隕 + 땅 지地)라는 추임새와 함께 개드립의 소재로 퇴락한다.

이 개드립은 '충(蟲)' 윤리의 집약과도 같다. 일게이들에게 인간은 벌레고, 자연의 섭리 상 벌레의 자리는 땅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치 이상을 펼쳤던 노무현은 '우스운' 꼴로 뒤틀어 버려야 하고, <병맛만화> 주인공처럼 '급추락' 시켜야 한다. 이 레퍼토리는 집요하게 반복된다.

그의 죽음이 정적들의 표적수사에 의해 초래됐다며 분개하는 이들이 두고, 일게이들은 사인은 '중력'이라며 낄낄댄다. 물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중력"과도 같은 필연적인 현실에 감히 도전한 인간이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 걸 왜 인정하지 못하냐는 조롱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자유'(?)를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을 혼동하고 있다. 인간이 자유롭다면 추락하는 한 방향으로만 활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방향을 다양하게 개척할 수 있다.

일게이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커뮤니티 질서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데 있다. 거기서부터 일게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존재인 벌레가 될 것을 스스로 자처한다. 아무리 당장 현실이 절망스러워도 인간의 현실은 자연현상과 별개다.

사람들은 뉴스의 주식시장 등락 그래프를 마치 일기예보 보듯 하고,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극들을 어쩔 수 없다는 듯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그러나 현실은 어쨌든 인간들이 바꾸어간다. 이를 깨닫고, 존엄성을 인정받고자 했던 이들은 역사를 진보시켜왔다.

"인정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존재한다."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그들은 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러나 일게이들이 지향하는 건 자유가 아닌 '추락'이다. 문제는 자신들만 추락하는 것도 아니고, 진보하려는 사람들까지 발목 잡고 끌어들여 '추락'의 소재로 삼는다. 그래서 일베에서 이뤄지는 선택이란 '놀이터'의 질서를 수호하고 개드립이나 치는 것뿐이다. 여기에는 이용자는 죽어도 '놀이터'는 죽지 말아야 한다는 전도된 인식이 깔려있다.

놀이터가'"대한민국'으로 확장되면,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며 법질서에 도전하는 이들은 '종북좌파'가 된다. 충(蟲) 윤리는 맹목적인 충(忠) 윤리가 된다. 박정희와 이명박은 이 충(忠) 윤리의 수혜자일 뿐, '최고존엄'이 아니다. 그래서 "박정희, 이명박도" 노무현만큼 "재미있게 깔 수 있으면" 추천을 주겠다는 말은 예사롭지 않다.(렙***)

이때 일게이들에게 이 '좌좀 빨갱이'들은 이중적이라는 논리가 덧붙는다. "보수정당 까는 건 신들"렸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을 "까면 개정색"하므로 "우덜식 자유"를 추구할 뿐이라는 거다(슨김**). 그러나 그 보수정당과 고착화된 체제가 과연 사람들의 삶에 봉사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풍자와 비하의 경계는 윤리학자들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으레 삶의 기준에 대한 '보편주의 vs 상대주의'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일쑤였다. 필자는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여러 고민을 하고 있고, 현재는 삶에 보편적 기준은 있되 그것은 고정불변하는 게 아니라 진보라는 '방향'에서 '그때그때' 찾아야 할 뿐이라고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감히' 말한다.

삶에서 여러 가지 선택지들을 치열하게 비교하고 고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을 탐색하는 것.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닐까 싶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폭력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진보를 훼방 놓는 이들은 응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에게 처벌이란, 원래 인간이 머리를 잘 굴려 진보를 지향할 수 있었음에도 시대착오적 판단을 해 '팀 킬'을 하는 인간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움으로써 "이성적 존재임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반면 벌레는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일게이들이 실제로 벌레 같은 짓을 해도 꿋꿋이 인간이라고 여겨야 하는 셈이다.

일게이들을 '일베충'이라고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이 혐오하는 순간, 깨시민도 일게이들처럼 누군가를 혐오하게 되는 것이며 '주화입마' 당할 위험도 커진다. 그런 점에서 '닭근혜' '쥐명박'하는 식의 조롱도 분풀이나 될 뿐 대안은 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굽시니스트 작가의 패러디 만화를 보는 게 훨씬 낫다. (관련 기사: 공무원 문턱에서 탈락, '일게이' 청년은 왜 그랬을까)

일게이들을 지나치게 감정·수동적이고 '자기 파괴적' 존재로 규정짓는 것도, 그들의 충(蟲) 윤리만 완성시킬 뿐이다. 실제로 자기 파괴적 경향성이 관측되더라도 말이다. 힘든 일이지만 용기를 내서, 이제는 그들을 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마주하고 진정으로 '자율적' 존재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 대안을 찾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자율성"과 "가부장적 간섭주의">(임정아 / 한국동서철학회 / 2013)
<칸트와 흄 - 도덕적 이성과 공감>(맹주만 / 한국칸트학회 / 2014)
<팩트 골룸 여러분들께>(노정태 / http://egloos.zum.com/basil83/v/4905765)
<우리는 디씨>(이길호 / 이매진 / 2012 / 1만7000원)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김학준 / 서울대 학위논문(석사) / 2014)
<일베의 사상>(박가분 / 오월의 봄 / 2013 / 1만3000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아즈미 히로키 / 문학동네 / 2007 / 1만2000원)
<서양윤리학사>(로버트 L.애링턴 / 서광사 / 3만5000원)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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